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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13일...제주 비상시국 선언!!

  • # '세계평화의 섬' 간판부터 내려놓자!


    우리에게 '평화의 섬'이란 무엇입니까. 근대사의 아픔을 이겨낸 제주인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나가려는 우리의 다짐이고 표상이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평화와 군사기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가 판치고, 급기야 국방부장관이 해군기지 추진의 단호한 뜻을 천명한 즈음, '평화의 섬'이란 슬로건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 자신은 더 초라해지고, 웃음거리만 되는 것이 아닐까 반문해 봅니다. 그러니 '평화의 섬' 간판은 올리자마자 바로 내려야 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007년 4월 13일은 아마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하나를 먼저 얘기한다면, 이 날 그 폭압적인 5공 정권 치하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부님·수녀님·도의원들까지 마구잡이식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연행혐의가 '집시법, 강제해산 거부'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다중퇴거 명령거부' 랍니다. 아직도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없는 현실을 탓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국방부장관을 도청 밖에서 1시간 동안 기다리게 한 괘씸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이런 강제 연행의 수모를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그렇고 그런 세상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87년 이날도 역사적인 날이었군요. 전두환 정권이 발표한 4·13호헌 조치가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 역사에 기록될 20년 전과 후의 '4.13'


    이날 국방부장관이 내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주 주민들의 동의 없이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장소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평화의 싹이 꺾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한진그룹과 제주생명수를 두고 다투었던 재판 또한 제주도가 대법원에서 패소했다는 우울한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렇듯 제주의 '생명'과 '평화'와 관련한 굵직한 뉴스가 제주사회를 뒤덮은 날이 바로 4월13일입니다.


    물론 며칠 전에는 한미FTA 타결이라는 메가톤급 소식에 이어 김 지사의 '당선무효' 항소심 판결 소식도 있었습니다. 지난 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래, 우리가 선출한 민선도지사 3명이 모두 불명예퇴진하거나 법의 심판으로 중도하차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FTA라는 커다란 파고를 만난 제주호가 선장을 잃고 좌초할 지경에 처해 있다는 현실이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국방부장관을 불러들여 기자회견 자리를 만들어 주자마자 두바이로 황급히 떠난 김태환 지사의 몰염치 때문이 아닙니다. 마치 59년 전 토벌군을 연상케 하듯, 해군기지는 취소할 성격이 아니라며, 추가로 700억 짜리 사업을 제시할테니 받으라는 국방부장관의 고압적 태도 때문도 아닙니다.


    이날 5공 독재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도의원과 신부·수녀님들의 연행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가는 해녀 삼춘들의 절규도 쟁쟁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서 환영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국방부장관 일행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부 건설업자들의 환영현수막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의 민심이 갈등을 일으키는 현장이었습니다. 이 대별되는 장면이, 가슴을 '턱' 막히게 합니다.


    # 제주의 현실…공동체의 분열과 사라진 자존


    이게 냉정한 '제주의 현실'입니다. '제주공동체'는 안보와 발전논리에 의해 공동체성을 차단 당하고 '분열'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주의 자존'은 죽었습니다. 돈이 된다면 공동체보다 나와 우리만 앞세우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의 물결이 판치고 있습니다.


    제주의 전통을 지켜내던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제주사회의 '올바른 리더십'을 키워내지 못한 우리의 잘못입니다. 생명평화의 문화를 이 땅에 확산하지 못한 우리의 게으름 탓입니다.


    # '비상시국' 선언


    평화를 외치는 종교인과 시민단체, 생존권을 외치는 지역주민들의 절규 속에서도, 짐짓 관망만 하는 많은 지식인들과 지역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습이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듭니다. 경제적인 이득 때문에 생존 조건과 문화적 자존을 망각하는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드려다 보게 됩니다.


    저는 작금의 현 상황을 제주 근현대 100년 역사상 4.3 다음으로 닥친 '비상시국'이라 생각합니다. 해군기지 문제만이 아니라, FTA, 지하수 문제 등 제주 미래를 결정할 커다란 아젠다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 의제를 맡길 리더십이 이미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관망은 '비겁'을 떠나 '죄악'입니다. 이 땅의 역사를 물려받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해야 할 시기에 당도해 있습니다. 이 땅은 지금 우리들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비상한 상황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오늘의 암울한 현실과 제주의 미래를 토론해야 합니다. 작은 차이를 벗어 던지고 오로지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평화의 섬 제주를 지켜나가기 위해 모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향후 일정을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차제에 '새로운 리더십'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합시다.




















       
     
    ▲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미래는 늘 과거에서 찾아집니다. 정낭에 걸치는 나무 하나에도, 담을 쌓던 돌 하나에도 신성(神聖)을 담아내던 제주 조상의 뜻을 이어가면 그 시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며, 너무 빨리 변화하려 하지 맙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결핍한 곳입니다.


    탐욕스럽게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으려던 개발과 개방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돌 하나하나를 쌓는 신중함으로 미래를 기획해야 합니다. 그런 발걸음이 너무 더디기 때문에 그 기대치가 작게 느껴진다면, 10년만의 성과가 아니라 100년의 성과를 염두에 둔 긴 안목과 계획을 가지면 될 것입니다. 긴 호흡이 제주의 생명을 강하게 할 것입니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평화를 위한 종교인모임의 성직자들께서 월요일부터 '생명평화 100배'를 시작한다는 소문입니다. 그 백배현장에서부터 함께 하며, 실천 가능한 해법을 찾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