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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우의 일요일 편지19- 고령화의 그늘…‘잊혀진 이웃’










































강종우의 일요일 편지19




















‘잊혀진 이웃’, 고령화의 그늘


  선거 뒷담화에 너나없이 모다 정신이 팔려 있던 그 즈음입니다. 지방지 한 귀퉁이에서 참 안쓰러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지난 1일 오전 제주시내 한 주택에서 혼자 살던 강모씨(60)가 숨진 지 3개월 만에 발견됐다. 발견 당시 강씨는 겨울 점퍼와 내복을 입은 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었다. 강씨의 집은 주택가에 있음은 물론, 이웃에 지인이 살고 있었지만 주위의 무관심 속에 3개월이나 방치된 것. 이처럼 3개월이 지나도록 누구도 강씨의 상태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강씨가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홀로 사는 어르신이 아무도 모르게 숨졌다거나 질병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에서 모두 1위. 기초생활보장제도, 고령연금, 시니어클럽, 장기요양보험, 노인돌봄종합서비스바우처 등등. 제법 많은 정책과 프로그램이 시행되곤 있지만 제 아무리 발 빠르게 대처한다 쳐도 세계 1위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인가 봅니다.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이 우리들 ‘관심 밖’에 머물러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 사회 어르신. 그들 대부분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주역이었으나 시대 흐름에 뒤쳐져 소외되고, 성장의 그늘에서 설움과 한을 되새기며 돌봐줄 사람도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분들입니다. 일제 강점기, 해방과 이념의 광풍, 분단시대 개발독재의 압축성장기라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터널을 거치면서, 온갖 고초과 굴절을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로 버텨오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어떤 배움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자녀교육에 목숨 줄을 걸어온 분들이 다름아닌 우리 세대의 어르신들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성공과 체면 때문에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세상에 나서기를 두려워하고, 이제는 손주들까지 외면해 버려 오로지 친구라곤 바보상자(TV)밖에 없어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뒤척이고 있는 ‘잊혀진 이웃’...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대한민국, ‘88만원 세대’ 못지않은 우리 시대 또 하나의 루저(loser).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에 다름 아닙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건 일상적인 관심을 통해 이들 어르신들의 여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모시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곧 지역사회로부터 당당히 생활을 보장받고 주민들로부터 떳떳하게 섬김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이웃으로 대접하는 일 말입니다. 고도성장의 신화가 막을 내린 지금, 어쩌면 세상에 대한 깊고 넓은 통찰을 줄 수 있는 어르신들이야말로 거추장스러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닥쳐올 미래의 정신적 자산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우리시대의 어르신


  그러나 무엇보다, ‘나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걱정이 가장 크다’는 어르신들에게 어쩌면 마음의 외로움이 더 큰 짐일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기다리는 이도, 기댈 이도 없는, 어쩌면 평생을 기다리는 일에 지쳤는지도 모르는 어르신들...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어르신들이 외롭고 쓸쓸하게, 바로 당신과 이웃하여 잊혀져 가고 계십니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6인조 인디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제목을 빗댄 MBC 4부작 특별드라마입니다. 왕년의 스타 신성일이 타이틀 롤인 70대의 노신사 정일 역을 맡아 화제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정일이 28살 연하 애인 세리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끝내 거절하고 돌아서는 길. 정일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을 들어가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고 “고독은 견딜 수 있어도 외로움은 못 견디겠다. 내겐 밥 먹었냐고 물어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리곤 잠을 자다 소리칩니다. “나도 남자다! 나도 느낀다! 나도 아름다운 거 좋아하고, 너희들하고 똑같단 말이다!”  다음 회 예고편에서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사는 게 아니다. 항상 사랑하며 살기를...”이라는 정일의 멘트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주인으로서 고삐를 놓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과 함께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다 퍼뜩 ‘노인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책에 소개된 적이 있는 선빌리지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일본의 노인요양시설인 그 곳의 모토는 ‘존엄 케어’.
 선빌리지에선 치매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에게도 멋대로 기저귀를 채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저귀를 채우는 건 돌보는 사람에게는 편하고 깨끗해 보이지만, 치매 어르신 당사자로선 못할 노릇이랍니다. 가장 기본적인 배설행위마저 스스로 못하게 가로막힌 어르신은, 편안하거나 나아지기는커녕 맥이 빠지고 주눅이 들어 되레 더 이상 일어설 기력을 잃어버린 답니다. 어르신 자존에 생채기를 낸다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당사자의 입장을 우선 배려하고 어르신 스스로 자신의 일상생활을 챙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존엄을 지키는 케어활동’을 지역사회 안에서 실천하고 있답니다.

 올 지방선거에서 줄곧 이슈가 되다시피했지만, ‘보편적 복지’란 이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각 개인이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는 건 아닐까요?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힘을 키워나가는 게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갓난아이나 어린이, 또는 한부모 가족, 장애를 지닌 사람, 가난한 사람, 치매 증상이 있는 어르신 등등. 사회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저 도움을 베푸는 대상이라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밑바탕에는 상대방을 낮추어 보는 의식이 있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인생에 책임질 권리가 있으며, 존중되어야 하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거나 치매증상이 있는 사람이라도, 가난하거나 한부모 가족이라도, 어린이거나 갓난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실 없는 학교’, 지역에서 어르신의 존엄을 지킨다!


  일본 기후현에 있는 이케다라는 작은 마을, ‘고향복지촌 세이노우(西農)’. 읍내에서 산간지역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 살고 있다고 해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지역을 만들려는 지역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이 고향복지촌의 대표적인 지역사회 실천활동 ‘교실 없는 학교’.
 ‘교실 없는 학교’는 건물 안에서 지식으로 쌓아가는 배움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체험현장을 통한 배움을 목표로 한다는 뜻으로 지어졌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태도, 말, 분위기 등을 몸으로 느끼면서 배운다는 걸 말합니다. 피부로 느껴 이해한다는 건, 다름 아닌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기르는 겁니다. ‘교실 없는 학교’는 지역을 학습현장으로 삼고, 지역에서 행해지는 질 높은 무형의 활동을 교과서로, 오감(五感)을 활용한 체험을 통해 배우는 학교입니다.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 여러분이 바로 선생님입니다.
 산간 지역과 읍내의 교류는 현재 4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 읍내에 사는 주민의 가족들이 산촌을 방문한 것은 무를 수확하는 것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에게 평소 생활의 지혜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리자,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무를 수확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무는 말이야, 이렇게 다 클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비료를 주고, 흙을 골라주고 해서 이것저것 많이 돌보아 주어야 한단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함께 작업을 하고, 밥을 먹었고, 돌아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다음에는 씨뿌리기부터 하고 싶어요!”라고 하도 졸라대어 이듬해 봄에는 씨뿌리기를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무를 가득 싣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한 남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마도 자기도 알 수 없을 만큼의 감동과, 이별의 서글픔이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노인이 말하지 않는 것들

아이들은 온 몸으로 공부(工夫)합니다.
우리가 부모세대를 대한 것처럼, 아이들은 공부한대로 꼭 그렇게 우리 세대를 대할 겁니다.
이제 노인문제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지도록 바꿔나가야 합니다.
오늘 바로 우리 세대가 하지 않으면, 내일은 우리 또한 ‘잊혀진 이웃’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동안,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가장이 되고서도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들 놈 때문에
엊그제 잠깐 들렀다 그 길로 내려가던 어머니...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차마 그 뒷모습마저 뵐 낯이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2010년 6월 6일 아침, 연동집에서 보냅니다.
강종우
010-5180-5858/kjowoo12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