활동소식
“평화는 평화에 의해서만 지켜진다”
지난 16일부터 제주시에는 매일 저녁 6시에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해군기지 철회와 평화의 염원을 모으기 위한 평화행동에 시민들이 나선 것이다. 백배(百拜) 실천으로 이뤄지는 이 행동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지역주민은 물론 신부님, 목사님, 스님 등 종교계 인사들과 강요배 화백 등 문화예술인, 정치인, 아이들까지 함께 하고 있다.
기지 찬성론자들과 해군 측은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배타적 평화론은 평화의 논리가 아니라 폭력의 논리일 뿐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힘은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아픔이 된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명분으로 한 힘의 논리가 어떤 상처와 갈등을 남기는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사태로 이미 확인되고 있다. 거꾸로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이 뉴욕 심장부에 테러공격을 당하는 현실은, 오늘날의 안보가 결코 군사력으로 등치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해군은 제주기지 건설 이유를 궁극적으로 남방해상로 보호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본토 방어를 목적으로 한 진해, 동해 등 국내 기지와 달리 제주에 추진 중인 기지는 잠재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스스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도 ‘군축’이 평화체제와 관련한 중요한 의제가 되는 지금, 유일하게 군비경쟁이 계속되는 동북아 지역에서 첨단무기체계를 동반한 대규모 전략기지의 건설이 어떤 의미로 결과할 지는 뻔하다. 이미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을 놓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몇 차례의 ‘경계’ 보도를 내는 것만 봐도 이는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군사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으로 불리는 미 군사전략과 어떤 식으로든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교안보전문가와 군사전문가들의 의견이고 보면, 제주는 대양해군 로드맵을 갖는 기지건설로 장래에 동북아의 갈등거점으로 전락할 공산이 매우 크다. 해군이 추진하는 해군력 증강의 배경에는 ‘각 병력의 균형 잡힌 프로그램 및 첨단기술 도입’과 더불어 ‘동맹 및 우방과의 효율적인 군사작전과 상호협력’이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다.(정옥임, 2004, 해군본부 해양력 심포지움) 이는 해군력 증강의 핵심적인 요소로 제기되는 제주 해군기지가 한미군사동맹체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짐작케 한다. 우선, 현재 진해 기지에 이미 7,000톤급 미국의 핵 추진 전략 잠수함 라졸라, 핵추진 구축함 쿠싱 등이 빈번히 기항하고 있음이 확인된 바 있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인 독수리 훈련에는 핵항공모함인 칼빈슨호 등이 참가한 사례(이시우, 2004)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을 거점으로 하는 미군에 있어서 제주는 훨씬 손쉬운 기항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미국은 언제든지 한국에 기지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한미관계의 전례에 비추어 한국정부가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제주 해군기지의 미군사전략 연동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제주가 정부에 의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4.3 항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에 대한 보상 차원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북아 평화체제에 기여하기 위한 ‘평화 지대’로서의 역할론이 주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가 더 크다. 즉, 제주는 군사적 방식이 아닌 평화적 방식으로 국제 사회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축과 관련해 반드시 막아내야 할 상징적인 화두임에 틀림없다.
이 글은 인권운동 사랑방 소식지 '인권 오름'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