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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휴먼라이브러리 -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 김종현 대표



1월의 휴먼라이브러리 -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 김종현 대표




문제 푸는 게 제일 재밌다!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 김종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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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7년 1일 31일(화) 오후 2시

- 장          소 : 로컬푸드 레스토랑 닐모리동동

- 기         획  : 박유라 정책팀장

- 함께한     이 : 홍영철 공동대표, 이재훈 회원님

- 인터뷰 정리 : 김예환 간사

- 사          진 : 박유라 정책팀장, 김예환 간사






- 서울에 가셨다가 어떻게 제주로 돌아오게 되셨나요?


제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저의 직장인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제주로 이동하는 건으로 인해서 오게 되었구요. 그래서 제가 2003년 말부터 내려와서 2004년 초에 도와 협약을 맺고, 그때부터 제주에서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지요.


고등학교 끝나고 학교에 다니러 서울을 올라가서, 대학을 늦게 졸업했어요. 11학기를 다녔거든요. 아주 우스운^0^ 성적으로 졸업을 했구요. 그리고 학교를 다닐 때 저는 학생운동을 했구요. 졸업할 때 제가 같이 학생운동을 했었던 그룹은, 지역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선배와 동기들은 관악구의 학교 주위에 있던 지역의 관악 주민연대라는 단체에 활동했던 친구들도 있구요. 서귀포의 ‘일하는 사람들’의 김경환 씨가 있었던 단체이기도 하고, 박원순 시장이 처음 만들었던 시민단체 이기도 하구요. 거기서 선후배들끼리 같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야기를 했고, 내 지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갔다 와서 제주에 있어 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제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구요. 우스운 성적^0^ 때문에 대기업은 같은 곳은 가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인터넷 기업들은 학점을 그렇게 보지 않아서, 처음에 ‘와와닷컴’이라는 인터넷 회사를 들어갔어요. 그다음에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근데 제가 2002년 1월에 다음에 입사했는데, 일 년 반 정도 지나서 회사 게시판에, 회사를 좀 지역으로 옮겨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이재용 대표가 회사낙서판에 농담처럼 이야기했고, 그것을 제가 굉장히 일찍 봤어요. 그때 이재용 대표는 그거를 전주나, 경주쯤으로 옮겨보면 어떤가 하고 농담처럼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를 했었지요. 근데 제가 그거를 보고, 첫 번째 댓글로 이왕이면 제주로 가자고 이야기를 했지요. 근데 그 후에 진짜 경영지원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주로 검토할 생각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주, 전주, 춘천. 이렇게 검토하는 상황에서 제주를 검토할 때 제가 결합을 해서 내려왔어요. 제주도 출신의 팀장급이 제가 유일해서. 처음에는 사투리나 지역의 지리안내 역할을 위해서였고, 그다음에 이재용 대표랑 밥을 두어 번 먹으면서, 제주가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것에 대한 공감을 서로가 많이 했어요.


혁신가적인 사람들은 이렇거든요. 기존의 것이랑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으면, 그것과 가장 반대되는 곳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요. 그래서 춘천은 서울이랑 멀지 않거든요.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전주도 나쁘지 않지만, 이왕이면 멀리 가자는 생각이 있어서 제주로 갔어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외국의 산업단지 형태나, 창의적인 형태, 자연환경이나, 아니면 조금 더 혁신적인 시도를 해보는 측면에서 제주도가 맞아 떨어졌어요. 저는 그 상황이 굉장히 기쁘게 다가왔지요. 왜냐면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로 가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고. 제주도의 도민들이. 육지로 공부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되게 싫어해요. 왜냐면 한정된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을 해서요. 일자리가 한정돼 있잖아요. 아니면 정부지원금이나 다른 지원들이 한정되어 있는데, 서울에서 나가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갑자기 여기에 와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원을 빼앗는다는 생각이 커서 되게 사람들이 싫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섣불리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에서 일할 수가 없었는데, 제가 회사를 가져가면 되잖아요.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되게 즐겁게 TF팀에 참여를 했어요. 근데 인사나 경영, 총무 부서에서는 제주도가 힘들다. 어렵다.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당시 이재용 대표가 그런 지지부진한 상황을, 누군가는 제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주 출신인 내가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고, 결국 검색 비즈니스팀장이었는데, 2003년 겨울에 새로 팀을 꾸려서 제주로 내려왔지요. 2004년 3월에 제주도랑 협약을 했고, 4월부터 인력들이 이전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03년 겨울에 처음 베이스 캠프를 꾸리고 제주에 있기 시작했지요.



