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가입하기

활동소식




감시·대안·참여·연대를 지향합니다.

1월의 휴먼 라이브러리_만화작가 김홍모] “모험은 위험이 따라야 재밌죠.”







햇살 좋았던 1월 28일 오후, 나른한 마음을 뒤로 하고 김홍모 만화작가님을 만나러 그림책 미술관 제라진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른해진 내 마음 어떡하나, 작가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내 부끄러운 마음은 어떡하나.. 걱정걱정 했지만, 작가님의 유쾌한 입담 덕에 시간가는 줄 몰랐던 순간이었어요.
 
새해 첫 휴먼 라이브러리에는 그림책 미술관 제라진의 신수진, 신성희 선생님과 김지언 회원님, 김소운 학생이 함께했습니다. 김소운 학생의 유쾌하고 발랄한 질문 덕에 더욱 알찬 시간이 될 수 있었어요. 그럼, 아직까지도 순수 소년의 마음으로 제주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고 계시는 김홍모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만나러 가 보실까요?




P20150128_162332124_79A1254C-2009-4EB0-8154-BF689DB77D4A.JPG





-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 귀촌을 준비하다 제주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후보는 여러 군데였어요. 지리산, 변산, 퇴촌으로 갈지 고민했죠. 그러다 강연 차 제주도에 오게 되었는데, 교통이 심플하고,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주도에 왔습니다.
 
- 왜 귀촌을 생각하셨나요?
- 도시.. 경쟁이 싫어요. 도시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두는 것 같아요. 서로 경쟁하게 하고..
 
- 바쁘시죠? 요즘은 어떤 생활을 하시나요?
- 제주도가 작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날씨가 좋으면 놀아야 되니까... 김녕 주변에 사는데, 바다보고, 커피 마시고, 꽃보고, 사진 찍으면 밥 먹고.. 그러다 자면 하루가 가요. 너무 놀기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 지금은 어떤 작품을 구상중인가요?
- 구상하는 작품은 많아요. 여성, 빨치산, 종군 위안부, 부정선거.... 간첩... 저는 진짜 간첩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어요. 27살에 남파되어 오신 분이신데... 1959년에.. 감옥에서 36년을 있었고, 출소한지 10여년 되신 분이었어요. 만경대학원 출신이니, 북한에서는 엘리트 신분이었죠. 왠지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을 꽃미남 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진짜 간첩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어요. 이 분 말로는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간첩은 1명도 내려오지 않았대요. 그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북진통일론을 얘기할 때, 그와 달리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북의 중간 연락망 역할을 하려고 내려오셨다고 해요. 그러니까 자기 관점에서 자신은 간첩이 아닌 통일운동가였던 거죠. 관점의 차이가 큰 것 같아요.
 
- 그래서 그 분은 감옥에서 나와 어떻게 생활하시나요?
- 통일운동을 계속하세요. 김영삼·김대중 때 나오셨는데, 지금은 범민련과 민족21 고문으로 활동하세요. 이분은 통일을 남북이 같이 풀어가야 할 문제로 보았어요. 남쪽이 선택해야하는 것이 아닌...
 
- 또 구상하고 계시는 작품이 있나요?
- 그림책 2개를 하고 있고, 만화작업은 마무리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해녀항쟁에 대한 만화도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작업으로는 나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데모하다 감옥을 가기도 했었거든요. 아직 제 이야기를 4년째 못 끝내고 있는데, 꽤 재미있답니다. 이 이야기로 공모전에 당선된 지 언 4년이 지났어요. 아직 작업의 30%가 남은 상황이에요. 돈 버느라고... 전 싫어하는 작업은 하지 않아요. 내가 글로 쓰지 않은 작업은 돈을 버는 작업이지요.





P20150128_162349704_C7850920-B92E-4B6E-9561-E0F37C961B50.JPG





- 친형이 만화가라고 들었어요. 형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 네,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형과 제가 나이차이가 꽤 났는데, 형은 17살 때부터 독고탁을 그린 만화가 이상무 선생님의 문하생이었어요. 후에는 김하늘이라는 필명으로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을 내 놓기도 했죠. 형의 만화는 99%가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였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형의 작품은 ‘아픔을 겪는 시절’이에요. 흑인 혼혈 아이가 겪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낸 작품이었는데 ‘아픔을 겪는 시절’이란 제목이 너무 좋아서 입시 때 이 제목을 그대로 해서 시를 시리즈로 써보기도 했죠. 쓴 시를 친구의 생일에 선물하기도 했어요. 감성 터지는 시였는데, 친구는 그 시를 제가 쓴 건지 모르고, 노트에 베껴 쓰기도 했다고 하네요.
 
- 동양화를 공부하셨는데, 어떻게 만화가가 될 생각을 하셨나요?
-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때는 만화관련 학과가 없었어요. 제가 예술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전공 나눌 때 생각해 보니까 김홍도가 좋더라고요. 김홍도의 서당도는 특히 많은 얘기가 들어있어서 좋아했어요. 저는 동양화, 인물화를 그리는 게 너무 좋았어요.
 
