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새해는 새로운 것들의 총체입니다. 그래서인지 새해인사는 기대의 말들로 충만합니다. 새해에 건네지는 “복받으세요”라거나 “부자되십시오”라거나 “소원성취 하십시오”와 같은 동서고금을 관통해 온 이 덕담들은 해가 바뀔때마다 늘 새로움의 기대로 전해집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을 나누어 놓은 것도 인간이고 보면, 이 시간의 흐름 한 묶음으로서 한 해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단절시키고자 하는 어쩌면 욕망의 계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욕망의 시원(始原)은 단절이 곧 새로움이라는 본능같은 것 때문이겠습니다만, 요즘은 이에 더해 마치 ‘과거는 필요없어’식의 경향성을 타지 못하면, 문명인이 아닌 듯 천대받습니다.
사람들의 손에서 휴대폰이 바뀌는 압축된 유행은 시간의 구분조차 허락하지 않을 듯 매우 빠르게 진행됩니다. 지나간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으로의 시간의 흐름이 사람들의 미시적 생활관념안에서 시시각각 단절을 일상화해 놓았습니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관념은 촌스럽기 짝이 없을 따름입니다. 이 단절이 사실은 ‘망각하기 위해 기억’하고, 진보하기 위한 제대로 된 단절을 모색하는 역사작업을 방해합니다.
‘새로운 것’의 ‘조건’을 상실한 탓입니다. 독재로부터의 민주주의, 구태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새로운 것들은 그것에 합당한 조건을 진행시키지 못한 채, 또 다른 독재, 부활한 구태의 뜰채에 의해 물에 뜬 기름처럼 오늘 날 요부룩 소부룩 걸러내어 지는 것입니다. 평화의 섬이라는 제주의 새로움도 ‘평화’에 대한 깊은 담론과 고민을 조건으로 달지 않은 탓에 군기지의 계획하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제주의 새로운 브랜드도 사실은 단절되지 않은 과거와 생태의 결과인데, 그 조건의 성찰 없이 대형건물과 주차장 같은 이기(利器)의 새로움으로 드러내려 바쁩니다.
봄은 늘 ‘새봄’이고, 새해는 추운 겨울로 시작됩니다.
겨울은 시간이 나뉘는 시점에 걸쳐 있으니 ‘새겨울’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추운 겨울을 두고 ‘새겨울’이라고 하기엔 이상합니다. 새로운 것은 따뜻한 데서 출발합니다. 따뜻한 기운이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봄이 새로움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그 새로움의 조건입니다. 새해, 새봄, 이 새로운 것들은 돋아나고, 성장하고,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새해에 서로에게 가해지는 덕담의 ‘덕’은 각자 스스로 얻어내는 것에 대한 관심을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사전을 찾아 보면, 덕(德)은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 직(直)과 심(心)을 합친 덕(悳)조에 "밖에서 사람이 바람직하고 안에서 나에게 얻어진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와 실천양식이 바람직하면, 그 안에서 얻어지는 것이 덕(德)입니다. 밖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은 조건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핵심은 바람직한 행위와 실천양식입니다.
조락(凋落)의 가을, 엄동과 혹한의 겨울의 조건이 있어, 봄의 양식은 새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을의 애상보다는 조락한 나무의 곧은 가지와 성장을 봐야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옛 현자들은 겨울 한(寒)데의 곧추 서는 신경이 명민한 각성과 예지를 가다듬기에 제격이라며 스스로 차가운 방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헤아려 서로 도울 줄 아는 세상사의 이치와도 맥이 닿습니다.
그러니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해 인사는 ‘올해는 더욱 바르게 살자’, ‘바람직한 일들을 더 많이 하세요’와 같은 충언이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이 바로 덕담을 건네는 상대에 대한 좋은 인사로 여겨지기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바쁜 인사말 보다는 상대에 대한 깊은 관심과 눈동자를 지긋이 마주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주는 일을 앞세웠으면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에 “나라를 지키는 일에 더 힘써주세요”라고 썼다가, 가뜩이나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더 힘쓰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선생님께 핀잔 듣던 생각이 납니다. 그 후로부터는 “수고하세요”와 같은 인사말에 늘 신경이 갑니다. 그러나 수고가 있어야 얻어지는 것이 있으니, 이런 저런 일에 더 마음을 두어 수고하면 행복이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와 같이 얻어짐의 조건을 일깨우는 말이 충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사가 오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해가 바뀌면, 정부나 기업의 큰 규모의 인사이동이 있곤 합니다. 제주의 경우 음력 정월을 앞두고 ‘신구간’이라 하여 집을 옮기는 이들이 일제히 이사를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지난 해 말미까지 읽던 책을 새해에 계속 부여잡는 게 뭔가 뒤쳐진 느낌에 새로운 책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1월 1일자 신문은 ‘올해부터 달라지는 것’에 대해 일제히 보도를 합니다.
모두 새로운 것들을 향한 행보입니다.
새로운 것들의 조건은 비단 그 이전과 달라지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들의 조건은 ‘바람직한 변화’이냐 하는 것일 것입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후보, 새로운 정책, 새로운 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5+4’로 표현되는 이른바 ‘반MB’논의가 언론보도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새로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직한 변화로서 그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움의 조건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반(反)’이 작용이 아니라, ‘정(正)’의 행보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아쉬어 기대는 처지가 아니라, 서로 나눌 것을 풍부히 하는 관계로 기대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스스로 얻고 국민과 나누는 대안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 유 기(정책위원장)
*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 게재된 정기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