- 다음카카오의 위치가 제주에서도 중산간에 위치한 것이 놀랍고, 신기해요. 기존의 형태가 아니라서. 어떻게 그런 입지를 생각하게 됐나요?


처음에 자연환경과 접목성 때문에 원래는 창고를 많이 찾아다녔어요. 요즘은 엔트러사이트 같은, 창고를 개조한 곳이 있는데, 그런 사무환경을 이재용 대표가 주장했어요. 솔직히 이해가 안 됐어요. 서울에서 내려왔으면, 공항과 가까운 그런 건물을 처음에 생각했었는데, 자꾸 낡은 창고를 찾아 달라고 해서 솔직히 처음에 이해가 안 됐어요. 제주도에서도 이해를 못했구요. 결국엔 못 찾았어요. 규모가 20명 이상인 사무실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금 규모가 있는 창고를 원했구요. 지금 엔트러사이트 보다는 더 큰 창고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펜션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사용했어요.


첨단산업은 지역에 가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특히 제주도 같은 경우는 자연이 첨단산업과 더욱 잘 맞았구요. 외국의 산업단지들을 보면 휴양지들과 근접해있어요. 그러니까 실리콘밸리도 샌프란시스코와 가깝기도 하고 프랑스의 경우는 소피아앙티폴리스라고 니스와 가까운 곳에 고급지식노동자들이 취향과 삶의 질을 선택하려는 경향도 있고, 여가를 즐기려는 영향도 있어서, 그런 포인트들이 제주도와 맞을 수 있다고 느꼈어요. 그다음에 창의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데, 그런 산업단지들이 대게 저층의 대학 캠퍼스 같은 형태를 띠고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구글은 구글 캠퍼스라고 하지요. 고층 빌딩이 아니고. 우리는 첨단기업이라고 하면 서울 역삼동의 테헤란로에 고층빌딩이 모습이 떠오르지만, 외국은 아이티 기업들은 대학 캠퍼스 같은 환경에 있어요. 실제로 자연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창의적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우리나라에 많이 없어요.


실제로 자연을 많이 접할수록 두뇌 자극에 도움이 돼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예술가들이 보면 제주에 와서 글 쓰고 싶다는 것이랑 비슷한 맥락이지요. 이재용 대표는 서울을 벗어나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본인 철학이 그때가 노무현 정부 때정부때 인데, 균형발전이라기보다는, 서울 중심적인 시스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도전할 것이면, 멀리 가서 성공해보자고 했지요.



- 우리 단체와의 인연은?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원래 지역 운동에 관심이 있었고, 당시 사무처 상근자분과 저희 누님과 연결이 되어서,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학생운동 활동을 할 때 선배들이, 지금 참여연대에 많이 가 있었고, 제주에서 가장 색깔이 비슷한 단체라서 가입을 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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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대표님의 고뇌!



- ‘섬이다’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사회적 기업이 뭔가요?


공식적으로는 예비사회적기업이에요. 예비사회적기업이 뭐냐면, 사회적기업이 우리나라는 법률에 근거해서 만드는데, 거기에 보면 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을 몇 가지로 정의해놨어요. 뭐 얼만큼의 취약계층을 채용하고 이런 것들이요. 그 조건들이 충족되었을 때, 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을 하구요. 지정되면 일정만큼의 재정적인 지원이 되구요. 그거에 따른 의무사항이 존재합니다. 그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2년 동안 예비사회적기업으로 두게 되어있는데, 그게 지금 ‘섬이다’가 가진 상황입니다.


2015년 1월에 영업을 시작했고, 6월에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논란이 많은데요. 일단 비즈니스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부 많이 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이 아니에요. 비즈니스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해요. 저희 같은 경우는, 로컬푸드를 이용한 것이지요. 지역순환형 경제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 구조. 유기농을 이용한다거나, 비즈니스 자체가 취약계층을 많이 고용한다든가 이런 것들이지요. 또 사업에서 만들어진 성과를 사회로 환원할 수 있어야 해요. 기부도 해야 되고, 배당도 제한이 되어있고, 예를 들면 수익금을 주주가 100을 원래 가져갈 수 있었다면, 사회적기업은 30밖에 못 가져가는 조건들이 있지요. 그래서 첫 번째 비즈니스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고, 두 번째는 고용 자체도 취약계층을 보장하고 노동법을 잘 실현하는,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수익을 지역에 환원할 수 있는, 이 세 가지가 사회적 기업을 정의 할 때 가장 중요한 축이에요.



