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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우의 일요일 편지⑩-내 가슴 속의 4․3


 









































강종우의 일요일 편지⑩


2010.4.4(Sunday)










내 가슴 속의 4.3










하나 …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












  지난 주 큰아버지 제사였습니다. 하지만 제겐, 갓 스물을 넘기자마자 비명횡사한 큰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영정도 없다 보니 생김새마저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생전에 제사 때마다 오시곤 하던 할머니께서 까닭모를 한숨으로 저를 보시며, “니 형 닮았다”며 아버지에게 건네던 말씀으로만 더듬어 볼 따름입니다.
아버지가 우시는 걸 딱 한번 보았습니다. 뇌일혈로 8개월 넘는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에 들어서서 며칠 지나지 않은 땐가 싶습니다. 멀쩡한 자식 놈이 밥벌이할 생각은 뒷전이고 밖으로만 나대는 게 미덥지 않았던지 작정하듯 불러 세운 자리였습니다. 고집스런 제게 한참동안이나 말문을 열지 않던 끝에 “큰아버지하고 꼭 같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아련합니다.
 1947년 3월 17일. 큰아버지가 중문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총에 맞은 날입니다. 할머니께선 하늘이 온통 샛노래졌었나 봅니다. 죽어가던 자식 부둥켜안고 울부짖는가 싶더니 그나마 있는 아들 하나마저 잃을까봐 그 날로 아버지를 트럭 짐칸에 떠밀어 제주읍으로 보냈습니다. 친척 분이 마침 경찰 고위직이었던 모양입니다. 우선 살려야 된다는 생각만 앞섰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경찰서에 결혼직전까지 - 아마 61년 추자도가 마지막이라 알고 있지만 - 근무하셨답니다. 그만두고 서른 넘은 나이에 처가 근처에 자리잡고 나서도 무근성 친척집을 들락거렸고 이런저런 도움도 받았던 눈치입니다. 자연 4.3은 금기 아닌 금기어로, 어쩌다 큰 아버지에 대해서 한 두 마디 하는 정도를 빼곤, 철들 무렵까지 집안에서조차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습니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오랜만에 음복을 자청하시더니 “그래도 니 큰 아버진 나은 편이주. 봉분이라도 성하니...” 하시며 당시 일들을 털어놓으시곤 몇 번이나 저에게 잘 받아적으라 다짐받던 그 날까지 말입니다.










둘 … 다시 4.3을 이야기하며












  사실 제가 큰 아버지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대학 4학년일 무렵 서울 남산도서관에서입니다. 지방사를 전공할 욕심으로 당시 마이크로 필름으로 보관 중이던 제주신보의 기사를 수집할 때였습니다. 조선후기부터 해방직후까지 43前史에 열의를 갖고 연구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젠 찾을 길 없지만...
 정작 제주에 돌아와선 마음만 앞섰지 꽤 오랫동안 뒷걸음질쳐 온 것 같습니다. 4.3에 대해선. 탐사보도에 여념이 없던 선배기자에게 술취한 김에 농반진반 ‘4.3, 당신께 맡긴다’며 그만이었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그 시간만큼 예전의 생각도 무디어져 버린 게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올 초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4.3평화공원을 찾아더랍니다. 큰 아버지 명패를 찾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고 합니다. 아이들 표정이 궁금했는데 그런가 보다 싶습니다. 사무치는 한(恨)이 녹아내린 저 깊은 슬픔의 밑바닥을 엿보기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인가 봅니다.

 오늘 부활절이기도 합니다. 출장에서 돌아오며 받아든 계란인형이 새롭습니다. 아침 TV에서 너나없이 계란에 그림과 무늬를 새기던 사람들이 즐거워 보입니다.
 우리도 또 다른 기억으로 4.3을 새롭게 빚어내야 되지 않을까요.
 나무나 잎사귀, 차돌 하다못해 감귤껍질이라도 이용해서 저 마다의 가슴 속 4.3을 누구나 그릴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어져온 4.3의 기억 한 마디 한마디를 날줄과 씨줄로 엮고 또 엮어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담아내야 할 거 아닌가 싶습니다.    












4월 3일 한밤에 쓰고, 4월 4일 부활절 한 낮에, 연동 집에서 부칩니다
강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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