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인정은 사람과의 관계를 윤택하게 해주는 필수덕목입니다. 만일 사람 사이에서 이러한 불문율적인 미덕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 것이며 이타심, 불신 등이 얼마나 횡행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 의리와 인정이야말로 인간관계에서의 보이지 않는 자양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리에도 구분은 있습니다. 인정이나 의리의 상호교환을 기화로 공리적(功利的)인 면만 취하는 부정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런 저의도 없는 순수한 의리행위는 긍정적인 가치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인정이나 의리는 인간관계의 영역의 확대라는 순기능 쪽에 우리들의 마음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세계의 문화 중 유별난 도덕적 의무 가운데 아주 특색 있는 미덕’이라고 한 인류학자들의 말을 들어 볼 필요도 없이 이 인정과 의리는 아름다운 미덕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의리와 관련하여 조선왕조 중종 때, 김안국(金安國)과 김안노(金安老)와의 얘기를 적어봅니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절친한 사이였지만 사초(史草)에서는 김안국을 의리의 사나이로, 김안노는 간신 쪽으로 찍어 둔 사람입니다.
김안노가 정권을 잡아 천하를 호령하던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그가 김안국의 집에서 김안국과 그의 동생 김정국(金正國)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잠자리에서 김안국은 김안노의 그간의 처신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기 시작하였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정권 실세에 대해 아무리 친구라지만 너무 과격한 꾸짖음에 옆에서 듣고 있던 정국은 오금이 저려왔습니다.
이에 정국은 그만하라는 뜻으로 형 안국의 다리를 꼬집었습니다. 그러자 김안국은 “너는 왜 자지 않고 내 다리를 꼬집느냐”며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 후 김안노가 형벌을 받아 처참히 죽자 김안국은 동생 김정국에게 말하기를 “김안노의 간악함을 누가 모르겠느냐만, 우리 형제는 그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으니 그 죄악을 말하지 마라”며 어렵게 사는 그의 유족에게 수시로 양식을 보내주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 간의 줄 세우기와 관련, 이 의리얘기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특히 전여옥 의원의 경우, 어떻게 박근혜와의 의리를 배반할 수 있느냐며 입에 게거품을 무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의리는 인간적인 관계가 끈끈하면 할수록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그것이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리를 져버렸다고 하는 사람의 소위 ‘상황론’이 끼어들 틈이 없음은 그것이 어느새 우리사회에서 인격의 척도가 되었기 떄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