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반골’의 준령,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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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은 광주의 무덥고 찌든 '죽음'의 무게를 넘어서 새로운 상승의
기운을 채워가고 있다. 비내리는 지리산 실상사에서의 참가자들.
‘지혜로운 산’을 뜻하는 지리산(智異山)은 그러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있어서 ‘불복산(不伏山)’으로 명명되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는
지리산에 얽힌 내력을 이렇게 풀어갔다.
혁명, 혹은 쿠데타를 준비하던 이성계는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건국구상에 나선다.
하지만 소위 ‘영발’이 있는 명산에서 제를
올리고 ‘소지(제문을 태우는 행위)‘를 행하던 그에게 지리산은 이를 품어주지 않았다. 노고단에서 제를 행하며 소지를 올렸지만, 그것이 하늘로
향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영험하기로 소문난 남해의 금산에게는 대사가 성공할 경우 비단 옷을 입혀주겠다던 이성계는 때문에 지리산을
’불복산‘이라 명하였다고 전해진다. 한 마디로 ’반골‘로 찍힌 것이다.
나아가 이성계는 이걸로 끝내지 않았다. 그 때부터 지리산 권역에서 아무리 출중한 인물이 배출되어도 이를 중용하지 않았을뿐 더러, 즉시 숙청
혹은 유배의 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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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과 이념의 상징처럼 타올랐던 지리산. 이제 비로소 평화를 품었나. | ||
백번의 절을 올리며 평화를 서원하다
반골의 산, 지리산은 이제 비로소 평화를 품었던가. 참가자들은 지리산 자락에 이르러서야 소록도와 광주에서 내내 짓눌렸던 ‘죽음’의 무게를
새로운 상승의 기운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참가자 모두는 백번의 절을 올렸다. 처음은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둘째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임을 마음에 새기며’, 그리고 ‘삶의 근본을 모르고 사는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사랑의 삶을 참회하며’, 이렇게 아흔 아홉 번의 서원을 담은 절을 머리를 바닥에
대고 가슴을 낮음에 이르게 하며 올리던 절은 이내 백 번째 ‘내가 밝힌 생명평화의 등불로 온 누리의 뭇 생명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올리는 절로 끝맺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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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은 평화의 공감으로 벌써부터 또 다른 계획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 ||
“흔히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며 참회할 때 ‘백배 사죄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제는
생명평화를 근본원리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적은 문구를 외면서 100번 절하는 운동이 바로 생명평화 100배 서원입니다”
‘온숨’(백번의 호흡)이라는 CD로 제작된 이 음반은 6살 아이에서부터 60세를 훌쩍 넘긴 노인에게 까지 25명의 남녀노소가 다양한 삶의
질곡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백배 서원문을 낭송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100배 서원이 끝나면 CD는 또 5곡의 명상음악도 연이어 풀어준다. 약
30분의 시간으로 자기성찰과 몸의 유연함을 키울 수 있는 이 음반은 전국 3,800명의 ‘생명평화 등불’로 등록한 사람들에게 보급되고 있으며,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고 있다. (※ 음반주문처 : 063-636-1950/생명평화결사 사무국,
href="http://www.lifepeace.org/">www.lifepeace.org)
평화는 ‘미워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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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생명평화결사'와의 만남.
것’
이 날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지리산생명평화결사>와의 만남에서 평화란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마음에 담았다. 미운
상대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오히려 그 상대의 에너지로 작용해 더 큰 갈등과 대립의 반복을 몰고 올 뿐이다. 이는 지리산 댐 건설을 막게 된
배경이 오히려 ‘댐 건설 반대’를 이야기하기 보다 지리산 100일 기도와 평화의 순례에서 결정적으로 기인했음을 말하는 이원규 시인의 언급에서도
드러나는 듯 하다.
살기도 바쁜 세상에 생명평화의 언어는 자칫 사치스런 낭만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래서인가 평화는 “단지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생명평화결사의 신희지 씨는 “그러나 이 미워하지 않은 것은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한다. 미운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평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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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생명연대'에서 이원규 시인과 함께. | ||
어떻게 평화에 이를까?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이는 제주에서 출발해 벌써 3년째 이뤄지는 생명평화탁발순례가 설파하는
화두이다.
<지리산생명평화결사>에서 발행된 소식지의 다음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나’의 평화를 소망해보자.
align=center>나 박두규 |
강가의 모래알 하나가 나고 선생이라는 이름을 벗고 그래, 일단은 그것이 내 꿈이고 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