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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과 볼로냐, 엇갈린 운명
2008년 방영된 KBS스페셜 ‘오래된 미래 CO-OP. 볼로냐와 부산, 두 도시 이야기’. 울고 있는 부산과 웃고 있는 볼로냐, 그 엇갈린 운명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보기를 은근히 권합니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 하지만 오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업유출과 전국 최고의 실업률 등 예전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부산시는 재정자립도가 낮아 사회간접자본을 민자 유치로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건설업체를 통한 건설은 적은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어 부산의 재정자립도를 더욱 악화시키고, 또 다른 사회간접자본을 민자 유치로 건설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반복합니다. 그 만큼 시민의 부담은 커지고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꼴입니다. 또한 시민들의 소비패턴도 다를 바 없습니다. 시민들은 주로 대형 마트에서 1+1 제품, 가격이 싼 제품을 주로 구매합니다. 2007년 부산지역 대형마트들의 연간 매출액은 2조 1천억 원. 이 가운데 기본운영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익금은 본사가 있는 서울로 송금됩니다. 부산시민이 대형마트에 지출한 돈은, 주민세 0.3%와 재산세 일부만을 지역에 남기고 지역 바깥으로 빠져나갑니다. 결국 일자리는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질이 낮고 주변 영세업체를 무너뜨려 되레 지역경제에 숨통을 조입니다. 1970년대 불황을 겪으며 빈민의 도시로 전락했던 볼로냐. 하지만 오늘날 볼로냐는 중소기업의 천국으로 불리며 이탈리아 제2의 경제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거대한 굴뚝도, 대규모 공단도 없지만 임금은 국가 평균의 2배.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이 0%인데 볼로냐의 경제성장률은 7%에 달합니다. 이들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볼로냐의 협동조합 규모는 놀랍습니다. 시민 둘 중 하나는 어떤 협동조합에든 가입해 있습니다. 크고 작은 협동조합 수가 400개에 이릅니다. 제조업,서비스업, 농업 등 각종 부문에서 활약하는 협동조합은 연간 13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국내총생산(GRDP)의 40%를 차지합니다. 물론 모든 협동조합은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 발전을 위해 씁니다. 볼로냐 시는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협동조합이 사회적 경제를 주도적으로 발전시키고, 시정부는 법적·제도적으로 이를 지원해 줍니다. 협동조합은 농산물 생산이나 구매, 공장 운영, 의료, 교육, 문화, 직업교육 등에 뜻을 함께하는 조합원이 공동으로 출자해 만들어지고, 소유·운영·이익 분배 등 조합 운영의 모든 과정도 민주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협동조합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기업으로, 볼로냐 시는 지방정부의 경제 영역을 사실상 협동조합에 내줘 민관 협치를 하는 셈입니다. 협동조합 활동이 삶이자 생활인 도시 볼로냐. 대부분의 볼로냐 시민들이 장을 볼 때 이용하는 곳은 대기업 대형마트가 아닌 지역협동조합마트. 판매되는 상품의 70%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겁니다. 조합원인 소비자도 물건을 고를 때 지역제품이나 협동조합 제품을 주로 구입합니다. 조합원들이 조합마트에 지출한 돈은 고스란히 지역에 재투자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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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 그리고 퀘벡...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지금 울고 있는 부산과 달리, 거대자본이나 중앙정부의 개입 없이 지역 스스로 주민의 요구를 원하는 방법으로 지역경제를 꾸려갈 길은 없을까요? 오늘 웃고 있는 도시 볼로냐처럼,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투자 과정이 오롯이 ‘지역 친화적’일 순 없을까요? 지역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의 역사가 오랜 유럽에선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사회적 경제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이윤보다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이익을 중시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민주적이며 △지역 주민의 참여를 중요시합니다. 다시 말해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 같은 ‘제3부문’이 국가와 시장이 내팽개친 주민의 ‘살림살이’를 껴안아 지역 발전을 주도하는 겁니다.
1950년대 경제적 곤란으로 주민들이 지역을 떠나 인구가 고작 5,000명에 불과하던 스페인 바스크지역.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신부가 5명의 노동자와 함께 그들의 이름을 따서 울고(ULGOR)생산협동조합을 만든 게 오늘날 몬드라곤의 효시입니다. 폐업한 작은 주물 공장에서 석유난로를 만들기 시작한 지 50여 년, 지금은 약 260여개의 협동조합기업들이 협력해서 총 8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협동조합그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현재 제조업, 유통업, 금융업, 대학 및 각종 교육연구시설, 보건의료분야, 사회복지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해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던 스페인 바스크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훌륭한 지역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체. 바로 사회적 협동조합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로 예전부터 주목받아 왔습니다.
