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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휴먼라이브러리] 폐목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 RE 신치호 대표











11월의 휴먼라이브러리] 폐목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 RE 신치호 대표




나무를 심는 나무, RE:

- 제주의 폐목재로 만드는 제품, 지구를 지키다. CEO, 신치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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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를 아시나요?

RE는 RescuEarth의 약자로,

제주의 폐목재 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기업입니다.


태워져 버릴 수밖에 없는 폐목재를 다시 사용하면,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지구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11월의 휴먼라이브러리는 '나무를 심는 나무'의 대표,

폐목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가 신치호 대표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의 제주에

꼭 필요한 하나의 아름다움 움직임이란 생각에 신치호 대표와의 휴먼라이브러리를 준비했지요.

송당에서의 송당송당했던 이야기로 함께 들어가 보아요!



  

- 일          시 : 2016년 11일 29(화) 오후 2

- 장          소 : 송당에 위치한 RE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616-1)

- 기         획  : 박유라 정책팀장

- 인터뷰 정리 : 박유라 정책팀장

- 사          진 : 윤경미 시민사업팀장, 박유라 정책팀장, 김예환 간사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 왜 '업사이클링' 관련 일을 선택하게 됐고, 지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나?


- 매사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제가 쓰레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단지, 무언가를 주워오고 하는 게 어릴적부터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늘 어머니가 자라오면서 하시던 말씀이 '네가 주워오는 게 제일 많다' 였다. 주워오는 것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쓸모 있어 보였던 것 같다. 이렇게 내재되어 있던 습관같은 것들이, 예전에는 내재되어 있다가 성장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싶다하는 욕구로 자연히 이어지게 되더라. 당시에는 업사이클이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그때는 주워올 것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만들다보니 양이 많아지니까 누군가에게 선물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 팔라고 해서 팔기도 하니 재미가 붙었다.




 자꾸 하니까 또 잘하게 된 것 같다.


- 그렇다. 오래하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일을 겪다가 아름다운 가게의 '에코파티메아리'라고 하는 곳과 인연이 닿았다. '에코파티메아리'는 폐현수막과 폐가죽으로 패션잡화를 만드는 부서이다. 거기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름 이 바닥에서 만개하게 되었다. 전문성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쪽 일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 내 인생의 나머지는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이런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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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치호 대표와 김예환 간사




 어렸을 때에는 주로 어떤 걸 주워왔나?


- 다양하다. 쇠조각을 비롯해, 고장난 기계 안에 있는 정밀한 부품들도 되게 좋아하고 나무도 엄청 주워왔다. 예전에 일회용 우산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나. 우산 살이 언젠가는 쓰여질 것이라 생각해 수십개 주워다 놓았던 기억이 난다.




◾ 어머니께서는 정말로 정리하기 힘들어 하셨을 것 같다.


- 어머니는 정리가 안 되는 물건들을 가지고 온다고... 나무 우산의 대나무 살은 내가 정말 탐을 냈던 품목이었다. 비가 오다 한번 그치면 길바닥에 많이 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 주워왔다.


비닐을 뜯어서 버리고 살만 모았는데, 그걸로 낙하산도 만들고 그랬다.

우리 집이 삼형제인데, 어머니께서는 '너 하나 키우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하)

말썽을 너무 많이 피워서.




◾ 아름다운 가게의 에코파티메아리에서는 폐가죽, 폐현수막을 업사이클링에 사용했다고 하셨는데,

   많은 업사이클링 재료 중 폐목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 업사이클링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재료들에 대해서도 알게되고 공부도 하게 되더라. 이렇게 쓰레기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에코파티메아리에 있기 전에 고물상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그때도 느꼈던 바인데,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에도 기증품을 받아서 수선해 판다. 그 중 제일 많이 버려지는 것이 나무다. 고장난 가구는 전문성이 없으면 고치지 못하더라. 폐현수막 같은 것들은 주워다가 빨고 잘라서 쓰면 되는데, 나무는 이미 형태를 갖추고 있기도 하고 의자의 경우, 다리가 삐걱거리기라도 하면 고치기도 힘들더라. 가게들도 이런 것들은 거의 폐기하는데, 폐목재 등 가구류의 경우만 돈을 주고 버리는 걸 봤다. 고물상도 돈을 받고 이런 것들을 폐기물로 처리한다.



