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2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우익단체인 자유시민연대(공동대표 정기승)는 성명을 내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55주기 위령제에 참석해 정부 차원에서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제주도의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밝힘으로써 많은 4·3유족과 도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이 단체의 기관지 격인 <자유시민저널> 2003년 4월 7일자 2면에는 [제주도지사, "4·3희생자 선정 문제있다" 인정, 건국희생자제주도유족회 대표단 도지사 방문 자리서]라는 제하의 충격적인 특집 기사가, 면담 장면을 찍은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매우 중대한 내용이기에 관련 내용을 먼저 전문 게재한다.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4·3희생자 선정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 주목된다. 우지사는 3월 28일 오후 3시쯤 건국희생자제주도유족회(이하 유족회, 회장 오형인) 대표 10여 명이 도청기자실을 방문, 희생자 선정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이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것. 유족회 대표단은 이날 우지사를 제주도청으로 방문,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및 희생자 선정과 관련, 유족회의 의견을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 서한에서 유족회측은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이 만든 진상조사보고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족회측은 그 이유로 집필진의 인적 구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집필진이 4·3사건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것. 이 때문에 4·3사건이 남로당이 주도한 공산폭동이 분명한데도 군경에 의한 피해는 무조건 학살로 다룬 반면 공산무장폭도들에 의한 피해는 소극적으로 다루었다고 지적했다. 유족회측은 우지사에게 진상조사보고서는 역사적 인식과 시대적 책임감을 갖고 작성해야 한다며 이미 작성된 진상조사보고서를 유보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성이 보장된 경험세대와 학계 원로 및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도민공청회를 열어 검증과정을 거쳐 사실에 의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또 노무현대통령의 4·3사건 사과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이에 대해 우지사는 "(지금까지) 소수의 목소리는 큰데 다수의 목소리가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건국희생자제주도유족회가 출범, 목소리를 내는 게)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우지사는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으므로 사과하라는 데는 반대한다며, 다만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로당에 동조한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어야 하지만 남로당 핵심이 희생자가 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우지사는 또 유족회가 전한 의견서 내용이 매우 좋다며 4.3위원회 참석 때 위원장(국무총리)에게 직접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만일 김정일이 제주도에 올 경우 이 의견서를 보이며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는 게 유족회측의 전언이다."
그렇지 않아도 4·3 55주기 위령제에 대통령의 참석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까지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과 도민들에게, 이 소식은 가히 '충격' 을 넘어선 '경악' 그 자체였다. 대통령의 사과 유보 표명이 우익보수 세력을 의식한 총리실의 건의에 따른 것으로 알고 이에 분노하던 도민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지사는 4·3 해결을 "필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으므로 사과하라는 데는 반대한다"는 도백으로서의 발언은 도민의 여망을 져버리는 것으로 참으로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4·3희생자 선정에 문제가 많고 진상조사보고서를 절대 인정할 수 없으며 대통령의 사과도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건국희생자유족회의 의견 내용이 좋고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게 다행이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주장을 '다수의 목소리'라 추켜세우는데 이르러서는 정말 분노를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만일 이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규정하며 우지사에 대해 그 진위를 묻는 아래의 공개질의에 나서고자 한다.
1) 우지사는 지난 3월 28일(이날은 진상조사보고서의 최종의결을 앞둔 바로 전날이다) 건국희생자 유족회와 만난 사실이 있는가? 지사는 이 면담 자리에서 자유시민저널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4·3희생자 선정이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내용과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2) 기사에 따르면 지사는 "(지금까지) 소수의 목소리는 큰데 다수의 목소리가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건국희생자유족회가 출범, 목소리를 내는게)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가? 있다면 "4·3희생자 선정에 문제가 많고 진상조사보고서를 절대 인정할 수 없으며 대통령의 사과도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건국희생자유족회의 의견이 다수의 목소리이며 반대로 진상조사보고서의 시급한 의결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의견이 소수라 생각하는가?
3) 지사는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으므로 사과하라는 데는 반대한다"고 얘기한 바 있는가? 이게 사실이라면 지사는 이번 55주기 위령제 때 대통령의 방문과 사과를 내심 반대한 것인가? 지사는 또 건국유족회가 전한 의견서 내용이 매우 좋다며 4.3위원회 참석 때 위원장(국무총리)에게 직접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는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기사 본문 중간에 거론된 유족회의 입장에 지사는 동의하는가? 또한 이 의견서를 총리에게 전달하였는가?
4) 지사는 또한 만일 김정일이 제주도에 올 경우 이 의견서를 보이며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지사는 4·3이 북한의 지령에 의해 일어난 폭동이라고 보고 있는 것인가?
5) 지사는, 지난 3월 21일 열린 4·3중앙위원회 6차 회의에서 대부분의 민간위원은 물론 강금실 법무,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강력하게 의결을 주장할 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6개월 유보(?)로 결정돼 문제가 됐던 3월 29일 7차 회의에서조차 진상조사보고서의 시급한 의결 당위성을 조금도 주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유시민저널에 보도된 것과 같은 입장 때문인가?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 사안은 4·3 진상규명과 도민명예회복의 최종적 결론을 기다리는 도민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매우 민감하고도 중차대한 사안이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4·3유족과 도민들을 대신해 앞장서 노력해야할 도지사의, 4·3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재삼 검증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라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사는 이상의 공개질의에 대해 역사와 진실 앞에서 분명하고도 솔직한 답변을 해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공개적인 답변이 없다면, <자유시민저널>의 보도내용을 모두 시인하는 것으로 알고 도민들의 의견을 모아 지사의 책임을 물을 것임을 엄중하게 밝힌다.
2003. 4. 22
민주노동당제주도지부·민주노총제주지역본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제주지부·제주여민회·
제주주민자치연대·제주참여환경연대·제주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