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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명의 섬 '소록도'


소외의 외딴섬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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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
전경. 현재 여기에는 660명의 한센병 환자중 제주 출신도 12명이 머물고 있다.
[대학생 국토평화기행 (2)]소록도. 우리사회의 여러 그늘이 있지만, 소록도는 이중의 소외를 안은 또 하나의 ‘격리 사회’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평화순례의 첫
여정에서 접한 소록도는 더 이상 그늘지고 외딴 섬이길 거부하듯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 중앙공원에 위치한 소록도 역사자료관을 설명하는 한센인
할머니의 설명은 핵심을 또렷하고 힘이 있다. 뿐만 아니다.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소록도 여기 저기에서 만나는 한센병 환자들의 표정은 밝고
평상심에 가득차 있다.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소록도에는 현재 660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30명의 장기 봉사자들, 그리고 120명 가량의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순례단이 찾았을때에도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분주함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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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안내를 맡은 소록도
신성교회 이남철 장로는 한 마을의 이장님이기도 하다.
660명의 한센병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3세로 이제 노령화 되었다. 90년전인 1916년 개원 이후 113만평의 땅에 4,500명의
한센인들이 ‘수용’되었으나 한센병이 더 이상 치유불가능하거나 99.9%의 예방이 가능한 병이 되면서 이제 그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다.
1992년 한국정부는 우리나라에서 한센병이 더 이상 발병하지 않음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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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최초의 병원인
'자혜병원'. 90년전에 만들어졌던 이 병원은 일제 강점기 강압적 사회구제 정책을 엿볼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현재 지방문화재
238호로 지정돼 있다.
변화의 기로에 선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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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진
구나탑. 이 일대만이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소록도는 개방과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선 듯 하다. 지난 6월 2일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완공되면서 내년 이후 육지와의
소통이 빈번해질 전망이다. 고흥군에서는 벌써 소록도 관광개발을 도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드러나지 않고 있는
전국의 한센인들의 실태를 떠올리면 고흥군의 이러한 생각은 섣부름 또한 있다는 것이 이 곳 관계자들의 얘기다.


더욱 문제는 소록도가 개방되고 개발이 되기 시작하면 이 아름다운 ‘작은 사슴’의 섬은 훼손일로에 직면할지
모른다. 현재 소록도 이 곳 저 곳에는 일제때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이 문화재 건물들은 90년 한센인들의 뼈아픈 역사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한센인 시신을 해부하고 강제단종(정관수술)을 단행했던 ‘검시실’과 ‘감금실’ 건물은 일제의 극악무도한 인권유린을 여전히 몸서리 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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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때 만들어진 검시실
내부. 최악의 인권탄압의 상징을 보존하고 있다.


깊은 상처의 내면이 ‘창조’해낸 외향의 활력 ?


 거금도를 비롯한 사방의 또 다른 섬으로 둘러싼인 소록도는 아름다운 해안과 숲들, 사육되는 백록의 유희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외향은 강제노역과 인권유린의 고된 역사를 거쳐온 한센인들의 상처까지 드러내지는 않는다. 7개의 마을마다 있는
한센인들의 조금은 남루한 생활터전과 일제때의 강압을 상징하는 붉은 벽돌의 건축물들, 외로운 죽음을 상징하듯 외지게 서 있는 화장장 등이 있지만,
이섬의 활력과 아름다움은  더 이상 외딴 섬이길 거부하는 한센인들의 창조된 항변에 의해서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인다.


진정한 사회와의 소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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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진료소에서
참가자들
소록도는 아직도 폐쇄사회다. 이는 한센인들의 삶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불편한 인식과 한센병을 놓고 여전히 팽배해 있는
편견때문이다. 한센병은 불치의 병이 아니다. 더더구나 전염병도 아니다. 한센병 진단이 있더라도 99.9% 완치가 가능하다고 이미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절반인에 가까운 한센인이 사회와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한센인 가운데 82%는 정착촌이 사실상 수용소와 다름
없다고 느끼고 있다. 이들의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무지와 편견이다.
올해 휴가에는 한센인과의 소통을 위한 소록도
여정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진정한 소통과 평화의 기원을 우리 사회의 가장 외진, 그러나 철저히 의도되었던 그늘에서 시작해보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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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평화세상, 죽음과 함께하는 삶으로
배웁니다”
- 소록도에서 호스피스 봉사에 헌신하는 제주사람, 허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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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에 더욱 진력하고 싶다는 소록도의 제주사람 허옥희님


660명의 소록도 한센인 중에는 제주사람도 12명이 있다. 또한 호스피스로서 한센인들과 함께하는 제주사람이 있다. 허옥희
님이다. 소록도 한센인의 평균 연령이 73세이니 그녀는 아마 가장 분주하면서도 깊은 헌신을 하는 이가 아닐까 싶다. ‘일’ 때문일까?
참가자들은 소록도 방문에서 호스피스로서 더 진력하고자 한다는 그녀와의 만남이 큰 교훈이 되었음을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20여년 전인 1984년 봉사활동으로 왔다가 정착하게 되었다는 허옥희 님(43세)은 나이에 비해 젊고 활력에 차 보인다. 얼른
죽음을 보살피는 호스피스로서의 삶을 생각할 때 이해가 어렵다. 하지만 곧 왜 그렇게 젊게 보이는지는 그녀의 거침없으면서도 정돈된
대화로서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모두 종교인이다. 때문에 누구보다도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한센인들은 상당히
외롭게 죽어갔다. 한센인들에게는 ‘세 번의 죽음’이 있다. 한 번은 한센병 발병을 알았을때, 둘째는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치료를
망설이며 고통스러워 할 때, 세 번째는 한센인으로서 가족조차 모르게 죽어갈 때 이다. 그러니 그녀는 한센인들의 가족 이상의 벗이다.
평온한 죽음을 보장하는 천국의 전도사이다.


그녀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도 ‘성 다미안’회에서, 혹은 이 모임을 통해 매년 소록도 봉사활동이 이뤄진다고 한다. ‘용달이 샘’이라
불렸던 제주의 도두동 샘물은 조선 세종때부터 나병치료를 위한 ‘기쁨과 평화의 샘’이었단다. 지금도 제주에 ‘나협회’가 만들어져 있고,
한림지역에 호스피스 병동도 생겼단다. 제주는 한센인과 함께하는 곳이란다. 그녀의 꿈도 고향에서 호스피스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물었다. 평화의 섬 제주에 대한 바램은 무엇인지.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그런 곳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무지와
편견의 대상으로서 한센인과 거리낌 없이 함께하는 곳, 그런 곳이면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많은 이들의 죽음을 통해 고통이 없는
평화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배운다. 죽음의 평온은 죽음을 함께할 때 준비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