캐나다 퀘벡 주. 실업률이 10%를 넘는 등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던 1980년대 초, 퀘벡 주정부는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해 퀘벡노동자연맹과 합의해 노동연대기금을 설립합니다. 노동자들이 저축의 일부를 출연해 만든 연대기금을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쓰도록 합니다. 주정부는 기금에 매칭 펀드 형태로 참여하는 한편, 돈을 출연한 노동자의 소득세를 깎아줬고, 연방정부는 이에 따른 세수 감소를 보전해줍니다. 또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체 발전 전략을 고민하던 민간기구인 지역사회경제개발기업이 여러 비영리 기업을 만들어 복지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이와 더불어 간병, 환경, 재활용, 관광, 주거, 직업훈련,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기업이 등장해 퀘벡 주민을 고용합니다. 퀘벡 주에서 연대기금의 투자를 받은 기업은 1880여 곳, 그 결과 만들어진 일자리는 2008년 현재 12만6천여 개에 이릅니다. 이렇게 탄생한 사회적 기업들과 그 바탕이 된 각종 사회단체들이 주정부와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연대조직인 ‘샹티에’(Chantier)를 만듭니다. 그리곤 퀘벡 주정부가 재정위기와 실업문제 해결책을 찾으려고 제안한 ‘퀘벡의 경제·사회 미래에 관한 대표회담’에 참여합니다. 또한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노동조합, 기업, 정부의 파트너십을 지원하는 역할도 맡습니다. 마침내 2004년 폴 마틴 당시 총리는 ”사회적 기업가는 강한 공동체에 필수적”이라며 사회적 경제를 캐나다의 핵심적 사회정책 수단으로 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결과 2008년 말 현재 캐나다 전역에서 사회적 경제에서 일자리를 찾은 이는 200만 명이 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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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 사는 즐거움
여리지만, 우리나라에도 사회적 경제의 ‘싹’은 자라고 있습니다. 사회적 협동경제를 지향하는 지역, 강원도 원주. 원주지역은 천주교의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영향아래 1960년대부터 다양한 형식의 협동, 자립운동이 시도되어 왔습니다. 1970년대 남한강대홍수에 따른 재해복구과정에서 신용협동조합운동과 마을구판장형태의 소비조합운동이 농촌과 탄광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서남부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1980년대에는 도시와 농촌의 상생이라는 주제로 한살림과 생활협동조합운동으로 진화됩니다. 1990년대 협동조합운동을 이끌던 ‘원주캠프’가 해산되면서 약간의 정체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면서 한살림과 생협운동이 성장하고,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통해 원주의료생협이 창립되면서 새로운 도약기를 맞게 됩니다. 의료생협은 유기농산물 등 안전한 먹을거리 중심의 구매생협에서 보건의료서비스라는 사회적서비스 영역으로 협동조합운동이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는 ‘협동조합간 협동’과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라는 원칙을 기치로 2003년 창립하여 협동조합운동방식의 사회적 경제 블록을 활성화하기 위한 활동에 집중합니다. 현재 총 13개 협동조합과 단체, 2만여 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의 회원단체들은 자체적으로 다양한 경제 사업을 벌여왔고, 최근에는 사회적일자리사업을 활용해 사회적 기업을 창립하는 등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습니다. 사회서비스분야 협동조합인 원주의료생협을 시작으로 친환경농업기반과 생협유통망을 활용해 무농약 쌀과자를 생산하는 (합)햇살나눔, 노인일자리창출을 주 사업으로 하는 원주노인생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한 친환경급식지원센터인 원주푸드 ‘행복한 달팽이’가 문을 열어 농촌지역의 어린이집과 초, 중학교, 상지대학교 구내식당 급식 등에 원주지역산 무농약 쌀을 공급하는 등 로컬푸드운동에 앞장섭니다.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는 친환경농업, 보건의료서비스, 보육 및 교육, 복지 등 생활의 전 부문을 아우르며 각 부문별로도 종횡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2008년엔 안정적인 교육, 연구 사업을 지원할 협동사회경제연구원을 상지대학교와 함께 설립했습니다. 더구나 정부지원과 별도로 자체적인 지원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협동기금 설치를 논의할 정도입니다. 문득 소식지 ‘원주에 사는 즐거움’을 다시 펼칩니다. 밝음신협을 비롯해서 한살림, 의료생협, 노인생협 그리고 워커스컬렉티브 같은 대안노동조직, 친환경 원주푸드 ‘행복한 달팽이’나 원주주거복지센터 그리고 환경운동연합 재활용사업단 ‘다자원’과 자활, 대안학교인 한알학교와 위스타트마을센터까지... 말 그대로 지역순환, 지역자립을 꿈꾸며 사회적 협동경제를 지향하는 지역답습니다. ‘원주에 사는 즐거움’, 너무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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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에 길을 묻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십자포화로 말미암아 국가마다 농업을 비롯한 지역경제의 몰락, 빈부격차 확대와 실업 증가, 환경문제 심화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연대의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지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다양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지역모델을 개척해 나갑니다. 특히 유럽과 일본에선 1980년대부터 지역순환, 지역재생, 지역자립의 경제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이슈가 된 지 오랩니다. 유럽과 일본에서 지역재생에 대한 이해와 요구는 지역의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로컬푸드나 지산지소 운동, 지역순환형 에너지사업, 사회적 기업을 통한 복지안전망 구축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정부나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섭니다. 사실 협동조합 시스템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지역의 위기에 효과적인 대응능력을 보여줍니다. 전 세계 협동조합들은 다국적기업이나 대형유통업체와 달리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결합하여 지역전체의 성장에 기여합니다. 특히 경제적 활동에서 지역자산의 고갈을 방지하는 지속가능한 방식을 고집하며 사업 이윤은 지역으로 환원되어 지역자립의 경제시스템을 강화해 나갑니다. 한국에서도 IMF 구제금융 이후 지역순환, 지역재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경제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싹트고 있습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지역 친환경농업의 강화, 식품안전에 대한 대응, 건강한 보건의료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경제와 사회 안전망 확보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주에선 사회적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경제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게만 보입니다.
우리 제주에서도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지역의 경제적 자립과 생태적인 지속가능성,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일. 지역주민 누구나 안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사는 길. ‘모두가 행복한’ 그런 지역을 바란다면 말입니다. 사회적 경제는 지역사회에서 길러집니다. 우리 주변 이웃들을 보살피기 위한 돌봄 서비스, 아이들을 안심하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보육과 교육, 보건, 의료 서비스, 주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농업과 식품산업, 주거와 복지, 문화 등이 바로 사회적 경제가 담당하는 주된 영역입니다. 바로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영역에서 다름 아닌 우리 이웃들의 필요를 조직하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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