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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감시·대안·참여·연대를 지향합니다.

'빼앗김과 거듭남'의 땅, 대추리와 매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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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 구례 (여순사건 위령탑준공식 현장) → 광주(학살현장 및 5.18 묘역) → 실상사(지리산
생명연대) → 지리산 계곡 → 지리산 국립공원과 섬진강 일대→ 전북 고창(생명평화탁발순례) → 전북 부안 새만금 (계화도 ‘그레’와의
만남)→ 대추리와 도두리(경기도 평택) → 매향리

대추리로 향하는 길


새만금 계화마을의 풋풋함과 그것의 청락(靑樂)에 안주하고픈 마음들을 일으켜 평화기행 순례단은 대추리로 향했다. 주민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어
솔찮게 이어지던 ‘낮술’의 늘어짐도 대추리가 가까오면서 긴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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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로 향하는 길은 굳이 길을 묻지 않아도
된다. 그 갈림길에서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검문이 길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3중으로 이뤄지는 검문은 얼마전 까지 9중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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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도착한 저녁 7시 30분부터
촛불모임이 이어졌다. 663번째의 모임이다. 이제 대추리는 전체 150여가구 중 절반이 떠나 60가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촛불모임에는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약간이 아이들이 함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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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모임 과정에서 제주도가 고향이라는 한
할머니는 이 곳에 30년째 살고 계시다. 할머니는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가 있길래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며 푸념과 억울함을 촛불모임 내내
말하였다. 대학생 참가자인 신민영 씨(할머니 옆)는 다음 날 아침 하루 평가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잃어버린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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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의 미군기지 이전은 사람만 쫓아내는 게
아니다.
대추리 주민들의 추억마저도 쫓아내고 있다.

                                            

일찍이 폐교되긴 했지만,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의 장’이었던 학교는 시위의 거점이 된다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이 자리에 이제 뭐가 들어설지.


갈라지는 들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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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와 도두동의 넓은 들은 이제 ‘침탈’에
갇혔다. 볍씨는 뿌려졌지만 땅은 말라가고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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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리의 길가에는 한 농군은 도로 옆 뙈기의
땅에 깻잎을 심고 있었다. 그래도 농사를 짓겠다면 볍씨를 뿌린 13,000평의 논은 저 철조망 너머에 있다. 갈수가 없다. 자신의 터전에서
자식같은 벼들이 죽어가도 갈 수가 없다. 


40년전 마을주민들이 공들여 만든 논을 그들은 그렇게 고스란히 빼아갔다. “철조망을 걷지 못해도 벼라도 대신 키워져야 되지 않겠냐”며
울먹이던 농군의 표정은 “그들은 철조망 안에서 도둑부터 키우고 있다”며 분노의 그것으로 붉어졌다. 얼마전 누군가가 모판마저 뒤집어 버리고
가져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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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이 풍요의 마을은 이제 비어 간다.
미군기지에 대한 저항은 대추리를 ‘평화예술마을’로 바뀌게 했지만, 정작 집은 비어 있다.
 7월에 들면 이 빈집들의 철거가
추진된다. 순례단이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대책위 사무실에서는 누군가가 이른 새벽부터 빈집을 살피고 다녔음이 보고되고 있었다.  빈집
철거작업은 남아있는 절반의 사람들에게 공포가 될 것이다. 결국 그들 또한 ‘빨리 나가라’는 경고인 셈이다. 이 철거가 지금 임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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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도두리의 주민들은 쫓겨나고, 추억을
잃어버린 것만이 아니다.
그들의 ‘가화만사성’마저 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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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살배기 아이에게 대추리는 ‘고향’으로
남을 수 있을까?


“평화와 분노의 두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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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서 돌봄의 평화는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순례단에 참가한 양다림씨는 “평화의 마음과 분노의 마음을 동시에 마주하기 너무 힘들다”고 토로 했다.


대추리에서 매향리로, 빼앗김에서 거듭남으로


대추리에서의 무거운 마음은 매향리에 들어서면서 한층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무거움과 가벼움, 어두움과 밝음이 반복되는 여정에서 우리들의
내면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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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바다가 총궐기 했던’ 50년
전쟁마을 매향리는 ‘평화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매향리의 평화 만들기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가 8월 30일 발족될 예정이다.
작년 8월 30일 폭격연습장 완전폐쇄가 공식 결정된 날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인근 ‘빼앗김의 현장’ 대추리를 떠올리며 매향리의 거듭남의 축제는 결코 즐겁지만도 않다.
700가구의 마을에서 50년
동안 이어진 36명의 자살과 공격적으로 변해버린 아이들, 전투기의 굉음으로 멀어진 주민들의 귀와 가슴도 쉽게 축제부터 벌이기를 망설이게 하는
사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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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매향리의 평화마을 조성은 전쟁같은
시간을 단지 빠져나오는 일이 아니다. 철저히 기억하고 치유하는 일도 함께 한다.
역사 기념관과 평화박물관, 복지관이 만들어지고 문화체험과
더불어 폭격장 이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자연생태의 마을 만들기도 이뤄질 예정이다. 아이들의 정서복원과 주민들의 공동체성 회복도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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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사라진 섬 농섬은 매향리 주민들이
기억에서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갯벌에는 다시 게 들이 돌아오고 있고, 도요새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700억이 든다는 이
일대의 폭탄수거가 완전히 이뤄질때 까지
이 곳은 또한 평화만들기를 위한 살아있는 기억의 현장이 될 것이다.









“화순항 해군기지 차라리 매향리로 오라고
하세요”

-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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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살로 쿠웨이트
노동현장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20년 가까이 대책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숱한 체포, 두 번의 구속, 두 번의 벌금전과를 남겼다.

이제 그는 매향리 평화만들기에 나서면서도 늘 제주도가 걱정이다. 화순항 해군기지 문제는 그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그는 작년 화순항 기지예정지를 다녀가기도 했다. 순례단과의 첫 만남에서도 그가 대뜸 꺼낸 말은 “화순항 해군기지 절대
안됩니다”이다.  그는 “차라리 매향리에 기지를 세우라고 하세요”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욕을 들을지 모르지만,
산방산과 화순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린 터라 이미 황폐해진 매향리에다 기지를 건설하는 편이 났다는 푸념섞인 진언인 셈이다.


순례단은 며칠전 제주도 해군기지 소식을 접했다. 순례단의 마음이 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