- 사회적 기업을 통해 얻는 이익이 뭔가요?


외국은 자연 발생적으로 사회적 기업이 생긴거구요. 우리나라는 법을 제도화해서 이식하는 방식이라 좀 차이가 있어요. 무슨 이익, 이득 이전에, 사회적 가치를 향하는 기업들이 유럽에는 있었구요. 예를 들면 제주도 같은 경우, 대표적으로 성 이시돌 목장 같은 경우가 사회적 기업은 아니지만, 일자리를 창출하고 얻는 이득을 지역에 환원하는 구조로써 존재하고 있지요. 최근에 책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대전의 제과업체 ‘성심당’ 같은 경우도, 빵을 만들어서 저소득자에게 빵을 공급하고, 기부도 많이 하고 하는 로직들이 형성되어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윤의 모티브로 기업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다른 동기로 기업을 움직이는 모티브가 유럽에서는 좀 먼저 시작을 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나라에서 좀 지원책들이 있어요.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때라든지, 초기 사업 개발비가 필요할 때 지원하는 요소들이 있지요. 반대편에는 또 오블리게이션, 의무가 있어요. 법률도 잘 지켜야 하고, 수입이 나든 안 나든 기부도 해야 하고, 배당도 제한되어 있어요. 그래서 일정 정도 지원책과 그에 따른 의무사항이 있는 상황이라서, 뭐 사회적 기업을 한다 했을 때, 나쁜 조건은 아니에요.



- 그래도 사회적기업이라는 틀 안에 있으면 힘들지는 않은지.


엄청 힘들어요. 행정적으로도 제출해야 하는 것도 많고요. 그래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너무 틀에 막혀 있으니까. 그러니까 법에서 규정된, 인증된 사회적기업이 아니면, 그런 가치를 갖고 있어도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돼요. 그래서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소셜벤쳐나 소셜엔터프라이즈 이런 명칭들을 쓰지요. 그래서 정부주도로 규정된 용어와 다르게 표현해서 가치를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 데는 보통 왜 그러냐면. 우리나라는 고용이 굉장히 중요해서, 취약계층 고용을 굉장히 중시해요. 그래서 실제로 엄청 사회적 도움이 되는 일인데, 취약계층을 고용하지 않으면 인증이 안되니까, 굳이 얽매이고 싶지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사회적인 가치도 규정돼 있는 것이 한정돼있어요. 우리는 충분히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데, 법적으로는 그게 무슨 사회적 가치냐는 부분이 존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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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모리동동의 모습






- 닐모리동동의 직원규모는 어떻게 되고, 직원 구성을 어떻게 되어있나요?


일부는 취약계층의 직원들이구요. 지금 17명 정도 직원이 있고, 원래는 20명 정원인데 조금 모자란 상황입니다. 입사, 퇴사가 잦습니다. 의지가 있어도,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나가는 경우도 있고, 이번 달에는 2명이 퇴사를 하는데, 이유가 진학. 요리를 해보고 흥미가 있어서,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서울로 갑니다.



- 혹시 인력이 부족해서, 부엌에서 일을 도우시는 건가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니구요. 뭐 겸사겸사. 제가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도 하고, 일손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보통 무 썰기, 양파 썰기, 마늘 썰기 이런 것들 합니다. 손님들한테 나가기 전의 과정들을 합니다.



- NXC와는 어떻게 인연이 있으신가요?


이 닐모리동동이 2011년에 오픈을 했어요. 5월에. 당시에 NXC를 다니면서 지역 공헌 카페를 만들면서 닐모리동동이 만들어졌어요. 근데 이게 임대계약이 2014년 말에 종료하게 됐었는데, 넥슨이 처음에는 지주회사만 내려왔고, 지나서는 박물관도 생기고 하면서 지금은 직원이 약 800명 정도가 됐어요. 근데 원래 NXC는 F&B(Food & Beverage) 사업을 주로 하는 회사가 아니었고, 닐모리동동은 사회공헌으로 진행한 사업이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기도 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이건 제가 기획을 했었으니, 제가 주도를 해서 이후에 사회적기업으로 해보자고 했고, 회사가 동의를 해주었어요. 처음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투잡을 했었어요. 그렇게 1년 조금 넘게 했었고, 이후에 이시돌 목장에 우유부단 프로젝트를 진행했지요. 처음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쉽지가 않아서, 작년 5월에 휴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휴직 기간이 작년 말이었고, 투잡으로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을 해서, 1월 1일부로 퇴사를 했습니다.