- 혹시 만화에 동양화 기법을 적용하겠단 생각을 하진 않으셨나요? 수묵화가 우리 정서에 맞아서 사용해보겠다, 뭐 이런 생각을 갖고 작품을 하신 적은 없었나요?
- 제가 생각하기에 만화에서 그림은 글에 복종되게 되어 있어요. 만화에서도 핵심은 이야기의 전달이지요. 만화가 중 그림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면 그림 때문에 내용에 집중이 잘 안돼요. 반대로 그림이 별로여도, 내용이 좋으면 집중이 잘 되지요. 결국 자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이야기에 맞는 기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 그렇죠. 제 작품 중에도 컴퓨터로 작업한 것들이 있어요. 컴퓨터의 차가운 느낌이 그 작품에 필요했기 때문이죠. 제가 봤을 때 만화가 윤태호씨는 글과 그림을 동시에 잘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미생이랑 이끼때랑 그림체가 다른데, 이야기와 그림의 조화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 소위 글쓰기 작업만 하는 거랑 그림도 함께 그려야 되는 거랑 어떤 차이가 있나요?
- 그림도 함께 그리는 건 되게 힘들어요. 작업 순서를 보면, 처음에는 글을 써요. 쓴 글을 바탕으로 콘티를 만들고, 그 후에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또 되게 재밌는데, 그만큼 힘이 들어요.
 
- 그림과 글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만화는 확실히 텍스트보다 더 임펙트가 있어요. 제가 ‘내가 살던 용산’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르포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만화가 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더라고요. 만화는 영상과 텍스트의 딱 중간에 있는 것 같아요. 텍스트가 너무 많은 상상의 여지를 준다면, 영상은 거의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죠. 대신 만화는 영상과 텍스트의 중간에서 그 장점을 취하고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사람들 기억에 많이 남고 임펙트도 있죠. 이 작품 이후로, 르포만화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P20150128_171939000_046E3D76-0D14-4484-B8E9-18A3ABCBF6D0.JPG





- 슬럼프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좀 많이 좋아지셨나요?
- 몇 년째 슬럼프였어요. 지금은 한 60% 정도 회복한 것 같아요. 사실 여기 오기 3년 전에 몸이 좋지 않아 응급수술을 받았어요. 그 때문에 몇 개월 작업을 못해 일이 밀리기 시작했죠. 원래 제가 일 안 밀리고 제때 마감하기로 유명했었거든요. 근데, 수술을 하고 그 전후로 아프니까 일이 켜켜이 밀려 버렸어요. 원래 뭔가 계획적으로 하는 편인데, 일이 밀리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러면서 언제부턴가 그림 그리는 게 싫어졌어요. 지겹고. 제주에 와서는 수영하고 놀면서 또 “이왕 밀린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작업이 밀려 버렸어요. 지금 그림책 갤러리 제라진에서 다양한 분들과 그림 그리는 모임을 만든 것도 슬럼프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죠. 같이 재밌게 해 보려고.
 
- 애니메이션 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 없어요. 애니메이션은 生노가다에요. 컴퓨터로 작업하려해도 生클릭질이 필요하죠. 자본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애니메이션 좋아해요. 특히 픽사나 지브리 작품을 좋아하죠. 픽사와 지브리는 작업 시스템의 차이가 엄청나요. 지브리가 옛날의 감독 중심 시스템이라면, 픽사는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지요. 실제로 ‘니모를 찾아서’란 작품을 만들 때는 스텝들 모두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게 하기도 했대요. 그만큼 자유롭고, 토론문화도 발달한 곳이 픽사예요. 그래서 그런지 라따뚜이나 토이스토리 같은 픽사의 작품에는 아이의 스토리와 어른의 철학이 함께 묻어나 있죠. 라따뚜이는 딸아이도 좋아해서 50번 정도 본 것 같아요.
 
- 제주 오기 전, 헤이리에서 만화방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만화방은 어떻게 되었나요?
- 헤이리 만화방은 하민석 작가에게 넘기고 왔어요. 수익이 안 나서 결국 공동 작업실로 바뀌긴 했지만요. 그래도 만화방 할 때 순수하게 만화책만 보러 전라도에서 한 가족이 오기도 했어요. 2박 3일정도 주변에 숙소를 잡으시고, 하루 종일 가족이 만화책을 보다가 갔어요.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저희 만화방에 옛날 만화도 많았거든요. 보물섬같이 냄새만 맡아도 추억 돋는... 그 분들이 꼭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하시고는 가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꽤 있었어요.
 
- 만화 그리는 거 말고, 향후 계획은 어떤 게 있나요?
- 나중에 제주에서도 만화방을 하고 싶어요. 장사보다는 오픈 작업실 개념으로요. 강정마을 놀이터를 만화방과 연결시켜도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록_작가님과 소운학생의 작은 라이브러리]


  

7013092.jpg

 

- 작가님이 그리는 로봇 태권V에는 왜 털이 났나요?
- 저는 시사만화부터 시작했어요. 인터넷 한겨레, 오마이뉴스, 뉴스툰, 민중의 소리에 4컷자리 만평을 그렸죠. 그때 주인공이 태권V였어요. 늙은 태권V. 노무현 파병 때 그린 것들인데, 늙은 태권V는 386 세대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영웅들이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버린 것, 그게 수염난 태권V였어요. 그 정서감을 가지고 어떻게 미국이랑 싸우냐.. 뭐 이런 고민들이었죠. 거기엔 소운이와 같이 당찬 여고생이 나와요. 태권V한테 뭐라고 하는...
 
- 작가님 작품 「두근두근 탐험대」에서 왜 얼음으로 뗏목을 만들어서 타나요? 추운데...
- 얼음 뗏목은 실제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에요.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기도 하죠. 저는 파주 한탄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하루하루가 모험이었죠. 얼음을 깨기도 하고, 깬 얼음을 가지고 배도 만들었어요. 물론 99% 실패였어요. 다들 점점 물에 빠졌죠. 얼음 배는 깨지고...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계속 만들어서 탔어요. 그러다 진짜 한번은 성공하기도 했어요. 도끼 등 어마어마한 장비 들고, 친구들과 심혈을 기울여 만든 끝에... 모험을 떠나는 느낌이었어요. 춥고, 물에 빠져도 재밌었죠. 모험은 위험이 따라야 재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