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케이블카 설치문제를 둘러싸고 도민사회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지역경제가 어렵고 도민의 총의를 모으고 힘을 합쳐도 현재의 난국을 뚫고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갈등이 깊어진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소모적이며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제주도가 케이블카 '여론조사 결정론'을 발표한 이후,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일부 직능·사회단체의 찬성성명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 당국이 이러한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혹마저 듭니다. 여론조사 실시 여부도 결정되기 전부터 벌써 이런 정도라면, 만일 찬반 여론조사가 실시된다면 그 시행 '과정'에서, 또한 조사 '결과' 초래될 갈등과 반목은 향후 도민통합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는 도민여론조사의 불참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여론조사를 거부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현재의 쟁점은 케이블카 설치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7억이라는 도민의 혈세를 들여 발주하고 제출된 타당성 조사 용역보고서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타당성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여론조사결정론을 도당국이 주창하는 것은, 도당국 스스로가 이번 용역이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번 용역의 취지가 무엇입니까? 전문연구기관이 수행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조사에 근거하여 케이블카 타당성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당초의 취지가 아니었던가요? 이러한 당초의 명분이 그 객관성에 의심스러운 '주문형 용역 보고서'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자, 이제는 무조건 도민여론몰이로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언급한 것처럼 이미 용역에 7억이라는 도민혈세를 낭비했습니다. 이러한 혈세의 낭비도 모자라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한 1만 명에 달하는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최근의 지역경제 상황 및 제주도의 부채규모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도민여론조사 결정론은 도정의 주요 정책 결정 및 이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도민들에게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넷째, 본 여론조사가 주민의 의사를 판단하기 위한 적절하고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공개에 따른 객관적 자료'로 주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제주도 당국이 제주도민에게 그러한 것들을 충분하고 정확하게 전달하였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역시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다섯째, 한라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알려져 있을 뿐 만 아니라, 도립공원이 아닌 '국립공원'입니다. 또한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연공원법 상의 변경절차 등 중앙정부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즉 한라산 케이블카의 설치는 제주도민 만의 의견으로 결정할 수 없는 국가적이고 전국민적인 사안 - 도지사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 이기 때문에, 도민여론조사 결정론은 소모적일 뿐 만 아니라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주도당국은 독자적인 여론조사를 강행하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여론조사를 강행하려 하는 것입니까? 도민갈등이 증폭되더라도 상관없고, 도민통합 보다는 케이블카 설치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까? 이것이 자치시대의 행정입니까? 또한 앞서 밝힌 대로 케이블카 설치 권한이 도지사에게 있지도 않은데, 이러한 출혈적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주도 당국에 밝힙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이 사안이 제주사회 내에서 합리적으로 해결되길 기대하며 반대운동의 수위를 조절해 왔습니다. '제2 동강댐 투쟁' 같은 전국적 연대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육지부 환경단체들의 '참여자제'를 호소하면서까지 말입니다. 본 사안의 전국적 확대는 제주공동체를 위해서나 제주도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제주도민 사회의 합리적 조정능력을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당국이 여론조사를 강행한다면, 우리는 전국적 연대투쟁 등 반대운동의 수위를 한 단계 높여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과, 이후 초래될 모든 책임은 제주도 당국에 있음을 분명히 경고합니다.
케이블카 설치의사를 표명한 정책당국이 바로 제주도당국이요, 이로 인해 찬반논쟁이 재연됐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의 칼자루 또한 전적으로 제주도 당국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제주도 당국이 도민화합과 제주사회의 통합된 발전을 바란다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도민의 역량을 낭비하고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드는 여론조사를 즉각 중단함은 물론, 이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길 충심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