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오리농법요? 협업이 가장 잘되는게 오리농법이죠. 말을 알아듣는것도 오리예요. 산간지역은 벌레가 많아 오리를 쓰고, 평야지대는 벌레가 적어
우렁이를 씁니다."
오늘의 문당마을이 있기에는 헌신적으로 마을과 주민을 끌어온 지역리더가 있다. 주형로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48. 영농조합법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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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형로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 및 영농조합법인 회장 | ||
이장보다 끝발(?)이 센 영농조합 대표?
할아버지때부터 문당 토박이. 아버지 삼형제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그는 "마을명 '문당(文堂)'은 '글을 가르키는 집'이란 뜻으로 어른들이
이름을 잘 지어준 것 같다"고 마을의 유명세를 조상탓(?)으로 돌렸다.
"우리나라에 세가지 지도자형이 있어요. 제명에 못살고 죽는 형, 열심히 했는데 잘못해서(공금횡령) 징역가는 형(가장 많다고 한다),
고통당하다 끝나는 형이죠. 제대로 된 지도자형이 없어요".
"물질만 올라오고 정신을 떨어지니 격차가 날 수록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결국 국민성이 땅바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그가 2002년 농촌생활유물관을 지은 이유이기도 했다.
"우선 마을의 역사와 전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이 절박했어요."
소문이 알려지자 홍동면에서 조상들의 물건을 귀하게 생각하던 주민 모두가 너나없이 무상기증을 했다.
그리고 60여평 면적에 홍성지역 출토 유물과 농기구, 생활용품 2천여점을 진열했다.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문당 출신인 역사인물(최영,
성산문, 김좌진, 한용운)의 초상도 걸어놨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2002년 자연생태 우수마을 선정, 대한민국 녹색경영대상 최우수상, 농업기반 대상(친환경부분), 2003년
정보화마을 선정(행자부), 녹색농촌체험마을 선정(농림부), 농촌마을 가꾸기 대상 수상(농림부)으로 돌아왔다.
"처음 선정됐을 당시 11개마을 중 10등을 했어요. 결국 우리 위에 10개 마을이 있구나해서 이를 악물고 1등을
해버렸죠."
사실 환경농업 시범마을은 김영삼 정부때 계획을 제출했는데 답이 없어, 다시 김대중 정부때 제출했더니 당시 학자 출신인 김성훈
농림부 장관이 응답을 했던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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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첫 도입한 오리농법은 차별회된 '오리농법재배 벼전문' 정미소를 짓기에 이르렀다. | ||
"환경농업 시범마을이 세워지는 과정은 좋았지만...사실 쉽지만은 않았어요"
"당시 현직 차관이 국장인 시절에 그를 직접 보내고 3억을 줄테니 3억원을 대라고 해서 흙살림 연구소 등 많은 건물이 들어섰지요". 하지만
군수가 워낙 환경농업에 '깜깜'해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 생태벽돌을 만들자고 해서 그 해 7월부터 9월까지 벽돌을 3만 5천장을 찍었어요. 한 2만장을 찍을 때 군수가 창문으로
내다보더니 이튿날 도장을 찍어주더군요. 1년 뒤에 교육관을 지었는데, 지금은 군수가 고맙지요. 지금 찍으라면 못찍어요". 당시 벽돌 5천장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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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입구에 걸려진 '한미FTA반대 초청 강연' 포스터. '아는게 힘'이라고 그는 말한다. | ||
"2004년 나무와 황토를 재료삼아 황토건강체험실(찜질방)을 지었는데 마을 주민이 너무 좋아했어요. 마을 회의와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무와 기름을 벌갈아 때야해서 모든 주민이 한달에 1번 당번을 하면 29일은 편안하게 쉴 수가 있지요".
그는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이자 영농조합법인 회장으로 이장보다 급(?)이 높다.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마을 보다 돈이 많기은 때문이다. 법인
자산이 12억원이나 불어났다.
정부도 농민 믿고, 농민도 정부 믿어야
"정부가 농민을 믿고, 농민이 정부를 믿어야 합니다. 사실 농민도 잘 하지 못했어요. 농민이 업자와 짜고치고 한 결과 결국 검찰 수사에서
모두 잡혀갔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적쟎은 고민들이 있다.
"현재 70억원대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는데 기획예산처에다 예산신청을 군수명의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참 골치가 아픕디다. 누구
명의로 해야 할지..."
그는 농업기반공사는 기반공사가 끝났으니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미칠팀은 확실히 미치고 손뗄 팀은 손을 떼라"는 것이다.
"돈을 갖고도 우리 스스로 공사를 발주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심사규정부터 대폭 바꾸고 희망적인 심사를 해야 합니다.
