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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휴먼라이브러리] 제주다운 Island music, 그리고 사우스카니발!








             4월의 휴먼라이브러리_사우스카니발]

제주다운 Island music, 그리고 사우스카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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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먼라이브러리는 꼭 사우스카니발이랑 하자!"

"근데... 사우스카니발이 뭐에요? ........ "



처음 듣고 제주에 새로생긴 '축제'인줄 알았습니다. 제주떠나 10년 살다와서 반육지것이 되어버린터라 이게 뭔가 했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우스카니발을 모를 수 있냐", "그렇게 유명한 밴드를"이라는 잔소리 좀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했지요. 엄청엄청 유명한 제주도의 대표밴드,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의 '2013 케이 루키즈(K-Rookies)' 수상하고, EBS 스페이스 공감 2013 6월 이달의 헬로루키로 선정되었던 제주에서 음악하는 친구들, 이번 휴먼라이브러리는 사우스카니발을 만나러 갔습니다. 김영숙(푸르미), 김홍구, 서지연 회원님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함께했습니다. 도르라, 몬딱 도르라~ 이제 사우스카니발을 만나러 가보실까요?





- 일   시: 2015년 04월 21일 늦은 저녁 8:00 -

- 장   소: 사우스카니발 스튜디오

- 함께한 이들: 김영숙(푸르미), 김홍구, 서지연 회원님

- 인터뷰는 대부분 리더인 강경환씨와 진행되었으며, 매니저분이 옆에서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터뷰 많으시죠?

- 네네...


- 이번에 새로운 기획사에 둥지를 틀었다고 들었어요.

- 네, 옮겼어요. 3년 전부터 기획사는 있었는데, 계약 끝나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계약을 하게 됐어요.


- 이번 기획사(두루두루amc)는 강산에, 장기하와 얼굴들이 있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좋은 기획사 아닌가요?

-  대형 기획사는 아니고, 준메이저급의 기획사에요. 인디밴드만 있는 곳은 아니죠.


-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의 기획사랑 계약하게 된 건가요?

- 대표님이 먼저 저희에게 제안하셨어요. 우연히 월정에서 공연하는 거 보고....


- 저희가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멤버들이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연습을 한다고 해서 늦은 시간에 방문했습니다. 지금 멤버들이 다 음악 외에 생계일을 하고 있나요?

- 네, 다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고 있어요 넥슨 직원들이나 KT&G 상상클래스에서 단체 레슨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방과후 교실에도 가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어요.


- 따로 일 없이 음악으로만 생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나요?

- 그러고 싶지만, 사실상 불가능해요. 음원 사이트에서 음악을 한번 스트리밍하면 소비자는 600원을 내지만 저희에게 오는 돈은 0.18원에 불과해요. 18전인 셈이죠. 음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상품이에요. 우리나라에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가 약 600만인데, 이들이 모두 한번씩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도 저희에게 들어오는 돈이 600만원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죠. 앨범도 "우리 활동하고 있습니다"라는 상징이에요. 계속 활동하고 있다는 명함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신념에 대한 '다짐' 같은거... 행사 수익이 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입니다. 




"음원 사이트에서 음악을 한번 스트리밍하면 소비자는 600원을 내지만 저희에게 오는 돈은 0.18원에 불과해요.

18전인 셈이죠. 음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상품이에요."




- 0.18원, 너무하네요.

- 지금 음원시장의 구조가 대기업에게 유리한 수익구조로 형성되어 있는거죠. 차라리 스트리밍서비스를 열심히 듣는 것보다 공연장에 와서 음악을 듣고, 시디를 사 주세요. 그리고 MP3 다운은 스트리밍서비스보다 그나마 나아요. 한번 다운 받으면 600원 중 저희에게 80원이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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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멤버들은 모두 제주분들 인가요?

- 드럼은 대구 출신입니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를 데리고 들어왔죠. 3년 됐습니다. 


- 육지 공연은 많이 가는 편인가요? 체류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 네, 육지 공연은 많이 가는 편입니다. 이번에 광주에서 하는 5월 창작 가요제도 가고, 펜타포트 페스티벌에도 초청 받았어요. 원래는 3rd stage에 섰었는데, 이번에는 main stage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평균적으로 행사가 없는 1,2,3월달을 제외하면 한 달에 평균 7-8개 정도의 행사를 다닙니다. 그런데 육지 공연은 저희 멤버 수가 많아서 오래 머물지 못해요. 1박 2일 기준으로 먹는 거, 숙박비 포함하면 200만원 정도 듭니다. 그러니까 2박 3일 머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리고 공연이 있으면, 생계일 보다는 공연을 우선시하는 편이에요. 학교 방과후 교실도 공연이 있을 떄 뺀다는 조건으로 할 수 있게 됐죠.