- 퇴사할 때 아쉬움이 없으셨나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는게 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훨씬 안정적이지요! 근데 사회적기업이나 창업을 오래전부터 생각했었어요. 넥슨에 가기 전부터지요. 예전부터 로컬푸드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근데 2009년 당시에 이제 자원도 없었고, 길도 못 찾았어요. 그래서 그때 넥슨에서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게, 그 고민의 배경들이 됐었지요.


그리고 최근에는 이제 사람들이 언제 열심히 일하냐고 연구를 많이 하는데요. 그 연구 중에 하나. 다니엘 핑크라는 학자가 이렇게 말을 해요. 인센티브. 즉 경제적인 가치를 증대하는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동기부여는 세 가지인데, 하나는 자주성. 자기 주도성, 두 번째는 향상감. 뭔가 성장한다고 느끼는 것. 세 번째는 소명의식. 이렇게 세 개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경제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방식은 단순업무, 제조업 등에서는 유효할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선 시대, 창의적 시대에는 적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동기부여가 적용된다는 것이구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면 아무래도 자기 주도적이기는 어렵고요. 제가 하던 일이 십여 년 정도 해서, 시간이 좀 되어서 발전에 대한 성취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소명의식도 그전에 하던 일에서 느끼지 못했다기보다는, 조금 더 깊은 무언가를 얻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기업은 괜찮지요. 소명의식도 명확하고, 자기 주도적이고, 새로운 영역이면서 향상감을 느낄 수 있어요. 아마 계속 넥슨에서 운영한 닐모리동동이었다면 그 안에서만 생각하고 안주했겠지요. 더 확장하거나 시도는 없었을 텐데, 나오면서 내부에서 변화도 있었고, 우유부단도 시작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한림의 우유부단 카페



- 우유부단에 대한, 그 안의 아이템에 대한 트렌디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신건가요?


그 이시돌 목장은, 마이클 신부님이 경영에 어려움이 있어서 경영자문을 할 사람이 필요하셨어요. 수소문하셨고, 그때 제가 연결되어서 5년 전부터 자문을 했었지요. 짧은 시간은 아니었고,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이시돌 목장의 경우는 생산되는 우유를 그대로 제주우유에 납품을 했어요. 그 제주우유에서 가공을 해서 판매를 했지요. 제주우유는 삼양식품의 자회사거든요. 그래서 그 공산품의 영역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흰 우유로 가공판매를 하는 것을 생각했어요.


이시돌목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이에요. 근데 사람들은 거기가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지 잘 몰라요. 잘 모르니까. 우유 생산량은 많은데, 요즘에 우유 소비량은 줄고. 유기농 우유는 또 일반 우유보다 2.5배 정도 비싸니까.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이시돌 목장이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을 알리고, 이것에서 부가가치를 어떻게 올릴 거냐.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였고, 이것을 해결할 솔루션이 뭐 치즈도 있고 뭐도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투자환경과 시장의 상품성을 충족하는 것이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했었고, 다음이 밀크티.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네이밍과 공간이 우유부단이었지요.


벤처나 스타트업 같은 새로운 신생기업들을 할 때, 최근의 트렌드가 어떤가 하면요. 서울의 투자자들한테 찾아가서 투자를 요청하면, 이걸 먼저 물어봐요.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세요?’ 라고 물어봐요. 최근에 기업에 대한 정의들이 바뀌었어요.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기업이라고 보고 있어요.


