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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휴먼라이브러리_강민철 예래생태마을위원회 위원장] 특별한 예래마을, 그리고 그 사람...










7월의 휴먼라이브러리] 예래동 유원지 토지 강제수용 무효 판결의 주역

                              강민철 예래생태마을위원회 위원장





특별한 예래마을, 그리고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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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고 힘든 싸움을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올 수 있었을까?"


휴먼라이브러리를 준비하면서 계속 머리에 맴돈 질문이었습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이 긴긴 싸움을 이겨낸 강민철 예래생태마을위원회 위원장님. 도대체 무엇이 이 힘든 과정을 이겨내게 했을까. 근본적인 물음이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JDC는 2005년에 서귀포시로부터 유원지 개발 인허가를 받아 사업에 나섭니다.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겠다는 정부 목적에 맞춰서 말이죠. 부지매입부터 들어갑니다. 그 지역이 바로 예래였고, JDC는 부지 매입 과정에서 일부 토지소유주와 합의에 실패해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을 받아 땅을 강제수용하고 맙니다. 강제수용을 받아들이지 않은 당사자 중 한 명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강민철 위원장입니다. 이들은 토지수용위원회와 JD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1심은 JDC의 승소, 2심에서 뒤집힌 판결은 대법원에서 '유원지 인허가와 토지 강제 수용은 무효다'라는 확정판결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요? JDC와 제주도 모두 혼돈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사업은 중단됐고요. 제주도와 JDC는 특별법을 개정해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모양새입니다.


긴 여정을 이겨낸 오늘의 주인공. 강민철 위원장님을 만나고 예래를 차근차근이 둘러보고 나니 비로소 질문에 대한 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으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궁금하시다면, 7월의 휴먼라이브러리를 꼼꼼히 읽고, 예래생태체험관을 직접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럼 오늘의 주인공, 강민철 예래생태마을위원회 위원장님을 만나러 가 보실까요?





- 일          시: 2015년 07월 21일 오후 2시

- 장          소: 예래생태체험관

- 함께한  이들: 고지훈, 김영숙, 김평선, 김홍구 회원님 외 사무처 식구들

- 기          획: 김미정 시민사업국장

- 글   /  사진 : 박유라 간사




- 예래 논짓물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나요? (예래생태마을체험축제는 8월 8-9일! go!) 

- 이번에는 예산을 따로 잡아서 '청소년 축제 위원회'가 발족됐어요. 청소년 축제 쪽으로만 한 500만원 정도로 해서. 사실 청소년 체험프로그램은 예전에 예래가 최고였어요. 그 당시 예래초등학교에는 '섬 속의 섬 기행', '오름기행' 등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참 복 받은 존재들이었어요.


- 예래는 '생태'쪽으로 상당히 앞서간 마을이란 생각이 듭니다. 논짓물 축제도 벌써 15회차나 되고요. 예래생태마을위원회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태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일찍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나요?

- 예래는 예전 서귀포에 통합되기 전엔 외곽동에 속한 곳이었어요. 유권자수도 적었고. 그래서 그런지 환경기초시설이 다 예래에 있었습니다. 하수처리장, 소각장, 매립장, 공설묘지.. 하여튼 다 왔어요. 90년 이전, 하수처리장이 생기기 전에는 뭘 짓는지도 잘 몰랐어요. 확장공사를 할 때 비로소 집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90년도예요 제주도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최류탄을 쏜 처음이자 마지막 집회였을거에요. 그래도 결국 막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게, 관리를 잘 하는 것이었어요. 관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럼 '조직을 만들자'라고 의견이 모아졌죠. 그래서 '예래환경연구회'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조직이 커지다 보니까 이 일, 저 일 다 하게 되었어요. 케이블카도 열심히 막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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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년에 발간된 '예래생태마을' 도서. 일찍부터 '생태'에 관심이 많았던 예래마을!






- 예래환경연구회는 97년도에 생겼는데, 그것만 봐도 예래는 환경과 생태적으로 앞서있는 동네였어요. 그러니까 다른 마을에서는 해안도로도 생기고하는데, 우리 마을은 해안선을 중심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만들지 않았어요. 우리가 못하게 했거든요. 그건 잘못된거니까 우리 마을에서는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었죠. 우리마을은 계획선이 좀 올라가 있어요. 해안선과 바로 붙어있지 않고. 그것도 더 올라가 있었는데, 마을 대표들이 해안선을 안만들테니까 계획선을 내리는 것은 터치하지 마라.. 그래서 해안선만 안 건드려질 뿐이지 어정쩡하게 내려왔어요. 우리가 한 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게 하는 일'이었죠.




우리가 한 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게 하는 일'이었죠.




- 마을에서 농촌관광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 어떤 사람들은 '환경이 밥 먹여주냐?'하고 묻습니다. 근데 환경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보여줄까 하다가 2002년에 농촌관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농림부에 사업을 신청했는데 농림부는 농촌관광마을이 '가능하다'고 하고, 서귀포시는 '안 된다'고 하는거에요. 예래가 서귀포시의 일부라 농촌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죠. 당시 서귀포 문화예술과 강화순 계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직 이름도 기억이 납니다. 퇴근한 후에 마을에 와서 같이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결국 교래와 예래가 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지금도 남 같이 않은 분입니다. 이 마을의 미래를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이시죠. 마을의 시발점엔 이런 분들이 있었다는 건 꼭 기억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무원들이 많이 나와야 된다고도 보고요.


