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가입하기

활동소식




감시·대안·참여·연대를 지향합니다.

석학인문강좌에 초대합니다!! 한양대학교 엄정식 석좌교수님


강연자: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서강대 명예교수 엄정식 교수님

일자: 2012년 11월 2일(금) 오후7:00~9:00

장소: 제주참여환경연대 교육문화카페 '자람'

참가비: 무료


사진_엄정식(서강대명예교수).jpg


# 본 강좌는 한국연구재단이 진행하는 사업으로 석학을 모시기 힘든 지역을 대상으로 전액 지원하여 열리는 강좌입니다. 참가하실 분은 아래는 엄정식 교수님 강연 요약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행복’이 중요한 담론으로 등장한 느낌을 준다. 각종 광고 매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 구호로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닥치면서 과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욕구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웰빙’ 혹은 ‘참살이’라는 표현이 유행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을 깊이 음미해 보면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복의 현대적 혹은 한국적 표현일 뿐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 목표로서 자기의 가능성이 모두 실현된 상태이다. 한편 최근에 이루어진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현대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을 원한다고 한다. 즉 “정의가 지켜지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고 건강하게 장수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배움과 교육의 기회를 갖고 충분한 생계 수단을 누리면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고, 최대한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조건만 추구하면 제대로 충족될 수도 없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선 행복은 즐거움을 경험함으로써 확인되는 ‘심리적 개념’이다. 때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요소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을 통해서 누릴 때 찾아오는 즐거움의 상태인 것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면 어떻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즐거움은 반드시 외형적 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이 아니다. 자기의 즐거움이 좀 더 오래 지속되고 더욱 넓게 퍼져나가게 될 때의 확장된 즐거움이다. 그것은 “좋은 일을 할 때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윤리적’ 개념이기도 한 것이다.

그 다음 행복은 이성적 존재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합리적’ 개념이다. 우리는 일시적 즐거움이나 갑작스러운 기쁨을 경험했다고 해서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삶 전반에 걸쳐서 합리적으로 설계된 것이고 꾸준한 노력을 거쳐서 이루어낸 즐거움이라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복권에 당첨되거나 이산가족이 갑자기 상봉하게 된 경우 오히려 불행해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행복은 ‘섭리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성적 존재로서 어떤 인간이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기 삶의 설계가 대체로 잘 실현되고 있다고 믿을 때 경험하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반드시 노력에 정비례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예측한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자연 혹은 신의 섭리와 무관하지 않은 축복의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섭리에 순응함으로써 해탈이나 구원을 통해 궁극적인 행복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복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일시적인 쾌락과 구분되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화려하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무지개’와 같은 그 무엇으로 비유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 즉 합리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또한 그 성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갖출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은 또한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그 ‘나’로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소크라테가가 말했듯이 자기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를 알고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을 의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올더스 헉슬리가 지적했듯이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한낱 ‘부산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