근데, 제가 어릴적부터 다년간 주워온 경험으로 봤을 때 분명,

'나무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쪽 판이 고장나면 다른 판을 떼다가 고치면 될텐데..' 이런 생각을 가졌다. 결국 '이걸 사업화하면 어떨까'하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더라. 원래는 아름다운 가게 내부에 제안을 했다. 독립 부서로 이걸 해 보면 어떻겠냐고. 그러나 '하던 일이나 잘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아름다운 가게 내에 유일한 적자 부서였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에코파티메아리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미운오리새끼 같은 부서였는데, 거기서 뭔가 일을 저지르려고 하니까 꺼려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쯤 되면 '내가 나가서 하는 게 맞는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심화해서 폐목재의 발생량 등을 공부하면서 목재를 다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재에 국한됨이 없이 모든 쓰레기에 관심이 있지만,

지금 현재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첫 번째 소재로 목재를 선택했다.




◾ 그런데 목재를 선택했을 때는 고민도 좀 많이 됐을 것 같다.

   목재는 폐현수막과 달리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나. 이런 의자도 다 핸드메이드?


- 그렇다. 발로는 못 만드니까.. (하하) 보시면 알겠지만, 100% 폐자재는 아니다. 이게 되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게 된 거다. 처음에는 폐자재를 100%로 해서 만들었다. 그랬더니 너무 많은 시간이 들더라. 조각을 크기에 맞게 다 맞춰야 되니까, 작은 작품 하나 만드는데도 다 붙여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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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의 작품 




제 꿈은 이거다. '조금 독특하고 디자이너블한 제품이 일반 사람들의 집에 잘 소구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만 해도 원목 가구를 가지고 있는 집이 많지 않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저렴한 가격에 이걸 판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니까 고민에 빠진거다. 폐목재를 이용해 만들다보면 막상 몇개 만들지 못하는데, 우리도 생계도 유지하고 작업실도 돌려야 하니까 비용적인 고민들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주면 친구들에게 물었다. 국산제품은 몇 퍼센트를 써야지 이게 '국산'으로 인정받냐고. 그러니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다 다른 답변을 주더라. 90%다, 100%다, 50%다.. 이렇게. 근데  '폐자재 물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50%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성자재를 50%부터 들여서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만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더라.




◾ 폐자재를 붙이는 건 훨씬 어려운가?


- 훨씬 어렵다. 폐자재는 이미 노출되어 있던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물성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틀어짐 현상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 목재들을 가지고는 바로바로 작업이 되는데, 폐목재는 켜고 잘라서 기성 목재처럼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전에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는 공정도 필요로 한다. 기성 자재를 쓸 경우 필요치 않은 공정이 1-2개 더 추가되는 것이다. 거기에 상당히 애를 먹는다.




◾ 일반인들이 취미삼아 하기에는 좀 힘들겠다.


- 성질만 급하지 않으면 취미로만 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을거다. 나무 작업이라는 게 오늘 아침에 작업을 시작해서 저녁에 완성된 무언가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기성자재를 잘라서 탁탁탁탁 이어 붙이면 금방금방 되긴 하지만, 어차피 자기가 쓸 거면 그럴 필요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무가 사람의 인성을 다스리는데는 참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저도 사실 성격이 되게 불 같았다. 목재 다듬는 일을 하면서 많이 줄어든 게 이정도다. (하하)

정말 성격이 급했다. 만들다가 뜻대로 작품이 되지 않으면 부쉬기도 많이 부쉈다. '다신 안해' 집어던졌다가, 다음날 주섬주섬 주워서 붙이고 이러기도 했다.


