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가입하기

활동소식




감시·대안·참여·연대를 지향합니다.

처녀오름길에


우리 고사리 꺾으러 갈거나? 이렇게 사심을 채우기 위해 비롯된 오름길은 한 달 여 자동차 안에서 다람쥐 통을 타고 있던 모녀에겐 만만해 보이는 동네 마실처럼 심사(深思)도, 숙고(熟考)도 없이 단행되었다.


 


















   
 
▲ 할미꽃
 

아...돌아오는 차에 몸을 기대니 다리가 무겁고 얼굴이 고구마처럼 익어 들어간다. 준비 없이 오름에 온 것이 후회스럽다. 서울에선 다리품을 팔고 살던 터라 웬만한 거리는 간단히 패스했었는데 이제 네발을 의지하고는 두발로도 굴러다니고 있구나...흑흑 그리고는 자유롭지 못한 두발을 잠시 원망하고 있는 순간...한편 자연의 가르침이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조금 더 몸으로 봄기운을 느끼라고, 통증을 수반한 긴 여운을 주고 있었던 게다. 지난 밤 내내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 속 오름길을 떠돌고 있었으니...소리 하나 없이 마음을 움직이니 큰 스승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몸 아플 땐 그저 마음병 다스리기 딱 좋은 때, 라고 하던 말이 이렇게 꼭 맞아 떨어지는 구나. 무릎이 절로 쳐진다.


게다가 40이 다 되도록 산에 피어나는 생물체들이 풀인지, 꽃인지도 모르고 지나쳐온 허송


















   
 
▲ 고사리꼼짝
 

세월들을 간단히 보상해주는 자연의 관대함이란...자연의 향기는 내 몸 속을 맴돌며 또 다른 오름길을 기약하게 한다. 역시나 나의 사심이 가득 담긴 이기심이 아직은 큰 것 같다. 후후...자연의 순리를 깨닫기엔 아직은 어린, 오름 따르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처녀 오름길에 스스로 담고 왔으니 잘난 것 없는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것도 큰 공부였다.


또한 육지의 산에서는 그려볼 수 없었던 제주 오름만의 도드라지는 풍광들...오름의 묘미는 나의 앞그림자, 뒷그림자 노릇을 하고 있는 오름꾼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아 내가 가야할 길을 먼저, 혹은 나중에 밟아가는 모습에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커다란 자연 앞에 선 나의 욕망들이 한없이 작아져가는 걸 보니 아...이제 나도 자연과 벗될 나이가 되었나보다. 죄 없는 세월을 탓하며 잊고, 잃어가는 모든 작은 것들에게 오늘부터 소박한 인사를 건네야겠다. 오늘도 네가 내 곁에 있어 고마워...




















   
 
▲ 유채꽃
 

연고 없는 제주에 내려앉은 지 이제 한 달 여가 지나고 무작정 나섰던 가족 오름길에 말 그대로 놀고, 쉬고, 걷고, 먹고, 사귀며...나는 또 다른 가족들을 얻었고 자연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았으며 제주의 희망을 발견했다. 우리 어린 꽃들이 깔깔 웃는 세상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것을...자연의 놀라운 가르침이다. 어느새 몸에서는 간질간질한 봄기운이 살살 피어오르고 있다. 쉿! 감염주의!




















   
 
▲ 따라비 오름에서
 


- 4월 한식에, 가시리 유채꽃길과 목장길, 그리고 따라비 오름을 다녀와서..노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