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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사는 희망을 노래해요


  • “제주도의 의료관련 정책은 대도민 사기극이거나 무지에서 비롯됐다”


    제주대 의과대학 박형근 교수의 폭탄(?)발언입니다. 지난 달 29일 저녁에 열린 첫 번째 희망포럼의 대미를 장식한 말이었습니다. [의료시장 변화 동향과 제주 의료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열띤 강연을 해 주신 박 교수는,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의료서비스를 민영화해서는 안 된다는 그간의 반대논조를 넘어 ‘시장주의적 접근’에 입각해 주장을 펼쳤습니다.


    박형근 교수는 병원시장에 고급,대형병원이 진입함으로써 의료계군비경쟁(Medical Arms Race)이 촉발된 경위와 일련의 과정들은 병원의 시설 및 장비 고급화, 우수 인력유치 경쟁 심화, 의료원가 상승 및 환자부담 의료비로 전가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간단히 정리한다면 경쟁심화-고급화-가격증가-경쟁심화의 순환고리를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1978년 의료보험의 도입을 전후해, 수요에 비해 한참이나 달리는 공급자가 의료시장의 중심축이 된 것과 관련한 재벌병원의 등장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재벌병원으로 대변되는 선도병원이 촉발한 병원 간 경쟁구도는 지역 내 소규모 병원의 경쟁력을 더욱 저하시키고 결과적으로 중소규모의 병원을 잠식했습니다. 문제는 선도병원을 따라잡기 위한 병원간의 경쟁이 병원의 외적 규모, 즉 자본력에 치우쳐 나타나고 있는 양상입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병상의 규모를 늘리고, 간병서비스를 차별화하고, 고급 의료진을 유치하고, 대형병원으로만 몰리는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쌓인 의료진 역량 제고 등, 의료시장경쟁력에 있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까지는 건강보험당연지정제로 인해 재벌병원의 의료수가가 몇가지 분야를 제외하고(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들) 다른 병원에 비해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 아니었으나,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되고 재벌병원이 민간의료보험과 손을 잡은 영리의료법인화 할 경우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대부분의 중소규모 병원들이 이미 대형병원에 잠식당해 독주체제가 굳어진 현재의 의료시장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가격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박교수는 ‘제조업 투자 및 고용창출 여력 저하 → 신규 투자처 및 고용창출 가능 신 산업 육성 필요 → 서비스 산업에 관심 집중(의료, 교육, 금융)’의 3단계 과정을 내놓았습니다. 건당진료비가 연 평균 25% 증가하면 의료서비스 분야에서 10조원 이상의 추가 매출 발생하여 GDP 1% 이상의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경제성장이 어느 만큼 실질적 효과를 거둘지 정부가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주의 경우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취약한 인프라 △그로 인한 경쟁자(서울 소재 대형병원) 등 의료서비스 전반이 취약한 상황입니다. 이는 한정된 인구로 인해 투자 유인을 저감시키고 기존 공급자의 독점적 영향력이 지속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제주 의료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서울 소재 대형병원(*여기에서 제주의료시장의 경쟁자가 서울의 대형병원이라는 주장을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을 듯 합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큰 수술이나 고급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제주의 병원보다는 서울의 큰 병원을 찾는 작금의 현상을 예로 든다면 이해가 가능하실 겁니다)은 의료서비스의 질적 측면에서 제주 의료시장의 평가지표입니다. 그러나 열악한 자본력, 지리적 취약성, 진료범위, 진료경험축적 등 모든 면에서 제주의 의료는 서울의 대형병원과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의료관광의 경우, 의료관광국으로 각광받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과 제주는 의료인력 인건비, 병원운영비 등 경제적 능률면에서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제주가 의료관광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예전 선진국과 가격경쟁으로 승부했던 신발산업(2차 제조업) 육성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해 의료수가만 높이는 정책을 시도하기 보다는, 지역의 거점 수준으로 기능할 만한 병원을 신설하거나 증축하고 기존의 의료서비스 전반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박교수는 주장했습니다. 의료산업이 막연히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을 제고할 것이라는 제주도정의 선전에 대해 ‘대도민 사기극이거나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각박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위와 같은 맥락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희망포럼에 참석한 20여명의 ‘희망 씨앗’들은 의료문제, 의료의 시장화 문제, 의료서비스의 시장적 접근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늦은 시각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희망포럼’은 기존 시민사회단체가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했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조직’이라는 오해를 반성하고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주사회를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이야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앞으로 매월 한 번, 포럼의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그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는 열린 자리를 가질 예정입니다. 희망포럼에서 이야기될 주제들이 매우 구체적인 정책대안으로 발전해 제주사회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참여환경연대의 ‘희망’이 묻어난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