-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나요?

- 음악은 23살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13살 때는 무용을 했어요. 재즈를 하다가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꿔 제주도립예술단에도 잠깐 있었죠. 우여곡절 끝에 춤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친구가 음악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왔어요. 저도 기타를 18살부터 취미로 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음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 음반 보니까 대부분 작사, 작곡을 하시던데.. 음악적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 처음 하드코어 밴드를 할 때부터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 밴드가 해체되고, '사회주의 밴드'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팀을 꾸렸죠. 와봤자 표도 잘 안 팔리고 하니까 대형 뮤지컬들은 제주도에 안오는 공연이 많잖아요. 문화에서 소외되는 제주도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문화사회주의의 선봉대가 되자"라는 생각으로 밴드를 시작했어요. 체게바라나, 밥 말리의 영향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라디오나 미디어에서의 제약이 많더라고요. 소셜리즘이라는 것이.. 그 단어 자체만으로 공연을 하려고 하면 서부 경찰서에서 연락도 오고 그랬어요. 제가 관광대 사회복지학과 총학생회장도 하고 그랬는데, 광우병, 촛불집회와 같은 사회이슈와도 연관되면서 더 경찰의 주목을 받았죠. 대학에서 공연을 하려고 해도 "어떤 음악을 할 것이냐"고 경찰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 지금도 '강정'이나 '시청'에서 공연 있으면 자주 오시지 않나요? 

- 저희가 한때는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자주 하지 않아요.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었거든요. 약간의 오해가 있었어요. 예전에 특정 단체 행사가 있었는데, 당시 주최측에서는 저희가 당연히 올 줄 알고 공연 명단에 '사회주의'밴드의 이름을 올렸어요. 저희에게 상의도 없이. 그렇지만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거기는 가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 저희 밴드가 마치 '돈이 안 되는데는 오지 않는구나'라는 오해가 생겨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특정 단체에서 하는 행사, 이런 곳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사실 부산이나 이런 곳에 운동권 밴드랑도 친하거든요. 근데 이 친구들이 공연을 하고, 술 마시고 그러다가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거기를 떠나더라고요. 우리동네인데 안 치우고 그냥 가는 거잖아요. 우리는 여기 남는데... 왜? 우리동네는? 뭐지? 이런 생각도 들면서 이제는 조용히, 조용히 하고 있어요. 


- 그래도 작년 강정 대행진때는 사우스카니발의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 그런 행사는 정치적 성향의 잣대를 놓고 가는 건 아니에요. 사상 문제가 아니죠. 단순히 우리동네, 예전에 내가 놀던 강정, 수박을 가져다놓고 친구랑 수영하던 그곳이 저렇게 되는 건, 이건 아니다 싶은 순수한 마음에 가는 거죠. 색깔의 논리로 공연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 건반치는 멤버가 강정에 사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는 찬성도 반대도 아니고, 단지 우리동네에서 처음보는 경찰이나 처음보는 시위대가 나갔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더라고요. '어디가 맞다' 이런 식의 생각이 아니라.. 결국 풀이하는 방식의 문제인 거 같아요. 그런데 색깔논리, 흑백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 '스카'라는 음악장르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나요? 특별히 '스카'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 동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자메이카의 역사가 제주도랑 비슷한 점이 많아요. 자메이카도 영국에 지배를 받다가 50년대에 갑자기 해방이 되었어요. 해방감에 대한 기쁨도 잠시, 신나긴 한데 무정부 상태에서 파벌이 많이 나뉘고, 그러면서도 또 아프리카 민족의 혼이 있기에 끝까지 으샤으샤하며 버텨가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소소하고 서민적인 제주도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도를 생각해보세요. 예전에는 유배지였고, 7차 교육과정 시작할 때도 제주도에서 먼저 시범을 시작해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덮고 넘어가는 일도 있었죠. 제주에서 상위 클래스의 친구들은 육지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아요. 왠지 여기있는 사람들이 '소외'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밥 말리도 반정부 투쟁을 했어요. 그래도 그의 사상은 강성으로 가지말고 "그래, 그래도 저 사람들까지 다 사랑하자"는 것이었어요.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든 다 껴안고 가자는 생각이었죠. 저도 밥 말리를 보고 4.3도 있고 아픔이 많은 제주이지만 "그래, 우리 이 아름다운 낙원에서 함께 아름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서 스카라는 장르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밥 말리를 보고 4.3도 있고 아픔이 많은 제주이지만 '그래, 우리 이 아름다운 낙원에서 함께 아름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서 스카라는 장르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




- 장르 선택이 우선이었나요? 아니면 음악을 하다보니 스카가 눈에 들어왔나요?

