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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평화



복잡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 고향은 늘 마음의 안식처다. 물론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에겐 도시가 고향이니 그들에게는 시골이 낮설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40대 이상에게는 고향 하면 대부분 시골이다. 그리고 초가집과 골목길과 어머니를 떠올린다. 저녁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밀려올 때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어머니는 내내 나가돌던 아이들을 불러댄다. “개똥아 밥 먹어라” 아마 상에는 된장국이 끓고 있을 것이다. 고향은 소리와 향기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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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나가는 것이 출세고 성공으로 알고 살았다. 공부를 잘 해서 도시로, 서울로 가면 그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었고, 현대문명의 화려한 빌딩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도시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이 평범한 이상향이었다. 도시는 밝고 화려한 세상이었고, 그 반대편에 어둡고 가라앉은 시골이 있었다. 공부 잘하고, 힘 세고, 잘생긴 아이는 도시로 나갔고, 공부도 못 하고 힘도 없는 못난 아이는 시골에 남았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곧은 나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꿈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도시 속에서 진정 꿈이 피어날 수 있었을까.


도시의 삶은 바삐 돌아간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할 일이 태산 같다. 하늘을 쳐다 볼 여유도 없다. 뒷짐을 지고 자연을 산책하는 여유, 먼 바다를 바라보며 공상에 잠기는 여유, 비가 오는 날 시를 읽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낭만은 일어버렸다. 돈과 자동차와 편리는 얻었는데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루카치는 “밤 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갔던 예전 사람들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했다. 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사랑은 끝났다.


우리가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산다. 아마 우리보다도 더욱 바삐 살고 마음의 여유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아이들은 비록 굶지만 방과 후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되니 행복할 것이라는 데 동감한다. 우리네 학교 교육은 너무 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아이들이 불쌍하다.


자연을 벗어나 도시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의 행복이 금가기 시작했다. 이제 악착같이 무엇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자.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줄이고 억지로 하지 말자. 그리고 자연 속에서 ‘저절로 그러하게’ 살자. 학교 교육을 줄이자. 아이들이 배우는 지식의 양도 줄이자. 비워두고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시간이 많도록 배려하자. 현대 합리주의(合理主義)의 틀에서 벗어나 합정주의(合情主義)로 나가자.


우주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어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잘생겼건 못생겼건, 힘이 세건 약하건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우리는 30,000일 정도만 사는 한계 속에 놓인 삶이다. 라면 12만 개를 먹으면 인생은 끝이다. 그러니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멋지게 살아야 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너무 길다. 우리 아이들의 학원과 과외는 너무 많다. 골목길에 나가 놀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곤한 잠을 자던 그 옛날이 다시 그들에게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정겨운 소리와 향기와 여유가 있던 옛날의 평화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