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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세상 통권 44호] 눈 덮힌 한라산이 겨울 안거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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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에서 포행하는데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저 편 등성이에서부터 하나 둘 솜털 같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가 집착의
    잎사귀를 버리자, 산의 구름이 몸을 흩어 눈으로 내리는 것이다. 한라의 깊은 계곡으로 고요히 내리는 그 눈송이들 앞에서 걸음보다 마음이 먼저
    멈춰 섰다. 모든 굴레를 벗어버리고 산은 이제 동안거에 들려는 것인가! 지난 계절의 모든 욕망을 벗어버리는 겨울 산 앞에서 진정한 쉼이란,
    그리고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어머니 같은 산, 한라에게 물었다.


      <우다야경>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때 우다야가 붓다께 여쭈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으로 속박되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버려야 열반이라 말하나이까?"

     그러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쾌락에 속박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습관에 물들어
    있다.  그들은 욕망을 초월함으로서 열반(참된 쉼)에 드느니라."
     
      현대인들은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이기적 논리를 쫒는 행위만을 현명한 삶으로 규정한 채, 미래의 목표를 향해 그 욕망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늘
    만족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년 전 인도 여행
    중에, 붓다가 깨달음을 얻으신 부다가야 대탑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부다가야의 대탑 주변에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붓다의 향기를 따라 그곳까지
    찾아온 수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는 붉은 가사를 걸친 티벳의 승려들이었다. 그들 붉은 가사의 티벳
    승려들은 새벽 4시부터 대탑 앞에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저녁 9시가 되어 대탑의 문을 닫을 때에도 맨 나중에야 어둠을 헤치며 오고
    어둠을 몰고 그곳을 떠나갔다. 나라를 빼앗긴 티벳의 젊은 승려들은 그 푸른 젊은 날을 그렇게 참회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혹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들이 종교적 신앙에 빠져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쁘게 대탑을 둘러보고 서둘러 떠나는 이들 사이에서 한 발 한 발 기도하듯 걷는 그들의 춥고 시린 발목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향하여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들이 남긴 흔적 없는 발자국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티벳 승려들의 고요한 그 걸음걸음은 갈등과 반목, 전쟁과 살상만이 난무하는 아랍의 현실, 어떤 평화 유지군도 평화를 심어놓지
    못한 아랍의 상처와 오버랩 되며 진정한 평화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적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악연이 다해 언젠가는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티벳 승려들의 그 위대한 마음은 결코 무기력한 것이 아닌 것임을 깨닫게 했다. 오히려 티벳 승려들이 보여주는 저 무저항의
    투쟁이야말로, 피가 다시 피를 부르는 세계사의 업보를 씻고 온 인류가 함께 평화로울 수 있는 길의 시작이었다. 누군가 먼저 용서하고 누군가 먼저
    붉은 피 위에 평화의 가사를 덮어주지 않는다면 이 기나긴 갈등과 반목의 고리는 결코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 날 부다가야에서 한 없이 기도하는 티벳의 승려들을 보며 느꼈던 마음을, 제주의 모든 아픔을 껴안은 한라에서 다시 만난다.
    붓다의 말씀처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 욕망을 초월한 ‘참된 쉼’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아야, 우리들 현재의 삶이 곧 행복의
    목적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쁘게 달리는 걸음을 멈추고 과연 진정한 쉼이 무엇인지. 온갖 고통으로부터의 벗어남이 무엇인지. 쉬지 않고
    끓어오르는 일상에서의 분노와 열정까지도 어떻게 승화해내어야 할 것인지. 온 인류가 그토록 바라는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저 한라의 기슭을
    하얗게 덮어주는 고요한 겨울 풍경 앞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