- 생태마을위원회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 그런데 농촌관광과 관련된 운영은 환경연구회에서 하기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운영 조직을 만들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게 '생태마을위원회' 입니다. 막상 위원회가 만들어지니 조직이 만들어지기까지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거기다가 버자야 사건이 터지니 '세콤 달고 살아야 하는데, 이런걸 왜 하나'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래서 결국 생태마을위원회는 일반 조직이 되어 버렸습니다. 멤버도 빠져버리고.. 논짓물 축제 하나만 하고... 그러나 이런 어정쩡한 시기를 지나 이제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아까 말씀드린 하수처리장 반대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환경연구회에 참여하게 되면서는 많은 걸 배우게 됐고요. 계속 '가치의 재발견'이 이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환경이라는 가치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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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래생태체험관에서 진행된 휴먼라이브러리









- 버자야의 개발사업 발표 이후 마을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 대책위원장을 잘못뽑은 게, 결국 마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말았어요. 이들이 나서서 '휴양형 주거단지 조직협의체'로 대책위를 바꿀 정도였어요. 회의를 하는 조직도 아니었을뿐더러, 이 조직이 있으니 다른 조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유령조직과 다를 게 없었죠. 그래서 우리가 나서서 공개사과를 요구하기도 했어요.


근데 대책위원장의 행동이 전화위복의 기회를 가져다 줬어요. 이 사람 덕에 제가 재판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게 되었거든요. 원래는 제 밭이 이 사업의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근데 사업이 논의되면서 제 소유의 밭이 사업 범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큰 평수도 아닌 딱 140평이 말이죠. 전 이 140평으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을 주저앉힌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땅의 평수가 크지 않으니 재판을 하기도 수월했어요. 재판 비용도 평수대로 지불했기 때문에 부담도 안됐죠. 재판을 하게 된 것은 밭이 아까워서도 돈이 필요해서도 아닙니다. 이렇게 싸울 근거가 만들어졌는데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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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에 있어 중도하차는 없다, 끝까지 간다.' 저는 이런 제 뜻을 변호사에게 분명히 밝혔어요. 나름 재판 준비도 철저히 해 나갔죠. 온라인으로 계획 변경 사항들에 대해 버자야 측에 계속 Q&A를 남겼어요. 이들이 스스로 대답하면서 말을 바꾼 것들을 변호사에게 넘겼죠. 온라인에 남은 흔적이 근거가 된 셈이죠.


근데 이렇게 해서 고법에서 이겼는데, 조용한 거에요. 시민단체고, 동네고, 공무원들도... 너무 조용하더라고요. 그때는 이 사건에 관심을 좀 줬으면 싶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용한게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었다 싶어요. 이슈가 되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났으면 판사가 또 주춤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지금 변호사와 사이가 좋지는 않아요. 재판을 진행해야 하니까 변호사는 '돈이냐? 땅이냐?'라고 묻죠. 그런데 저는 이 질문에 답을 쉽게 하지 못해요. 둘 다 안한다고만 하죠. 제 목적은 땅을 찾거돈을 찾는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진행을 못하죠. 그치만 변호사는 진행만 나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소송을 같이한 사람 중 2명은 변호사를 만나더니 말이 달라지기도 하더라고요. 저보고 '시민단체 만나면 안 된다'고 말해주기까지 했죠.


                                                                                       



변호사는 '돈이냐? 땅이냐?'라고 묻죠.

그런데 저는 이 질문에 답을 쉽게 하지 못해요. 둘 다 안 한다고만 하죠.

제 목적은 땅을 찾거나 돈을 버는게 아니거든요.




- 초시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 고법을 포기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 초기, 소송에 참여한 사람은 22명이었어요. 근데 지역 마을 대표들이 22명을 설득하고 다녔죠. 지금도 이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요. 현재 대법원 판결이 난 마당에도 자신들이 정당한 듯 얘기하고 다니죠. 지금은 땅 찾는 게 목적이 아니다보니까 소송을 위한 '규합'을 하려하지 않아요. 규합을 하게되면 결국 나눠지게 되어 있거든요. '그냥 기다리십시오' 하고, 관망하고 있는 상태이지요. 1심에서 소송에 참여한 22명 중 18명이 고법 재판을 포기했어요. 이들은 중재를 통해 고법을 안 가는 대신 보상을 좀 더 받고 소송 참여를 포기했죠. 그러나 현재는 이들의 권한이 제일 없어져 버렸어요. 한마디로 난리가 난 거지요. 현재는 11명이 소송중에 있습니다. 이들이 승소하게 되면 협의 중인 사람들의 권한은 자동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들은 '준재심 청구관련 규정'에 의해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들이 권한을 다시 찾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자연히 편해지는 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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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공사가 중단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 지금 도지사는 특별법을 개정해서라도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 제가 봐도 돌파구는 그거 말고는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에요. 저는 '법을 만들겠다는게 문제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법을 만들려면 좋은 그림이 그려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도민 대타협'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업이 무효화 된 이후에도 참 큰 문제가 될 것 같아요.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JDC의 권한을 제주도에 이양시키는게 제일 바람직하다고 봐요. 제주도의 그림은 제주도와 도민이 그려야 되는 거지, 정부가 그려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제주도와 같이 1000만 이상이 찾는 관광지는 사실 정부 없이 돌아갈 수 있거든요. 제주도와 도민이 주체적으로 제주 실정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맞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일단 도지사가 그림을 계속 그려서 보여줘야 된다고 봐요. 도민들이 폐기할지언정 계속 그리다보면 결국 타협점이 찾아지지 않겠어요?