기업에서 보는 문제는 소비자의 경제적 가치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카카오톡은 돈을 주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무료로 전환하는 것, 이런 경제적 가치를 주목했었지요. 요즘에 좀 더 추상적인 가치를 이야기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잖아요. 처음에는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보고, 다음에는 솔루션.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뭔지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이 방식은 먼저,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근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NGO처럼 해결할 수도 있지요. NGO는 영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소비자가 무엇을 팔아서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기업은 문제를 매출로써 해결하는 것 이구요. 결국에는 문제를 발견하고 기업적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해보면, 창의적일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창의적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의미가 있지만, 결국 문제는 누군가 해결을 못 했기 때문에 문제거든요. 문제는 해결됐으면 문제로 남아 있지 않지요. 그래서 창의적일 수밖에 없지요. 당연한 것이에요. 기존의 방식이 아녀서. 우유부단이라는 네이밍이나, 공간이나 아이템의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한 해결의 결과이구요. 혼자 한 것은 아니고, 같이 토론을 해서 해결한 것이지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먼저 해결의 의지가 강해야 해요. 두 번째는 많은 케이스를 보고, 벤치마킹을 하는데,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필요한 요소들을 잘 섞는 게 중요하지요. 그냥 새로워야 한다면서 접근하면 어려워요. 무엇이 문제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 제주의 청년들과 교류는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되셨나요?


일단은 제가 넥슨에 있을 때 네오제주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었구요. 그때를 생각해보면, 제주의 청년활동가들이 이제 막 생겨날 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청년을 만난 건, 2007년에 제주대에 HRA라고 학생들을 뽑아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한국일보 주필이셨던 김수종 선생님, 한마음병원 원장이셨던 이유근 선생님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교육과정이었지요. 대학생 30명을 뽑아서 1년 동안 교육을 하는 시스템이에요. 기업 실무라고 해서 기업에서 하는 활동을 배우는 것이랑, 인문학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을 하는 수업인데, 거기에서 학생들 멘토를 2007년부터 했어요. 거기 출신들의 친구들을 통해 청년들이랑 만나볼 수 있었지요. 대부분 많은 학생이많은 학생들이 사실 취업을 위해 온 친구들이었으나, 청년들을 만나면, 청년들의 고민을 안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넥슨이 사회공헌을 기획하는 상황이었고, 네오제주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 해서 청년단체들을 선발해서 1년에 1000만원에서 1200만원정도 지원하는 것을 했어요. 제주청년협동조합, 제주청년창업협동조합, 콘서트 하는 그룹 등, 이런 그룹들을 후원을 했었구요. 이런 일들이 청년들이 뭔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아무래도 제가 기업에서 했던 것이 지역공헌, 사회공헌이었고. IT기업이라서 서울에서 소셜벤쳐나 창업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런 것들을 제주에서 청년들과 제대로 해볼 수 없을까 같이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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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C의 청년 지원 프로젝트 네오-제주 [헤드라인제주 2017.02.07]



- 임금수준이나 고용의 질로 인해서 제주청년들은 육지로 가는걸 더 원하는데요. 제주에서 청년들이 있으면 어떤 희망이나 방향이 있을수 있나요?


어떤 느낌이 있냐면, 저는 IMF 세대에요. 92년에 대학을 가서, 늦게 졸업을 해서 99년도에 졸업을 했어요. 제가 졸업할 때쯤 나라가 IMF를 겪었고, 그래서 저희 세대를 IMF 세대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에 386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면, 툭하면 혁명과 나라를 뒤집자는 세계를 뒤집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나라의 시스템을 바꾸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제주의 청년들도 취업만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조금 더 스케일 있는 이야기와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최소한 제주를 뒤엎어보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제주의 청년 문제가 좀 풀릴 것 같아요.


무슨 이야기냐면 지금 청년들이 고민하는 생각의 크기, 고민의 깊이가 딱 20년 전의 제주의 모습이겠지요. 지금 제주의 모습은 20년 전의 청년이었던 사람들이 구성한 제주사회에요. 그때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나와서 국회의원도 하구요. 내려와서 지사도 하는 거잖아요 후의 제주의 모습은 지금 청년들이 그리는 제주의 스케일, 모습이겠지요. 그래서 취업으로만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답이 없을 거예요.


근데 그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제주만큼 할 일이 많은 데가 없을 거예요. 사람들이 제주에 내려오잖아요. 제주에 살고 싶어 하고. 제주도면 지금과 다른 삶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기대가 많잖아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것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거든요. 지금 세계의 문제, 한국의 문제, 아니면 시대적 문제를 두고 생각을 하면 많은 사람이 제주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 문제의 정점은 서울이잖아요. 현세대 문제의 정점은 서울이에요.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것은 서울과 정반대인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솔루션일 텐데 선생님이 변방에서 세상이 뒤집힌다고 한 것처럼.



