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전 세계적으로 의료관광의 열풍이 제법 거세게 일고 있다. 그 실상은 더 흥미롭다. 거센 의료관광 열풍의 진원지가 미국과 같은 의료 선진국이 아닌, 태국이나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이다.
의료관광 신흥시장의 성공 비결의 핵심은 자국의 우수 의료진에게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여 ‘고급/첨단’ 인프라 구비하게 하고, 개도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여 양질의 의료를 미국 의료비 대비 10% 수준의 가격으로 제공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의 의료보장 소외계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이 없는 4천5백만명과 보장성이 낮은 보험에 가입한 수천만명이 존재하는 데 이들이 동남아 의료관광의 주 고객이다. 동남아에서 의료관광이 성공한 비결은 한마디로 가격이다. 병원 원가의 40% 이상이 인건비인데, 2003년 한국제조업 노동자 월평균 인건비를 100으로 보면, 태국은 9.6%, 인도는 1.4% 불과하다.
이처럼 낮은 인건비와 저렴한 부대비용을 무기로 양질의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나아가 영리병원을 통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여 우수한 시설과 고가의 장비를 구비할 수 있었던 것도 빠르게 성장한 비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의료관광의 진원지는 고급 ‘명품 시장’이 아닌, ‘중저가 시장’이라는 점이다. 70-8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저임금 구조가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 유통, 소비가 동일한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료서비스 특성상 재화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이동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동남아 국가의 의료관광 성공사례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의료서비스 고급화를 위해 영리병원을 허용해야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서비스가 고급화될 것이고, 국내 의료기술은 우수하기 때문에 의료관광 또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서비스 고급화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이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의료비 수준과 인건비 및 물가수준을 고려할 때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추가 고용과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한 비용 상승으로 의료비가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고, 그로인해 동남아 대비 가격 경쟁력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생산된 신발이 동남아산 신발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의료관광에 대해 ‘무지’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의료관광 논의에서 ‘가격 경쟁력’에 대한 검토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리고 제주에도 그 논의 그대로 전해졌고, 의료관광 성공과 우수병원 유치를 위한 영리병원 합법화와 그 유치활동으로까지 본격화되었다.
제주 의료관광의 주 고객 또한 동남아 국가와 같이 미국의 의료보장 소외계층이거나 동남아와 중국의 부유층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국제적 수준에서 철저하게 가격과 치료 성적을 살피는 소비자들이다. 우리가 동남아에 비해 더 고급화할 수 있고, 치료 기술이 더 좋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가보실 필요가 있다. 시설, 장비, 진료 수준 어느 면에서도 차별화가 쉽지 않다.
아직 한국 의료가 영·미와 같은 ‘명품’ 반열에 올라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인의 눈에는 고만 고만한 ‘중저가’ 상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국내외 환자 유치를 미래 전략산업으로 설정하면서, 스스로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는 방식의 정책 추진은 곤란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더군다나, 국내 영리병원 합법화와 같은 의료민영화 흐름의 최선두에 나서면서까지 영리병원 유치에 전념하는 것은 제주도민의 건강과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현재 도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관광 활성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국내외 영리병원 유치보다 당장에는 도내에 수도권 지역거점병원 수준의 우수 병원 육성을 통한 도외 환자유출 최소화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 ⓒ제주의소리 |
제주가 경쟁력 있는 병원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출 때, ‘의료’가 제주도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될 일도, 당장의 성과에 집착할 일도 아니다. 치밀한 계획을 기초로 한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의료민영화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특별자치도의 영리병원 관련 정책에 대한 도 당국의 재고와 도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촉구해본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