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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원숭이


 꽃샘추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주말 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지금 다시 기온은 올라갔지만, 여전한 바람 탓으로 쌀쌀한 기운은 그대로다.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 만 11년이 다 돼서, 한 달의 '안식'을 얻었다. 혼자있는 낮 시간이 왠지 낯설고 이러 저러한 일들로 아직 고요하진 않지만, 시간의 규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으니 한결 편하다.
 무엇보다 그 동안 밀어두었던 책들을 펼쳐 보게된다. 지난 2003년, 37년 만에 귀국했다가 10개월 동안 고초만 치르고 돌아간 송두율 교수가 독일 귀환 이후 펴낸 책을 보고 있다. 안식기간에 우리사회를 반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그가 1심 재판에서 행한 최후 진술이 눈길을 끈다. 그는 당시 최후 진술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지적풍토에 대해 이를 다섯 마리의 원숭이 우화에 빗대어 비판하였다.
 다섯 마리의 원숭이 우화는 다음과 같다.


    원숭이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그 근처에 전류를 통하게 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 먹으려 나무에 오르다가 강한 전류에 놀라 곧 포기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원숭이도 이와 같았다. 이튿날 새롭게 우리 안에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 먹으려 하자, 이미 혼난 경험이 있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이를 말렸다. 그러나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만류를 뿌리치고 바나나를 따 먹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송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보안법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국정원과 공안검찰 및 이른바 거대 언론, 그리고 이에 덧붙여 기존의 선입견을 지식으로 포장하고 확대재생산해 온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서 지적한 네 마리의 원숭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사회를 항상 깨어있게 하는 많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번째 원숭이는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저를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시끄러운 굿판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아마 당시 1심에서 7년 징역형이라는 중형이 선고된데는 검찰마저 '멍청한' 원숭이에 빗댄
것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가 추가된 결과였지 않나 추측해 본다. 송교수는 지식의 역할이
반드시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이 우화를 인용했다고 한다.'잘못된 지식'이
오히려 '조직을 멍청하게' 만들고, 그 결과 사회도 둔감하게 된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유
명무실해졌다고 믿었던 국가보안법이 39년만에 돌아온 한 지식인을 매개로 한국사회를 소
용돌이로 몰고 갔던 기억은 우리사회가 '충격'이 필요한 사회임을 실감케 했다. 송교수도 그
래서 이 '충격'이 지속적이길 원한다고 최후진술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사회는 언제나 충격적이다. 그래서 웬만한 충격에는 미동의 변화조차 허락하지 않을만
큼 둔감하다. 위험사회로 일컬어지는 탈근대의 복잡성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유독 한국사
회가 충격에 둔감한 사회임을 표상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 아닌가 싶다.
 5.18이라는 정치적 충격으로 민주주의의 열린 국면을 맞이하며 두 번의 민주정권을 탄생
시키기도 했지만, 지난 참여정부가 보여준 것처럼 여전히 힘의 관계에서의 열세만을 드러냈
다. 이와 맞물려 경제적으로는 지난 대선을 통해 IMF라는 경제적 충격을 도래케 했던 개발
성장주의의 적자(嫡子)를 새 대통령으로 불러들였다.


 우리의 다섯 번째 원숭이들은 새정권의 출현 앞에서 매우 비통해 하면서도, 다시금 스스로
의 존재성을 확인시킬 수 있는 '기회'라며 자위한다. 필자 또한 새정권의 출범으로 현상하는
개발성장주의의 전면화는 50여년 동안 한국사회를 관통해왔던 그것과 비로소 단절하기 위
한 총체적 평가 기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명제처럼 이명
박 정권의 탄생은 비정상의 사회가 정상의 사회로 거듭나는 진통의 산물일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다섯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땄던 그 '예외적인 창출'이 앞선 네 마리의 원숭이보
다 늦은 이튿날의 출현으로 인한 무경험으로서가 아닌, '멍청한 지식'에 대한 '다른 생각'의
결과였다면 오늘 날 한국사회 다섯 번째 원숭이들의 새로운 거듭남을 위한 '다른 생각'은 어
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앞서야 한다.


 최근 제주에서는 난데없는 '내국인 카지노'논쟁이 일고 있다. 이미 10년 전에 혹독한 과 갈
등을 치렀던 사안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권을 달리해도 정부 불허방침에는 변함이 없고
달라진 것은 없지만, 지금 달라진 것은 카지노 찬성여론이 그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
다. 국내 여느 지역할 것이 외자유치니 규제완화니 하는 마당에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여
기에는 지역의 생존법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하고 있지만, 레저산업이니 관광전략이니 하는
세련된 포장이 새롭게 한 몫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예전 같으면 다섯 번째 원숭이라
할만한 '양심적' 부류들이 나서서 '너무도 쉽게' 거들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통해 뚜
렷하게 경험했던 것은 이른바 시장주의가 낳은 동일시의 논리이다. 너무도 지배적으로 모든
지역과 사람과 정책들은 '시장'을 얘기하기에 바빴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거대한 개발프로
젝트를 따내기 위해 아우성쳤고, 외자유치에 혈안이 되었고, 규제완화니 개방이니 하는 이
른바 대세의 논리를 선점하려 경쟁하였다. 국가는 그 결절점을 한미FTA의 논리로 장식하려
고 하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졌으니, 바로 그런 점에서, IMF 충격에도
또 다시 그것을 가능케 했던 개발성장주의세력을 새정권으로 불러들인 것은 그 동안의 소위
민주정권이 단지 힘의 열세가 아니라, 이른바 경제개혁을 내세운 시장주의에 스스로 포획된
결과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대에 우리사회의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로
운 얘기가 아니다. 굳이 이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화 시대의 다섯 번째 원숭이들의 생
존 방식을 접하면서 그 성찰의 지평이 매우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대적인 차원까지 탄탄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현대는 탈현대의 가치를 추구한다. 탈현대의 가치들은 기본적으로 차이와 공존의 논리인
데, 민주주의 정권기를 통해 우리사회는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동일시의 논리만을 재생산하
며 그 결과 양극화라는 배제의 사회를 만들고야 말았다.


 다섯 번째 원숭이는 송교수의 표현으로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시대의 다섯 번
째 원숭이의 '다른 생각'은 그것이 비록 현대사회에서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거
꾸로 현대사회를 구제할 가치로서 다양성과 공존의 논리를 '네 마리의 원숭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여다보고 꿋꿋히 세워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송두율이라는 한 지식인의 10개월의 역경을 통해 상징화된 한국사회의 충격을 이어
가는 길이자, 그의 고난을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주간 <사람소리> 소식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