- 그 부분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주 청년들은 여전히 육지로 나가고 싶어하고, 육지 청년들은 새로 들어오고 있구요.


그게 몇 가지 요인이 있었을 텐데요. 과거에는 제주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 비전이라는 건, 빠른 근대화와 성장성. 그리고 그것을 기업에 취업이라는 방식으로 생각해서, 결국 좋은 대학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서 근대화의 시스템에 들어갔지요. 과연 지금도 그런가 했을 때, 분명히 패러다임은 바뀌었지요.


그리고 육지로 나간다든가, 제주 밖에서 가치를 찾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여기도 할 것이 많다. 여기가 실제로 더 할 것이 많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게 문제를 해결하는 건데요. 저는 이렇게 봐요. 스타벅스는 좋은 기업인가요? 큰 기업이잖아요. 그래서 관리자로 들어간다고 하면 아 좋은데 들어간다고 하잖아요. 원래 스타벅스는 1960년대 시에틀에 조그마한 커피집이었어요. 또 클럽메드라는 회사가 있어요. 남태평양의 리조트. 여기는 1950년에 마요르카에 조그마한 섬에 군용텐트를 두고, 리조트를 꾸미고 시작한 회사거든요. 지금의 게스트하우스보다 못하게 시작한 회사였어요. 그러니까 꿈의 크기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지금 커피숍을 하든, 게스트하우스를 하든. 맥도날드 이런 데 보세요. 우리로 치면 동네 삼겹살집이에요. 미국에 삼겹살집이, 세계화되면서, 맥도날드가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주 안에서 사업밖에 없어, 임금이 너무 취약하라고 하지만. 하나하나 깊게 들어가 보면, 훨씬 더 비전 있고 크게 가져갈 수 있고. 우리의 색깔을 가질 수 있거든요. 서비스 산업이 아니어도, 다양한 영역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뭐가 부족한 거냐 하면, 꿈이 크고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은, 솔루션이 달라지거든요. 취업해야겠다는 사람이랑, 내가 20년 후에 제주에서 이런 걸 하고 싶고, 제주를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훈련을 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주는 완전히 달라지겠지요. 그래서 제주의 친구들이 미래의 제주를 생각하고, 그걸 막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거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는 훈련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곳곳이 다이나믹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을 텐데, 그거를 못 찾으니까. 현재에서 가장 안정적이거나, 가장 가치 있을 것에 투자하는 것이지요. 은행을 간다거나, 공무원이 된다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들이요.



- 대표님 말씀이 이해는 되는데, 공감은 안가는게 매슬로우에 욕구위계이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청년은 지금 의식주 그 자체가 취업이 아니면 보장될 수 없다는 생각이거든요. 그래서 꿈이 아닌 취직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지요. 청년들이 안정적인, 실패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필요함을 알려내는 것이 청년들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거든요. 예를 들면 청년수당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왜 나라가 너네한테 돈을 줘야 하냐는 말이 나오거든요. 요즘 애들은 도전정신, 헝그리정신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근데 그것 자체가 사실 미래를 위한 과제임을 잘 설득해야 하지요.


그리고 현실적인 여건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중요한 숙제에요. 매슬로의  욕구위계이론을 보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거든요. 그럼 지금 같은 재벌의 구조는 존재하지 않겠지요. 다 착한 기업이었겠지요. 그러니까 물질의 양이, 만족도가 충족되어야, 더 나은 걸 나간다는 것이 항상 성립하지 않아요. 경제적 자원이 많지 않아도 만족을 하고, 어떤 사람은 엄청 많은 경제적 자원이 있어도 다음 단계로 진화를 못 하거든요.


예전에 부처님, 스님들 수행하는 이유는 해탈이지요. 욕구 위계이론에서 가장 상위의 가치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은, 하나하나 충족을 시키고 해탈의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로 바로 가는 과정으로 줄인 거지요. 월 100만원에 욕구를 충족하는 사람이 있고, 월 1000만원이 있어도 충족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솔직해야 하는 이야기에요. 삶에 있어서, 요소가 어느 정도에서 욕구를 채워주는지 고민해야 해요. 물론 무리할 필요는 없구요. 단순히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솔직해져야 하거든요. 근데 그게 지금 많은 청년이 원하는 것은, 평생 죽을 때까지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즘 되어야, 그다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에요. 낮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자아실현이나 소명의식들이 명확할수록 더 버틸 수 있는 거지요. 이런 요소들이 없으면, 아무리 경제적인 것들이 충족되어도 다음 것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는 것이에요.