결국 목재 작업은 자기와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이더라.

만들면 만들수록 더더욱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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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폐목재는 주로 어디서 구하나?


- 예전에는 트럭을 가지고 돌아가니면서 폐목재를 구했다. 바닷가도 갔다가 폐기물처리장도 가고 했었는데, 지금은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철거업체들이 생기다보니, 그분들이 알아서 '쓸만한 나무가 있다'고 전화를 주신다.


저희는 원목만 받는다.

폐자재 중에서 MDF(목재합판: 톱밥가루를 본드로 붙인 합목)는 받지 않는다. MDF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곁에다 두고 쓰기에 적합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집 안에 MDF 가구들이 많다보니, 우리는 포름알데히드 속에서 산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실리콘 등 대부분이 유기화학물질로 만들어져 있지 않나. 사람 몸에 좋을 수가 없다. 저는 이런 것들에는 반대하는 편이라, 폐자재이지만 진심을 담은 디자인을 원목에 구현시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비록 과정은 더디지만 이렇게 만들고 있다.




 RE:는 주로 어떤 것들을 만드나?


-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다판다닷컴'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안 하는게 없을 정도로 다 한다. 처음에는 컵받침 등 소품류를 주로 만들었다. 사실 조그마한 물건들이 폐자재랑 잘 맞는다. 나무들이 다 작기 때문에. 근데 만들기는 쉬운데 팔리지가 않는 문제가 발생하더라. 컵받침을 수백개씩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나. 이런 것들은 일상적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사면 영원히 안 살 확률이 높은 제품이다.


그러다 누가 '가구를 한번 만들어서 납품해 볼 수 있지 않나'라고 제안을 해서 가구도 만들고, 그랬더니 누군가가 또 '인테리어도 할 줄 아냐'라고 의뢰를 해서 인테리어는 제주에 와서 처음 해 봤다. 막상 인테리어를 해 보니 인테리어가 폐자재랑 잘 맞더라.


어차피 폐자재는 우리가 쓰지 않으면 매립되거나 소각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것들을 최대한 많이 사용해야 하는게 우리들의 미션이다. 제주도만해도 폐자재가 만 몇천톤씩 발생하는데, 우리가 일년에 고작 써봐야 10톤도 쓰지 못한다. 그렇다치면 폐목재를 최대한 많이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하니까 사업 분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조형물을 만들기도 하고. RE는 폐자재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쨋든 많이 사용하면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이런 의자는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


60.jpg- 그렇다. 기본적으로 한 3일에서 일주일 정도는 걸린다고 봐야 한다. 한개를 만드나, 여러개를 만드나 하는 것은 하루이틀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같은날 동시에 작업을 해서 자르고 붙이고, 붙이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은 한 개를 만들면 금방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여러개 만드는 거라 거의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의자는 지금 '서연의 집'에 들어가 있다. 저건 공사장에서 쓰는 얇은 각목이다. 이런 각목도 많이 들어오는데 일일이 붙이는 게 되게 오래 걸리더라. 그리고 나무결을 보면서 붙이지 않으면 막 벌어진다. 결을 고려해서 붙여도 결국에는 조금씩 갈라짐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목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갈라지는 게 '문제가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건 원목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주문제작인가? 


- RE의 작업은 현재 대부분이 주문제작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우리가 6년 동안 여러가지를 만들어 왔기 떄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준비중이다. 그동안 작업해 왔던 것들을 정리해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리뉴얼해서 제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이나 2월 중 RE의 오프라인 매장을 만나 볼 수 있을거다.


우리가 느리더라도 우리만의 색깔과 폐자재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에 1년 정도 매장 준비과정을 거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두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세간살이'의 '세간'을 매장 이름으로 지어 놓은 상태이다. 작은 소품과 소가구들이 판매될 예정이다.




◾ 이런 질문 해도 되나 모르겠다. 이런 의자는 얼마나 판매 되었나? 50만원?


