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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實事求是)의 ‘철학’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철학’으로


김아현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간사)



 3월 20일, 전국 단위의 시민사회단체 연대 조직인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에서 ‘민생 5대 표준공약’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이 표준공약은 △대학등록금과 학원비 △집값과 전․월세가 등의 주거 안정 △의료시장화 반대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대형마트의 규제를 통한 지역 소상공인 보호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해소 등의 내용을 담은 ‘정책대안’이다. 지역운동연대는 이 5대 분야의 정책대안을 총선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모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반영시킨 표준 공약을 발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표준 공약에는 현재 한국사회 전반이 앓고 있는 고질적 사회양극화를 바라보는 민심(民心)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도로 ‘성장’을 지향하면서도 한편으로 ‘분배’가 절실한 2008년 대한민국의 민심은, 눈물겨운 이율배반이다.
 
 사교육 부담, 공공의료의 시장화 위기, 소상공인 몰락 등의 고통은 제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제주지역 경제활동을 구성하는 분야별 경제지표들이 바닥을 치고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교육 받을 기회의 평등과 공공서비스의 보장,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일은 성장을 저해하는 위협적 요인으로 오해 받는다. ‘표(票)’로 대변되는 민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을 이야기하고 당장이라도 지역의 현안을 해결해 줄 듯 이야기하는 정당 간의 ‘메아리 없는 주장’은 따라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 현안의 해결이라는 각론을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총론을 논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성장과 분배, 보수와 진보 그 어느 것에 우선 순위를 두든, 정책 수립의 기저에 있는 ‘철학’만은 확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4.3 논쟁을 지역의 ‘표심(票心)잡기’용도로 치부하고 그만인 선거 행태, 영리의료법인을 활성화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등의 천박한 포퓰리즘은 철학의 부재에 기인한다. 민심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피부로 느껴 온 성장통과 그에 기인한 분배에의 요구는 표심잡기용 탁상공론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철학적 고민과 실사구시적 실천이 뒤따를 때, '성장 지향, 분배 요구'는 더이상 이율배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