- 사실 하드코어는 멋있어 보여서 하고싶어 했죠. 그런데 어느날 보목포구에서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여기 환경에 맞는 음악이 뭘까...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찾다보니 '핍박 받는' 쿠바나 남미음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면서 밥 말리를 접하고, 가사에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이들은 "저건 잘못됐어"가 아니라 "그래, 내가 다 안아줄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음악을 하더라고요. 그게 멋있어 보였어요.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게 되었어요. 저도 날카로운 성향의 사람이었는데, 다 감싸자.. 라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죠.


- 스카라는 장르가 '제주어'랑도 참 잘 맞는 거 같아요.

- 외국 사람들은 우리 음악을 듣고 외국 밴드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제주어가 빨리 말하다보면 '트트투투투' 이런 발음이 나오는데, 포르투갈어 발음에도 이와 비슷한 소리가 있어요. 또 제주어만의 감성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오고생이'란 말. 표준어로 '고스란히'라고 하는데, 그거 이외의 뜻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한 부분이 있어요. 제주어로 노래를 하려하니 처음에는 멤버들도 반대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잘 맞을지는 몰랐어요. 언론에서는 우리가 '제주어 지킴이'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렇다고 제주어를 지키는 지킴이는 아니에요. 우리는 제주를 소재로한 섬 음악을 하는 밴드 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제주도 닮은 음악을 하려다 보니까 제주어도 나오고 오름도 나오고, 바다도 나오는 음악을 하는....


- 새 앨범에는 총 몇 곡이 실리나요?

- 지금 10곡 중에서 2곡은 녹음을 마친 상태입니다. 녹음은 주로 여기, 제주 사우스카니발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어요. 사실 노란앨범은 서울에서 녹음을 했는데, 체제비가 앨범비보다 더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문광부의 앨범 지원비에다가 저희가 모아둔 돈을 더해 마이크랑 기타 장비들을 구입했습니다. 행사다니면서 모아둔 돈을 여기 많이 썼죠. 장비 덕택에 여기서 음악을 녹음하고, 녹음한 음악은 믹싱 마스터에게 올려 보냅니다. 그럼 저랑 드럼만 올라가서 음악을 확인하는 식입니다.


- 어떨 때 곡이 나와요?

- 제주도 여기저기를 다니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하면서 곡을 구상하는 편입니다. 앨범을 위해서 곡을 쓰다보면 곡 쓰기 전 감수성이 모두 소진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더이상 없어요. 없을 떄 곡을 쓰면 거의 똑같은 음악이 나오죠. 이걸 다시 채우려고 떠납니다. 가장 제주다운 음악을 하려다보니 제주도 곳곳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또 내가 모르는 제주의 모습을 보고 다니죠. 그렇게 감성을 쌓고 또 곡 쓰는데 쓰고 그럽니다. 


- 외국 공연을 하며 제주를 알릴 생각은 없나요?

- 올해 6월에 상해에서 제주를 알리는 행사에 명단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요. 그러나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죠. 저희는 외국에서 공연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근데, 외국 진출을 하고 그런 것보다 거점을 옮기지 않아야 제주다운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쿠바에도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 클럽에 연출자들이 계속 한 곳에서 음악을 하면서 대가가 되어서 이제는 사람들이 이 클럽에 가보기 위해 쿠바를 방문하기도 해요.


- 쿠바나 자메이카에 가보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겠어요.

- 네, 경비를 계산해보곤 하느니데, 1인간 250-60만원 정도의 돈이 들더라고요. 9명이면 2000만원이 드니까 만만치 않은 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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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 아무래도 2013년 '헬로루키', 스페이스 공감 공연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제주를 거점에 둔 밴드가 서울에 간 건 우리가 처음이었거든요. 몇 백팀 중에서 우리가 됐다는 것은 제주도에 있는 청소년 밴드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애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여기를 떠나지 않고도 다른 곳에서 음반을 낸다는 것은 이들에게 "제주도에서도 될 수 있구나"라는 기준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 공연 전에는 '우리가 과연 될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헬로루키가 되어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선 이후에서 우리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책임감'이 상당하겠어요?

- 저는 성공의 기준을 좀 달리하고 있어요. '돈을 많이 벌겠다, 전세계 밴드가 되겠다' 이게 아닙니다. 음악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은 '그냥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장수 밴드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음악을 처음부처 생계형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수익이 안나면, 음악을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저는 이런걸 고민하지 않았어요. 수익창출 부분을 음악에 의존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사우스카니발도 시작하게 됐죠. 그래서 우리는 3년 정도 페이를 한번도 분배하지 않았어요. 첫번째로는 우리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두번째는 악기를 하나씩 장만하고, 세번째로는 녹음장비를 하나하나 갖추는 것이 목표였죠. 음악은 제게 그냥 숙명같은 거에요. 그런 생각을 하니 편해지더라고요.