- 아니다. 우리 제품은 10만원, 12만원... 제일 비싼 게 15만원이다. 그 정도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 전시된 작은 소품들도 보인다. 그건 지금 구매할 수 없나?


- 닐모리동동이라고, 거기서 우리 소품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만 유일하게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 업사이클링 조직이 여기 말고 또 어디가 있나?


- 목가, 루니, 재주도 좋아, 바다쓰기 등등이 있다. 루니라는 친구는 우리와 함께 작업을 하는데, 주로 폐자재로 악기를 만든다. 악기의 음계도 세밀하게 잘 맞추고, 참 재능이 많은 친구라 느꼈다. 내가 아는 건, 이 정도 수준이다.


제주도에 이런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저희가 강의를 가고 계속 알리려고 하는 이유는 '제조업에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손쓰는 일을 하면 치매도 안걸리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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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목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인큐베이터, 송당에 위치한 RE의 작업실



이런 작업이 제주도에는 참 필요한 작업들인 것 같다. 제주도를 자급자족 도시를 만들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아직 제주도는 소비 지향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산업이 관광업이고 하다 보니까. 생활에 불편하지 않은 제품들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만들어내야, 제조/산업(1차 산업)이 존재해야 외부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돈이 여기서 쓰여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인터넷 쇼핑을 하게 되면, 그 돈이 결국 육지 돈이 되는 것 아닌가.

빛 좋은 개살구만 될 우려가 있다.




◾ 직원은 얼마나 되나?


- 지금은 둘이서 일하고 있다. 둘이서 일하는데, 일하는데 있어서는 더 편하더라.

예전에는 4명부터 10명까지 있었는데, 일하기 좋은 환경이 꼭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부적으로는 조직의 전형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초기에는 인원을 10명씩 늘려서, 팀 이름도 다양하게 하고, 의사전달 방식도 수평적 문화를 지향한다든지. 그런데 막상 해 보니 그런 문화에 적응되는데 쉽지가 않았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이 많아질 때는 루니나 재주도좋아 같은 친구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게릴라성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방식으로 일을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편했다. 조직은 따로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어디서 문의가 들어오거나, 일이 많으면 서로 상의해서 일을 함께하는 방식이다.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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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 채용 방식이 궁금하다.


- 공채로 진행되었다. 블라인드 면접 방식을 채택해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이었다. 3가지를 내라고 해서 봤는데, 자기소개서/ 이력서/ 제안한 미션에 대한 답을 달라고 했다. 폐자재 활용방안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한다든지, 디자이너에게는 그런 방식에서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 묻기도 했다. 아무리 이런 것들이 중요해도 가장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서류가 모두 바르게 제출되지 않은 후보자는 탈락시켰다.


그렇게 뽑힌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면서, 나이랑 학교를 퇴사할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면접 때, 그 친구가 제출한 미션에 대한 대답 뿐이더라. 나머지 것들은 참고로 읽기만 했는데, 기억에 별로 남지 않았다.




◾ 그럼 직원을 공개채용 했을 때, 제주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원서를 많이 제출했었나?


- 저희 회사 첫 번째 디자이너가 제주도 출신에 서귀포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였다. 이 분을 제주도 분이라 뽑았다. 육지에서 일하신 분이더라도, 제주도 분이라 제주도에 대해 감각이 있으실 것 같아서 함께 일하려 했다. 근데 이 분에게 서울에서의 작업을 마치고 RE 작업을 제주도에서 이어가자고 하니까 내려가기 꺼려하는 부분이 있더라. 그래서 그 분과의 작업은 서울에서 함께한 게 끝이었다. 그 이후로는 제주 분들을 채용해서 일 한 적이 없다.


제주도 분들 중에 서류를 내시는 분이 없다.

우리가 변두리에 있다보니, 멀다고 얘기들을 많이 하셨다. 우리가 여기 이사오기 전에는 집도 같이 구해 살고 했다. 근데 제주분들은 특히 시골 사시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제주 시골운 사실 육지 사람이 지키지 않나. 




