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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휴먼라이브러리]반짝이고 떠들썩한 것들 속의 조용한 진주, 제주치과의사신협에서 운영하는 불기(不器)도서관


 반짝이고 떠들썩한 것들 속의 조용한 진주


제주치과의사신협에서 운영하는 불기(不器)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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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휴먼라이브러리는 ‘라이브러리’ 즉 도서관을 직접 찾아가기로 하였다.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이나 어린이 도서관도 많고 사설 도서관도 있지만, 이번에 방문할 곳은 의사협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그것도 제주치과의사협회!


제주의 치과의사신협에서 도서관을 운영한다고? 게다가 ‘인문고전 전문도서관’ 이라고? 헐~


11월 26일 오후2시. 오라동에 위치한 제주치과의사신협 3층에 자리한 불기도서관에서 신용래 이사장님을 만났다.


 


불기도서관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실례일지 모르나 처음 들었을때 불교 관련 도서관인줄 알았답니다


‘불기(不器)’란, ‘특정한 것을 담는 그릇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論語)>의‘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현판 글씨도 써 주셨죠.처음 이 이름을 지을 때 반대도 무척 많았습니다. 불기(不起)라니 음탕하지 않느냐부터...ㅎ


(뜻을 이해하고 나니 인문고전 도서관에 이보다 더 딱 맞는 이름은 없을 것 같아요)


 


잠시 둘러 보았는데 책들이 아주 두껍고 어려워 보여요


‘인문고전 전문도서관’을 만들자는 취지하에 2012년 10월 27일 이곳에 문을 열었고, 현재 4천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두 번 도서를 구입하고 있는데, 도서는 분야별 도서 추천위원(강봉수 윤리학교수, 강유원 철학자, 김경훈 시인, 김석희 번역가, 박경훈 화가, 박노해 시인, 오강남 비교종교학 교수, 이영권 역사교사, 이정배 종교철학 교수)을 위촉해 이들이 추천한 도서만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책의 20%는 이미 품절된 책들입니다.


초판에 책을 몇 권 정도 찍을 것 같나요? 대부분 2,000부 정도 찍습니다. 이 숫자는 전국의 도서관 숫자보다 적습니다. 우리 도서관은 처음부터 관심이 적은 분야에 투자하려고 마음먹고 시작하였습니다.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아카이브 구축이 목적이죠. 처음부터 지난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10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신협 소속 치과가 약 200여개 되는데 운영 재원은 신협의 매년 수익금(2천만원)과 기부를 통해 마련하고 있습니다. 기부는 책이 아닌 현금(!)으로만 받습니다. 앞서 말했듯 추천위원이 추천하는 도서만을 구입하기 때문에 기부를 하는 회원에게는 책 안쪽에 기증자의 이름을 넣어 줍니다. 하지만 기증한 책이 무엇인지 본인도 잘 모릅니다 ㅎㅎ 이 중에서 본인이 기증한 책을 찾기는 쉽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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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불기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좌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고전은 특성상 혼자 읽기가 어려우므로, 고전을 읽기 위한 강좌에 역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불기도서관 강좌의 특징은 ‘다층적 고전읽기’입니다. 한 사람의 해석과 생각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도서관의 철학입니다. 때문에 한 권의 고전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여 읽어주지요.


예를 들어 <논어(論語)>의 경우, 강봉수(제주대 윤리학과) 교수의 ‘논어 읽기’(4주), 강유원 철학자의 ‘서양 철학자가 본 논어’, 이용림 한학자의 ‘논어의 의미와 성독(聲讀)하기’로 구성해 여러 시선을 접할 수 있도록 강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생각과 관점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중점을 둡니다.


강의는 꾸준히 50명 정도가 수강하고 있습니다


 


왜 어렵고 따분한 ‘인문고전 전문도서관’을 표방하시게 되었는지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조금씩 부활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인문학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지요. 동네 서점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인문 관련 강의를 듣고 싶어도 강의가 잘 없기도 하거니와, 도서관 등지에서 하는 강의는 너무나 대중적인데다 베스트셀러 중심이라 인문학 자체에 집중한 강의는 좀처럼 찾기가 힘듭니다. 어렵사리 그런 강의가 개설되었다손 치더라도 자금 등의 현실적 조건으로 좀처럼 지속성을 가지기는 더 어렵구요.


그렇다면 우리 불기도서관이 베스트셀러만 좇아가는 현실에서 그 틈새를 메워보자고 생각했죠.


도서관은 소비되고 버려지는 단순한 지식의 저장소가 아니라, 인간 세상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노력한 성현들의 지혜를 모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고전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총체적인 힘이 담겨 있습니다. 불기도서관은 영원한 고전의 힘으로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며, 나아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지성의 영역을 확대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불기도서관에서는 강의 이외에 다른 프로그램들도 운영하나요?


인문고전 강의에 중점을 두고요, 그 외에 독서토론회와 고전읽기 소모임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고전은 사실 혼자 읽으려면 어렵고 힘들뿐 아니라 금방 지칩니다. 그래서 함께 읽자는 것이 고전읽기 소모임입니다. 독서토론회는 현재 10명 정도 함께 하는데 책을 읽고 발제하고 강사가 발제 내용에 대해 첨삭지도까지 해줍니다. 지난번에는 플라톤의 『국가』를 가지고 진행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우선 강사가 발제의 형식 등에 대해 미리 코멘트를 해 주면, 각자가 책을 읽고 발제를 해 옵니다. 그 후 각각의 발제 내용에 대해 다시 첨삭을 하면서 더 공부를 합니다. 책을 읽고 책으로 배운다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과정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독서토론회에서 발제하고 토론한 내용은 자료집으로 100권까지 쭉 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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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강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내년도 굵직한 강의 계획은 다 나왔습니다. 1,2월에는 강유원 박사의 일본 근현대사 강의, 3,4월에는 ‘서양고전으로 배우는 기초인문학과 글쓰기’라는 주제하에 『국가』『리바이어던』『자유론』『정의론』『민주주의론』등을 읽을 예정이구요, 하반기에는 한국철학과 이유선 박사 ‘민주주의 고전 읽기’등이 다체롭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명상들이 가득한 소설 『모비딕』을 함께 읽고, 김석희 번역가를 만나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계획되어 있으니, 관심 갖고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장님께서 개인적으로 청소년, 또는 일반인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도서가 있다면?


특별히 어느 한 권을 추천하기 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라’ 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만, 그 책이 술술 잘 읽힌다면 더 이상 안 읽어도 좋습니다. ‘어,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책, 어려운 책을 꼭 한권 읽었으면 합니다. 그런 책이 자기 수준을 한 단계 도약 시켜 주는 책이니까요


 


처음 불기도서관을 찾아가면서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평소 제목조차 들어본적 없는 책들, 표지만 보아도 저절로 고개가 돌려지는 책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논하고 토론하는 도서관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이 이야기의 주제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서^^ , 또 신용래 이사장님께서 편하고 즐겁게 대화를 이끌어주셔서 처음의 거부감(!)은 꽤 많이 상쇄시키고 올 수 있었다.


어렵고 관심이 적은 분야라고 해서 그에 비례하여 가치마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반짝이고 떠들썩한 것들 사이에서 조용히 내면의 근육을 키우고 있는 불기도서관은, 단연코 제주 도서관 중의 진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