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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신문] “세상 평화 원하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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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남제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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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영
제주참여환경연대 회원사업국장
제주를 떠나 소록도에서 교동도까지의 길을
다시 돌아 제주로 오는 길이었다.


기행동안에 참았던 장마비가 쏟아지고 번개도 몰아쳐, 제시간에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동항 표시가 보여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마을 한 가운데 걸려있는 녹색 교통 표시판에 ‘제주’가 눈에 띄였다.
평화기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육지 끝에서 ‘제주’라는 섬을 가리키는 표시판은 의미심장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제주도에서는 육지의 지명을 가르치는 교통표시판이 없기에 이 표시는 매우 낯설어 인상적이었다.


‘평화’를 향해 가는 길의 이정표처럼 느껴졌고, 제주의 평화를 잘 가꾸어 진정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사람들이 행복을느끼고 갈수
있게하는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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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4일
생명평화탁발순례, 전북 고창군 명사십리
제주의 젊은이들이 평화기행을 떠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평화감수성’을 키우겠다는 것과 ‘평화의 섬’의 밑바탕을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그 목표는 어디까지 이뤄졌을까?


‘한반도 평화기행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었는가,를 나누기 위해 선흘의 친구의 집으로 참가자들이 모였다. 기행동안 찍었던 동영상을
보며 또 한번 같이 웃고, 같이 눈물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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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5일 새만금
계화도 갯벌체험
밤이 늦은 시간이었지만, 각 자가 여행동안의
감회와 실천에 대해 적은 글을 발표하면서 평가 시간을 가졌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10박 11일 동안의 기행은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벅찬 주제로 진행되었다. 가는 곳곳에 아름다운 자연과 고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어느 곳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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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6일 평택
대추리
그 ‘슬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 첫걸음
중에도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을 느낀 사람만이 평화의 ‘기쁨’을 만들어낼수 있음을 배웠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나로부터의 실천을 얘기하였다. 


“...기행 내내 한가지에 집중했다.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또한 내가 변해야한다는 것,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나를 진실히 사랑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이 이번 기행에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이었다.”(양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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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7일
종군위안부 역사관앞에서, 나눔의집 할머니들과
“...광주가 민주화의 중심이 된 이유,
소록도에 한센인이 내몰리게 된 이유, 평택에 미군기지를 확장하는 이유를 지리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 한다. 세상의 사건과 사물을
다양한 시각으로 봐야한다면, 지리를 전공하는 학생인 나의 첫 번째 임무는 지리적인 시각으로 사건과 사물을 보는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오문태)


“우리 모두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평화였다. 우리는 배우고 느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우리의 평화바이러스가 전파되어
나갈 것이다...이번 기행을 계기로 앞으로 나는 더 열심히 평화를 배우고 행할 것이다.”(신효주)


“...중요한 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 주위에서 느끼는 거짓된 평화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이웃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거짓된 평화를 깨고 진정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 그것이 평화의 출발점은 아닐까 싶다.”(김지훈)


‘평화감수성’은 누구나에게 있다. 다만 알아채지 못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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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8일 용산
전쟁기념관
작은 글 발표와 더불어 영상보고서도 함께
보았다. 한반도와 주변섬을 기행하면서 인상깊었던 것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에 자기의 설명을 붙이는 형식이었다.


셔터를 누른 순간 그 풍경과 눈빛을 교환하는 듯한 교감을 함께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글에 담지 못하는 그 순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원래부터 내 안에 존재했던 평화감수성은 싹을 틔우고 자라나 눈물을 만들고, 웃음을 만들고, 함께하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평화감수성이 깨어나자 모두가 시인이 되었다. 비록 사진이 없어 감동은 덜하지만 그 느낌을 나누기 위해 한 학생의 영상보고의 글을
옮겨 놓는다.


길을
따라서,,.

              
이미지


그 길에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하는 길도 있었고..,
나를 어디론가 향하게 하는 길도
있었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길도 있었다..,


사실 난..
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그 길 위에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이 지나 갔다는 사실 또한..
생각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소록도에서 만난.. 이 아름다운 길
위에는
많은 사람의 눈물과..애환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음이… 
내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살아보겠노라고..
내 목숨 다할 때까지..
이 길은 비켜 주지 못한다고..
빼앗긴
자기 밭 옆 모퉁이에
텃밭을 일구는
평택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


이제서야 조용해진..
이제서야 비로서 열린..
매향리의 철문이..


시신이 실려나갔던 서대문형무소
시구문이..


평화가 뭐냐고 나에게 물었고...
평화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물어 왔을


나는 대답도..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략)


이 길을 통해서 내 자신을 뒤
돌아 보게 되었고.,
평화를 원한다면 나부터 실천하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너와 나를 구분 짓지 않겠다.,
내가 너이고 니 가 나인 것이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세상의 소리를 길 위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
그리고,
그 길과 함께 걷고 싶다.


‘평화의 섬 제주’ 밑바탕 그리기


평화를 향한 나의 출발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어졌다. 제주에 살면서 무엇을 함께 만들어 가야할까.


제주도민만이 아니라 제주를 찾아 오는 모든 사람이 ‘평화’를 체험할수 있는 프로그램 및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들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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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0일 소록도
검시실
이번 평화기행처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텔레비젼이나 신문에서 보도되는 일들이 단순한 디지털의 조합이나 글자가 아닌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도 전체를 평화박물관처럼 가꾸는 작업이 필요하다는데 지혜가 모아졌다. 제주도
현장 그 자체가 바로 폭력과 평화가 살아있는 장이다.


아픈 과거사이자 지금도 진행형인 4.3이 그러하고, 제주의 자연을 둘러싼 갈등도 이를 절절히 보여준다.


이 아픔과 기쁨이 느낄수 있도록 작은 조형물, 살아있는 교육프로그램, 기행, 전시회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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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9일 교동도
뱃길
예를 들면 4.3사건의 확실한 진상규명과
더불어 학살이 벌어졌던 곳에 화해와 용서를 나타내는 작은 상징물로도 평화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평화박물관처럼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그곳에는 고정된 전시물이 아니라 ‘평화’를 주제로 과거, 현재의 일들을 전시할수 있고, ‘평화’를 소재로 놀이도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것으로 참가자들은 먼저 소박하게 ‘평화기행’의 사진전을 도내 대학에서 해보자 결의를
모았다. 


평화기행을 다녀온 우리들은 이제 나의 마음을, 나의 밥을 나누고, 실천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누군가가 굶주려서 생명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밥을 나누어 주십시오. 누군가가 이해받지 못하여 생명평화를
잃었습니다. 당신이 이해의 마음을 나누어 주십시오. 누군가가 만들어낸 사회 모순 때문에 생명평화가 상처 받았습니다.


당신이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 주십이오. 그렇게 하면 누군가도, 당신도 함께 생명평화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생명평화탁발 순례)


장소영 제주참여환경연대 회원사업국장 / 평화기행
도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