◾ 근데, 여기서 물건을 만들때 들어가는 '공'에 비해서, 물건 가격에 너무 욕심을 내지 않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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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기계 욕심이 많다.


사람이 덜 다치면서 빨리빨리 힘을 덜 들이고 만들 수 있으면 사실 비용을 좀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목공 기계나 목공 작업들은 다년간 숙련이 되어야 가능한 작업들이 많다. 안전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이런 방식 말고 전자제어가 가능한 방식으로 이어 나가서,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1-2년의 숙련 작업 만으로도 여러가지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 가격도 좀 낮출 수 있다.


지금 제주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쓰레기 대란이다.

이런 시국에 제가 '작가'라면서 작품을 50만원 ,100만원 받고 부자들의 소장품으로 파는 것은 좀 반대하는 편이다. 사실 안락한 의자는 다리품을 파는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부자들은 남이 열어주는 차 타고 다니는데 솔직히 의자가 없어도 되지 않나. 사실 우리 모토도 '노동자에게 소파를 주자'는 취지였기 때문에, 사실 가격에 대해서는 조금 많이 예민한 편이다.


예전 디자이너들하고도 많이 싸웠던 이유가 디자인이 복잡하면 만들기가 어려워지는데, 그러면 나무도 많이 써야하고 결과적으로 가격이 올라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겠어?' 였다. 그래서 가격 문제에는 많이 예민한 편이다. 가격은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제품을 만든다.




◾ 가격책정 부분에서 조금 너무한 부분도 있는 거 아닌가?


-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단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디자이너들은 영감이 떠오르면 마음껏 그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이 이 업계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소재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분야에서는 '에코시크'라고 해서 나쁜 뜻으로 쓰는 단어가 있다. 일반 사람이 살 수 없는 물건을 가지고 건방을 떠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러면서 환경주의자인 척 하는 사람들.. 그런 제품들은 가격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 사실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대량생산의 제품은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 제품들은 손질도 오래 걸리고 , 만드는 공정에 수공도 많이 들어가지 않나.


- 하나를 팔 때 얼마가 남는지에 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일반기업적인 사고를 하면 사실 비싸질수록 좋다. 이케아를 우리가 타도대상으로 보면서도 닮으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나라는 히트를 치면 물건이 부족해지면서 자연히 가격이 높아지는데, 이케아같은 경우는 많이 팔리는 물건을 싸게 판다. 팔리기 때문에 조금의 수익을 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방식을 추구한다.

우리 제품이 많이 팔리게 되면 굳이 30%의 이윤을 내지 않아도 10-15% 정도 선에서의 수익을 내도 되지 않을까. 양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만 되어도 회사를 운영하고, 우리도 생활하기에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차피 쓰레기로 만드는 것 아닌가. 이런 폐자재 제품을 전국민이 하나씩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는 좋다고 본다. 쓰레기도 줄이고, 저희 회사도 돌아가고, 사람들은 간접적으로나마 환경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고.. 이런 것들은 결국 여러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본다.


일반기업이 성장하는 속도보다는 떨어지지만, 그런 속성을 닮아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좀 더디다.

그래도 오래 살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 이 공간은 원래 무얼하는 곳이었나?


- 여기는 원래 축사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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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사를 작업 공간으로 선택한 RE



◾ 공간이 느낌있고 좋은데, 겨울에는 조금 많이 춥겠다.


- 제가 원래는 눈, 비오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여기 살면서 비와 눈이 제일 싫어졌다.

  보수를 해도해도 지붕으로 눈과 비가 샌다.

  여기는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바깥 날씨를 다 알 수 있는 구조다. (하하)


처음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공간 내부를 조금 더 현대적으로 바꿔보자' 등등.

그래도 저희는 그냥 여기 보이는 그대로가 좋아서 추워도 좀 참자는 마음으로 여기 지낸다. 버티는거다.




◾ 여기 이 공간은 어떻게 찾게 되었나?