"음악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은 '그냥 하는 것'이죠.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일하고,

다른 사람들이 여가나 운동을 즐기는 나머지 8시간동안 음악을 하자가 저희의 생각입니다."




- 그렇게 생각하면서 음악하기엔 힘든 부분이 많지 않나요?

- 어릴 적 하드코어 음악을 할 때랑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공부를 잘하는 애는 뭔가 하나 부족하다거나, 운동을 잘 하는 애는 뭔가 다른 부분에서 달리는게 있거나 그랬잖아요. 그런데 요새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그런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는 예술가니까 스스로에 대해 뭔가를 구속을 해야한다'에서 요새는 여러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음악을 하다보면, 악기에 집중하는 시간이 하루종일 하더라도 4시간을 절대 넘지 않아요. 본인의 시간을 계획적으로 사용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일하고, 다른 사람들이 여가나 운동을 즐기는 나머지 8시간동안 음악을 하자가 저희의 생각입니다.


- 오리지널 멤버는 지금 몇 명이 남아있나요?

- 오리지널 멤버는 저 뿐이고, 나머지 친구들은 대부분 3년차입니다. 우리 밴드는 헬로루키, K루키 이후로 기반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문화관광부에서 지원도 받고, 도청이나 문화예술재단, 시청, 언론에서도 그 이후에 연락이 오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멤버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 전에는 마인드가 다르고 그러면 멤버가 바뀌기도 하고 그랬죠. 공연을 가게되면 멤버 몇명만 가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저희는 9명이 항상 함께하죠.


- 다음 앨범은 언제쯤 나오나요?

-  원래는 5월에 발매할 예정이었는데, 여러가지 문제로 내년 봄에 새 앨범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여름 밴드니까....






[ 푸르미 선생님과 사우스카니발의 '작은 라이브러리 ]



청소년 상담사로서 현재 안덕 문화의 집에 근무하고 계시는 김영숙(푸르미) 선생님. 사우스카니발이 가지고 있는 제주에 대한 생각, 음악에 대한 철학에 깊은 공감하면서 좋은 질문과 깊은 대화를 이끌어 내 주셨습니다.



- 음악 하는 애들 중에 외로운 친구들이 많아요. 사우스카니발의 존재는 그런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 4살 이후 할머니와 살게 되면서부터 뭔가 공허함 때문에 춤을 추게 된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마음을 알아서 서귀포에 있을 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기도 했어요. 공연을 하고, 수익금을 나이키 운동화 500켤레 사기.. 이런 것에 썼어요. 전 어릴 떄 에어조던이라는 운동화가 너무 가지고 싶었어요. 그때 그런 운동화 가지고 있으면 한 3개월 간은 자랑거리가 되잖아요. 복지단체에 수익금을 통째로 기부하는것보다 내 옆의 한 친구에게 많은 것을 해주자는 목표를 가지고 했죠. 복지단체에 운동화를 받을 친구를 한명씩 추천해 달라고 했어요. 대신 그 운동화를 그 친구가 힘들고 안쓰러워서 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긴 싫었죠. 그래서 그 친구가 성적이 오르거나 착한일을 했을 때 주기로 약속을 받았죠. 그리고 우리의 존재도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3년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앞에 나선다기보다 내 옆에... 어릴 떄 겪었던 아픔을 알고 있었기에.... 


- 음악하는 학생들이 이 스튜디오에 찾아오고 그러진 않나요?

- 학생들은 여기가 전문적인 곳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많이 오진 않아요. 대신 제주시에서 공간을 지원받아 5월 9일에 오픈하는 대안문화공동체 '몬딱도르라'가 오픈합니다. 여기서 포럼도 열고 공연도 이어나가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포럼도 거창한 그런 게 아니라 '로컬에서 뮤지션으로 살아남기', '음악 종사자들끼리 올바른 방향 찾기'를 공감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음악을 하고싶어하는 분들과 기획사의 연결고리가 되는 열린공간도 되고 싶고, 거기서 저작권과 관련된 지식을 나누는 장도 만들고 싶습니다.


- 음악한다고 할 때,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 부모님은 춤추는 걸 반대했어요. 23살에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잘했다"고 좋아하셨죠. 대신 음악을 한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말이 없으셨어요. 제가 3년간만 지켜봐 달라고 했죠. "알겠다"고 하신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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