박사급들은 정말 딴게 아니라 지원한 마을마다 점수를 제대로 매겼나 확인하는 일을 맡아야 해요".
"생을 바칠 수 있는 '미친' 지도자가 있는 마을을 선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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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 자산이 12억원에 이르면서 '마을이장' 보다 끝발(?)이 센 사람이 됐다. | ||
먼저 ▲ 자기 생을 바칠 수 있는 미친 지도자가 있는 마을에 사업을 줄 것, ▲ 둘째 작거나 크거나 행정이 도와주지
않고 마을 스스로 한 사업이 있느냐를 볼 것 ▲ 세째 작거나 크거나 마을이 공동기금과 통장을 갖고 있는지, 언제부터 갖고
있는지를 볼 것 ▲ 네째 미래를 보지 않고 농약을 하고 있는지, 유기농업을 언제부터 얼마나하는지를 진단해서 마을을 선정할 것
▲ 마지막으로 같은 동점이라면 아름다운 마을에 점수를 줄 것 등이다.
"정부도 언제까지 밥을 떠먹여 주지 말고 스스로 떠먹을 수 있도록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는게 요지다.
"숱한 마을지도자들이 찾아왔지만 진정한 마음을 갖고 왔는지, 아니면 지자체에서 지원된 돈을 받으려고 왔는지는 눈동자를 보면
압니다.
그들이 들으려고 지 않으면 1시간내에 강의를 끝내지만, 스스로 배우고자 하면 2시간 넘게라도 강의를 해줍니다".
현재 활발히 진행되는 교육사업도 사실 1만명은 넘어야 수지가 맞는 사업으로, 교육비 7000원을 받고는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방앗간에서 돈벌고 교육확산에 재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의 마음씀에서 희망을 읽어...눈물 쏙 나왔다"
그는 주민들의 마음씀이 무엇보다 희망을 보게 한다고 말했다.
"사실 출자금은 3~4천만원밖에 하지 않았어요. 지난해 6% 이익배당을 했는데 한 주민이 배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출자배당을 하면
가져가지 않고 다시 재출자를 하고 배당은 불어날테지만 결국 이들이 세상을 뜨면 그 아들(후손)들이 고향을 떠나곤 모든 출자금을 빼간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결국 자산이 동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평범한 아저씨가 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쏙 나왔지요. 순간 희망이
읽혔습니다".
그가 꿈꾸는 일들은 해를 거듭하면서 하나 하나씩 펼쳐지고 있다.
"순환농업의 종착지는 결국 사람들이 순환돼야 합니다. 순환농업은 벼 짚은 소에게 주고 항생제가 없는 소의 똥을 다시 벼 거름에 쓰지요,
소는 40마리 이상 키우지 말자, 부자는 될 지언정 환경이 파괴된다, 소를 묶어 놓지 말자, 음악을 틀어주자 등 집집마다
살펴보면 집에는 카세트가 없어도 소 외양간에는 모두 다 있어요. 모든게 실험인 셈이지요."
그는 3000여평을 '은퇴농장을 통해 현재의 농업생산 방식구조를 바꿔놓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남녀노소 계층별로 조화가 안돼 있어요.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고 역할을 분담하는 조화가 필요합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순환이 돼야 하는 이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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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형로 회장이 추진한 '문당발전 100년계획' 조감도가 환경농업교육관 벽에 걸려있다. | ||
"제주도는 환갑때 가려고 아껴두고 있다"는 그가 '문당리 발전 100년계획'을 세운 동기는 뭘까?
"일본의 한 마을에선 6개월 동안 각 분야에 대한 조사를 하고, 시민단체, 마을 ,학자들이 모여 또 6개월 동안 논의를 통해 100년계획을
만드는 것을 봤어요. '우리도 못할쏘냐'하고 생각해 문당리에 시도한 것이지요. 100년계획 이후 문당리는 단 한 번의 컨설팅을 받지
않았어요".
첫 단추를 잘 꿰니 나머지 단추도 저절로 채워지더라는 그는 여전히 쉼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일본을 16번이나 다녀오면서, 일본을 쫒아갈 수 있지만 못 쫓아가는게 있어요. 바로 양심입니다. 그래서 이를 배워 문당 마을에 농산물
무인판매대를 만들고, '오늘의 양심'(가령 '오늘은 99%가 맞았음'이라고 써 붙임), '일주일의 양심', '한달의 양심'을 공개하고 있어요.
투명한 양심이 가득할 때까지요".
그가 꿈꾸는 '농촌밥상 공동체'를 향한 또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양김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