- 제주도 처음 내려왔을 때, 여기를 비롯 몇군데를 봐 뒀다. 초기에는 기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 크기의 공간이 필요치 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여기와서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한 3년 만에 이루어졌다.




◾ '성공'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생각 이뤄내셨으니.


- 그냥 '들이대'.

  제가 잘 하는 거다. 필요에 의해서 사람들은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여기를 예전에도 주인을 찾아 빌리려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수소문해보니, 이 공간을 빌려주지도 않는다고 하더라. 그 와중에 우리가 이 이전 작업실에서 쫓겨나게 됐다 그리고나서 1-2년 동안 공간을 못 찾으면 작업을 못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여기가 생각이 나서, 각오를 하고 여기 주인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별 이야기도 안했는데, 선뜻 빌려주셨다. 전화로 단호함이 느껴진 것 같다. '여기가 아니면 작업할 공간이 없다'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여기가 꼭 필요하다고 했더니 흔쾌히 쓰시라고 하시길래 여기에 안착하게 되었다.




◾ 아름다운 가게의 에코파티메아리를 그만 두었을 때, 아쉬움은 없었나?


- 사실 그런 아쉬움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코어적인 1.jpg것을
좋아하는데, 현수막과 폐가죽을 활용한 업사이클링은 의미는 있지만, 시의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떄 이미 현수막은 관공서에서 낙엽담는 봉투로 만들어 쓸 정도로 범용화 된 상태였다. 그러면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새로운 소재를 다른 이들에게 제시해서 이런 재료도 업사이클링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또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다른 소재로 넘어가는.. 선도해 나가는 부분도 필요한데, 계속 잘 팔리는 것에 집중을 하다보니 약간 멈춰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폐가죽의 경우도 특수폐기물이라 소파공장에서 쪼가리를 가져다 썼는데, 우리 것이 잘 팔리다 보니까 업자들도 가져다가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었다면, 이 소재는 내려놓고 다른 사업분야를 개척해 나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주장하던 차에, 폐목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끼리도 내부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폐목재 사용이 일반화되고, 선진적으로 프로세스가 완성되면 우리는 이 소재를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소재나 아이템과 결혼하지 말라고 저는 계속 이야기한다.

세상에 쓰레기는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손 못대는 쓰레기는 정말 많다.


사람들은 무언가로 한번 성공을 거두면,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다른 편이다.




◾ 편히 살기는 힘들어 보인다.


- 이런 부분에서는 환경단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단체도 더 이상 쓰레기도 나오지 않고, 환경 문제도 발생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해산하는 그런날을 결국 꿈꾸는 것 아닌가. 공부를 해 보면, 전국에서 쓰레기 절대량은 제주도가 제일 조금 나온다. 그런 욕심도 생긴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 폐자재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통해서 '사회적 전형'을 만들고 싶은 거다. 이런 기업이 어떤 곳에서 이런 일을 했더니 쓰레기 발생량이 줄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더라..


이런 전형이 만들어지면, 다른 지자체의 다른 청년들이 여기에 뛰어 들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저희가 한 곳에서만 해결해 나가면, 다른 곳에서는 자동적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는 거다.

그런데 여기가 가장 작더라도 폐목재 만톤이 사실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만톤은 저희 제작/판매로 계산하면 수백억이 넘는 양이다.

제주도에서는 소구할 수 없는 매출인거다, 사실. 수출도 해야하는 상황까지 가야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서울같은 경우는 소재은행이라는 것이 있다.

박원순 시장이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보니, 쓰레기가 폐기장으로 가기 이전에 공간을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쓰레기들을 목재, 철재, 플라스틱 등으로 분류해서 이걸 사용하고 싶어하는 개인 및 단체,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이들이 흩어져있는 쓰레기를 찾으러 다니는 것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지 않나. 그런데 그곳을 한 곳에 집적화시키면, 일자리도 창출되지만 쓰레기도 줄이고, 쉽고 편하게 저가로 폐품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


제일 아쉬운 건 제주도. 제주도도 이걸 했어야 한다고 본다.