결국 '도민 대타협'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론 JDC의 권한을 제주도에 이양시키는게 제일 바람직하다고 봐요.

제주도의 그림은 제주도와 도민이 그려야 되는거지, 정부가 그려야 하는 게 아니잖아요.




현재 언론에서 말하는 '공사의 60%가 진행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1차 사업의 60%를 말하는 거에요. 전체 사업비 2조 5천억원 중에서 1/10 정도인 2천 5백억이 들어간 상태이지요. 현재법으로는 원상복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 낭비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로서는 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예요. 새로 뭔가를 하려해도 백지화시키고 해야하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지요. 따라서 서로가 해법을 잘 모색해 보는 게 맞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한시법 같은 걸 만들어서 해결할지라도 말이죠. 그러나 아예 법을 규정지어서 만들어버리면 난개발이 부추겨질까 우려됩니다. 서로 어떻게 그림을 잘 그려 나가느냐가 이 사건 해결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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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딧불이, 고인돌, 하천, 군산... 아름다운 예래마을, 그리고 예래천.




- 예래동은 고인돌도 있고, 반딧불도 많이 보인다고 들었어요.

- 반딧불이는 1년에 2번, 6월 말과 9월초에 볼 수 있어요. 6월 말에 보이는 애반딧불이는 초저녁에 볼 수 있고, 9월 초에 나타나는 늦반딧불이는 조금 늦은 시간까지 볼 수 있어요. 9월 초가 반딧불을 보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기이지요. 그래서 내년에는 반딧불이가 나타나는 시기에 맞춰서 축제를 해야된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생태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러한 축제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된 거죠.


- 지금 예래생태마을위원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추진되고 있나요?

- 현재 5억원 규모의 문화마을사업을 신청해 놓은 상태예요. 이 사업이 추진되면 마을의 기본적 뼈대가 구축되는 거나 다름없죠. 사실 현재의 마을사업들은 껍데기만 늘어났지,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볼 수 없어요. 대부분 기초가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거든요. 마을의 유래나 역사 등의 이야기가 발굴되고 이 위에 각종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아요. 그래서 이 사업의 계획은 '기초조사 --> 스토리 발굴 --> 마을의 아이들과 노인 중심의 해설사 발굴'입니다. 기초조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요. 이것만 제대로 구축해 놓으면 어떤 사업이더라도 다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외에도 조간대 해설사 양성이나, 상시 플리마켓,공연, 생태프로그램 개발도 고민하고 있어요.


- '나에게 예래는 00이다'라고 하면, 어떤 단어를 채워넣고 싶으신가요?

- 나에게 예래는 '전부'입니다. 예래같이 생태적으로 거의 모든걸 다 갖춘 마을은 많지 않아요. 뒤에는 오름이 받치고 있고, 하천은 물론 바다와도 맞닿아 있죠. 참 구도가 잘 갖춰져 있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예전에 왔던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을이지요. 이런 마을을 지키는 일. 마을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예래는 '전부'입니다.

예래를 특별한 마을로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 개인적인 꿈이나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누군가는 제게 묻습니다. '정치에 꿈이 있냐'고. 그러나 전 정치에 뜻은 없습니다. 정치가 꼭 도에 가서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마을을 잘 가꿔서 하나의 '모델'이 되게 하고, 이것을 '전파'시키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과적으로 "저는 예래를 특별한 마을로 만들고 싶습니다."

- 저는 인복이 많은 거 같아요. 도움을 청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준비하는 축제도 도와달라고 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된다'면서 달려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중 젊은 친구들도 있습니다. 통통튀는 친구들이 와서 일을 하다보니, 이들 스스로가 새로운 걸 하고싶어해요. 그럼 같이 얘기하면서 방향설정을 해 나가지요. 저질러야 일이 되더라고요.





8월 8일부터 9일 이틀간, 예래에서 '예래생태마을체험축제 2015'가 열립니다.

    예래마을은 자연과 사람들의 정을 느끼고 싶다면, 휴가를 더 짜릿하게 즐기고 싶다면,

    한번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자세한 사항은 아래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

    http://korean.visitkorea.or.kr/kor/inut/where/festival/festival.jsp?cid=1316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