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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관용’을 찾아서

    2007-07-19 00:44:21
  • 작성자다월당 () 조회수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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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관용’을 찾아서
    다월당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 관용(寬容)은 옛날 선비의 으뜸 덕목이었습니다. 관대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거나, 물이 깊고 넓으면 큰 고기가 산다, 또는 남의 약점이나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으면 원망 받을 일이 없다는 등은 관용을 강조한 말들입니다.

    고소 고발사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대한민국. 도대체 웃어넘길 일조차 법(法)에다 들이대고 보는 일들이 다반사로 있음을 보면서 바로 우리 조상들인 조선조 선비들은 어떻게 관용의 미덕을 실천하였는가를 살펴봅니다.

    정양파라는 사람이 충청감사로 있을 때, 수청을 든 기생과 잠을 자다가 잠시 변소에 갔습니다. 그 사이 지금의 비서 격인 통인(通引)이 날쌔게도 그 기생을 어떻게 해버린 것을 하인이 엿보고 감사에게 고해버렸습니다.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감사의 명예를 손상시켰다 하여 죽이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던 시절, 정 감사는 크게 웃으며
    “이 일을 어찌 나에게 고할 일인가. 내가 그 놈이 좋아하는 계집을 안고 놀은 것이지, 그 놈이 어찌 내가 좋아하는 계집과 관계한 것이냐?”했다는 것입니다.

    내친김에 또 하나 적어 봅니다. 선조 때 명상 이항복이 조정에서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웬 여인이 말 앞을 지나갔습니다. 이는 권위와 권세를 모독하는 일이라 하인들이 꾸짖고 밀치어 강제로 땅에 엎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돌아오자니 그 여인은 집에까지 쫓아와 발악을 하며 온갖 욕설을 해 댔습니다. 늙은이가 종들을 풀어 행패를 부렸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비단 그 여자는 죽음 뿐 아니라 일족멸문을 당할 수 있었는데 이항복은 못들은 체 하고 분이 풀릴 때까지 욕설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잘 타일러 보내라는 분부만 내렸습니다.

    인격의 측정기준으로까지 삼기도 했던 이 관용은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합니다. 타산적이며 이기적인 현대사회에서 질서니, 법이니 강조하다보니 이 관용의 미덕이 실종돼 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특히 최근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공방내용을 보면서 저 케케묵은 역사책의 갈피를 열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