되게 마음이 급했다. '서울이 이걸 하지 전에, 제주도에서 했어야 하는데..'

제주도야 말로 이런 것에 선도적으로 설 수 있었는데, 아직 그걸 하지 못하고 있다.

저도 사실 정책적인 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쉬워 하면서 누군가가 이런걸 주장하지 않을까...


쓰레기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런 실험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전국에서 제주도가 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 RE의 꿈과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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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 보니 더디고, 오래 걸리긴 하더라.

저희가 어디를 가면 제품은 '이케아'를 잡겠다고 하고, '아이디오'라고 세계적 디자인 그룹이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의 경우가, 여기에 엘리트 인턴을 보낸다. 혁신적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인데, 내부적으로는 여기가 사실 우리의 롤모델이다. 나중에는 대기업이 역으로 우리에게 조직의 비전을 배워갔으면 한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었다. 성수동에 쇠 깎는 기계 공장이 있었는데, OS운동이라고 하는 걸 이 공장에서 집행하는 걸 보고, 대기업에서 배워가려 직원들을 보내 훈련시킨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아생전에 되느냐, 이게 문제이긴 한데...


이런 정신들이 남아 롱런해서 사회에 의미있는 일들을 하는 기업으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제주도에 2010년 경에 내려오셨다고 들었다. 그때의 제주와 2016년 지금의 제주, 쓰레기/교통/주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달라진 점들이 몸소 느껴지나?


- 제가 지금 송당을 사는데, 대천동에서 송당에 들38.jpg어오는 길에
예전엔 차 한대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때는 시골길에 중앙선이 없지 않았나. 그냥 차도 같은 곳으로 걸어다니기도 했다. 차가 하루에 열 대도 다니지 않으니까. 근데 지금은 아이들한테 길에서 자전거도 못타게 한다. 너무 위험하니까. 여기도 너무 도시화 된 것 같다.


송당은 사실 보리송당이라고 해서, 제주도 사람들도 잘 모를 때가 있었다고 들었다. 근데 이제는 편의점 등등 급속하게 도시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개발의 양면인데, 개발욕구는 사실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시골에 살면서 닭 한마리를 먹으려고 해도, 여기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치킨 먹겠냐고 물어보고 다녔다. 10마리 정도가 되어야 치킨집에서 배달을 해주니까... 이런 소비욕구들이 생기는 건 당연한건데, 잘 알지만 환경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걸 되돌리는데는 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좀 아쉽다.


저는 그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계속 불편한 점을 느끼면서 시골분들에게

시골의 정취를 느끼라고는 할 수가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개발하는 게 편리하니까

개발하는 게 좋다, 라고 말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어릴 적 꿈은 뭐였나?


-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초등학교를 다녔는는데, 막연한 생각에 군인이 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꿈이 대통령에 가로 치고 (군인)이었다. 그게 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랬던 것 같다. 육사를 가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조건 군인이 돼야된다...


그러다가 제가 육사를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학교다닐때 말썽 정말 많이 부렸다.


한편으로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다.

사실 대학교 학과를 쭉 봐도 가고싶은 곳이 당시엔 없더라.


대학을 가지 말기로 마음을 먹으니까, 그때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정말 행복하게 지냈다.

공부라는 걸 내려놓으니까, 학교가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다.

정말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 제주참여환경연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캠페인이라고 치면,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캠페인성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를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력을 통해서 정책입안자들을 압박하는건데, 원칙과 원론에 대해서만 이야기들을 하게되면 일반 시민들이 피로도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이걸 하지 않으면 잘못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지를 두면서 낮은 단계의 캠페인을 벌여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에게 하는 캠페인은 쉽고, 편하고, 시민들이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딱딱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는 캠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 원목이 조금만 있더라고 여기에 연락하면 가져가나?


- 그렇다. 모아 두어 연락주시면 걷어갈 수 있다.


http://www.re-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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