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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우의 일요일 편지⑧-처음 가는 길


 








































강종우의 일요일 편지⑧


2010.03.21






















 >>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도종환




















>> 대학을 거부한 김예슬에 부쳐






   읽으면 읽을수록 아뜩하기 그지없습니다. 여전히 트랙 위의 질주를 멈출 줄 모르는 복마전 사회. 작은 돌멩이 하나로는 어쩔 도리 없는 철옹성 대학. 그 놈들 앞에서 깨작거리는 글 따윈 한갓 부질없는 광대놀음에 불과하기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망설여질 뿐입니다. ‘솜씨 좋은 경주마’로 남보다 앞서려고 안간힘쓰던 철부지이던 예전이나,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며 은근히 부추기는 아빠가 된 지금이나. 뭐라 거들기엔 부끄러운 공범(?)은 아닌지 자괴감이 앞서기에…
 그래도 가끔씩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그럴수록 10대를 인질로 20대를 착취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사는 40대 우리들의 자화상을 바라보며 서글퍼지는 건 매한가지.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그럴 처지가 못되는 저로서는 속앓이하듯이 김예슬의 대자보에 그저 댓글 하날 보탤 따름입니다.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을 겁니다.
 정말로 어려운 행동이었을 겁니다.
 이른 나이에 이룬 걸 마다하고, 어쩌면 ‘처음 가는 길’로 나선다는 건...
 그리고 그 선택에서 희망을 보는 사회가, 그녀의 선택을 지지하면서도 아무 것도 변하지도 않을 수 있는 이 사회가 너무 무섭습니다.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 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방법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우리 낭도들이 화랑을 따르는 이유입니다.”






  얼굴을 알 리 만무하지만 글을 읽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와 자꾸만 겹쳐집니다.
 덕만...
 작년 방영된 ‘선덕여왕’의 한 장면에서 말입니다.  
 첩첩산중. 몇 겹으로 둘러싸인 백제군의 천라지망. 낙오된 채 생사기로에 처한 신라의 화랑부대. 퇴각로를 불어버릴까 부상당한 동료들까지 죽이고서야 자리를 옮기는 처지. 이리저리 헤매던 와중, 알천랑 마저 살에 맞아 스스로 죽기를 각오하고 칼 끝에 목을 내어놓은 극한상황.  마침내 빗줄기를 뚫고 덕만이 외칩니다. 알천과 유신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충성심 없는 자들을 데리고 하루에 1리도 가기 어렵습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살 희망을 달라는 겁니다. 싸우려고 하는 병사의 의지를 어찌 꺾으려고 하십니까. 어찌 겁먹은 우리를 더 두렵게 하십니까. 어찌 동료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고 하십니까. 우리 모두 살고 싶고 살기 위해 싸우고 싶습니다. 방법을 찾으십시오. 그게 우리 낭도들이 화랑을 따르는 이유입니다.”




















>> ‘여럿이함께’ 하면 길은 등 뒤에 보입니다.






  덕만의 외침이 김예슬의 오열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승자독식의 정글에서 쓰러지거나 뒤처진 이들의 생채기가 보이지 않습니까?  
 곧 우리 자신의 절규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할 것입니까?
 安心하고, 安全하게, 그리고 安定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갈 순 없을까요.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요.

 ‘여럿이함께’ 하면 길은 등 뒤에 보입니다.
 길이 애초부터 있었던 건 아닙니다. 맨 앞선 사람이 아직 나지 않은 길을 걷습니다. 뒤따라 한 사람, 두 사람, 그 길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앞서 갔던 사람들 등 뒤로 길이 생겨나 있습니다. 물론 그 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갈 거고 말입니다.










  2010년 3월 21일 밤 늦은 시각, 연동 집에서
강종우
010-5180-5858/kjowoo12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