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머무는 미소든, 온갖 주름이 동원된 호탕한 웃음이든 웃어 볼 일 없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슬퍼합니다. 아니 웃음이란 단어가 오히려 생소한, 그래서 적막한 삶의 풍경을 다시 외로워 합니다.
웃음과 슬픔, 외로움 등이 성공과 실패, 그리고 성취와 좌절에 의해 전달되어지는 자연스런 감정표현이라 해도 도대체 전자(前者)가 우리 주변에서 실종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정치지도자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으로 이끄는 일, 그리하여 행복으로 초대를 하는 일이 그들의 본업(本業)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귓뺨을 올려 부침으로써 순박한 백성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는 사람들이 멍석을 깔아놓고 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있습니다. 대선 때, FTA 반대 목소리를 제 편으로 끌어들일 속셈인 것 같습니다. 그 보다는 자신들에게 단물을 제공했던 이 정부에 삿대질하는 것을 보니 이들이 장차 이 나라를 어떻게 깽판칠지 분노와 함께 두렵기조차 합니다.
어쩌다가 이 나라에 법이나 상식, 일반적 도덕율을 유린하는 자들이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활개를 치는지, 한자락 웃음을 간직할 수 없는 세태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섬뜩한 맞대응이 있어서는 안된다는게 이 나라 대부분의 순박한 백성들의 마음이고 보니 차라리 모성(母性)이 기다려집니다.
푸근함과 강인함의 두 가지가 어우러져 세상을 안온하게 하는 힘. 이번 대선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으로 가출했던 웃음을 되찾아 옵니다. 외래종 모나리자의 미소보다야 토종인 하회탈과 같은 함박웃음이 있는 세상이 그를 통해 맞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