- 어릴 적 꿈이 무엇이셨나요?


신부님이요. 신부님이 꿈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포기를 했구요. 대학 진학할 때 되면, 저 때는 1지망 2지망 이렇게 썼는데, 1지망이 법대였고, 2지망이 종교학과가 있길래, 특이하기도 하고 신학교 가고 싶기도 했고, 떨어지면 신부님 되라는 건가 보다 하고 했지요. 결국에는 1지망이 떨어지고 2지망이 되었구요.



- 종교학과는 뭘 배우나요?


전 세계 종교를 배우지요. 재밌어요. 인간은 왜 종교를 믿을까가 중요한 포인트지요. 그 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교를 믿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 섬이다의 최종목표!


일단은 우유부단을 조금 넓혀볼까 하구요. 다른 곳에 또 우유부단을 낼 수도 있구요. 물론 이시돌 목장에 있는 것도 중요한 아이덴티티인데, 더욱 중요한 건 우유를 일단 많이 팔아야 해요. 그래서 거기만 고집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몇 군데는 넓혀볼까 생각 중입니다. 외형적 목표는 그렇고요.


직원들을 어떻게 교육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에요. 닐모리동동도 그렇고 우유부단도 그렇고, 전문 기획자가 기획한 거거든요. 전문 기획자가 기획하는 건 현재로써는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방식이긴 해요. 전문적으로 훈련한 사람들이 시대를 읽고 만드는 게, 기획으로는 좋은데. 저희 직원들의 대다수는, 오퍼레이션만 해야 하거든요. 기획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오퍼레이션 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안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직원들이 성장해서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2~3년간 이 부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사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길이지만요.


생각보다 기획력이라는 게 쉽게 생기는 게 아니에요. 우유부단은 닐모리동동 처음 할 때 인턴으로 들어왔던 친구가, 기획했거든요. 6~7년 정도 훈련된 친구가 한 것이고, 근데 사람 하나 키우는 게 굉장히 오래 걸리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해야 그런 감각이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이제, 대부분의 직원이 그런 경험을 갖기 어려웠고, 현장 중심에 있다 보니까요. 뭐 여전히 좋은 기획자가 기획하고, 나머지는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 기업적인 방식에서 좋은데요. 우리가 이제 그러면 노동의 가치를 구현할 수 없으므로, 직원들이 성장해서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직원들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고 싶어요. 한 3년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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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열정을!



  이재훈 회원님의 질문?


- 모든 직무의 직원들이 정규직인가요?


대부분 정규직이구요. 다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인원의 변동성이 있어서요. 다행히 그때는 방학이라 파트타이머들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10~15% 정도는 파트타이머구요. 대학생들이나, 휴학한 친구들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정규직입니다.



- 모든 직원들이 기업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나요?


하려고 노력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이슈에요. 저희가 1년에 두 번 쉬거든요. 설날이랑 추석. 근무시간도 서로 다 다르구요. 그래서 모두가 같이 모여서 한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어려워요. 그래서 1달에 한 번, 또 성수기 때는 못하고. 밤에 늦은 시간에 모여서 공부를 하거든요. 비전을 공유하거나, 문제의식을 이야기 하는 게 힘들지요. 그래서 이제는 2달에 1번씩 회사가 교육의 날을 지정해서, 직원교육을 연 5회 정도로 늘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 어떤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려고 하시나요?


회사 비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데요. 주어진 정보를 잘 엮는 것도 중요한데,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는끄집어 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토론하는 문화를 익숙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냥 정해진걸 알게 하는 것 말고,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지요. 특히, 주로 현장에 있는 인력들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낯설고, 업계에서도 그렇게 하는 곳이 거의 없거든요. 그냥 매뉴얼을 만들어서 그대로 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답을 정해놓고 훈련하는 것. 그래서 예전에 제가 청년들과 해왔던, 생각을 모으고 나눠봤던 것을 회사 내에서 해보겠다는 거지요. 정답은 없으니까. 결국, 어떻게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