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측근정치, 인의장막, 호가호위라는 말에 더하여 요즈음은 간신, 사육신, 고집불통, 오기라는 말이 잡초처럼 무성하다. 간신, 고집불통, 오기라는 후자의 말은 그 잘난 대통령 덕분에 크게 어필하는 언어지만 그것도 머지않아 소멸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전자의 어의(語意)가 갖고 있는 폐해가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따져보기로 한다.
남을 돕는 데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특히 이해관계나 자신의 신분상승과 직결되는 분야일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치권에서 주군(主君)을 모시는 경우 이 현상은 더욱 돋보이는데 그 부류는 세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1등은 말없이 음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며, 말하고 돕는 것이 2등, 그리고 도와주고 생색내는 것이 3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와준다는 면만을 가지고 본다면, 도와주고 생색내는 3등이 그중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필경 도와준 내용을 과장할 뿐 아니라 그의 동선(動線)은 주군의 시야 안에서만 존재하는 타입으로써 ‘예스맨’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죽어도 할말은 하고, 영달을 외면한 채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1등급인 말없이 돕는 부류다. 이런 사람들은 대의(大義)에 충실하고 의리를 숭상하는 사람들이다.
천하의 패륜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는 조선조 연산군 때의 일이다. 박한주(朴漢柱)라는 예천군수가 일을 잘한다는 보고를 들은 연산군은 그를 불러 간관(誎官)에 임명하려 하자 박 군수는 감히 아뢰었다.
“전하께서 비원 안에서 휘황한 장막을 쳐놓고 잔치하고 노래하며 어찌하여 이렇게 하십니까?” 하고 임금을 나무랐다. 죽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연산군은 ‘이것이 네 물건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박 군수는 “그것은 모두 백성의 힘으로 나온 것이니 백성의 것입니다. 어찌 임금의 사물(私物)입니까” 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조가 오백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선비사상이 면면히 흘러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어차피 임금의 눈에 들었으니 영화의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도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 대의 앞에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운하 논쟁이 신문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설사 그 운하로 인해 국민소득이 5만 불이 된다고 하자. 그로부터 발생되는 재원으로 국민들을 무상으로 교육을 시키고, 세금은 한푼 안내도 되고, 그저 숨만 쉬어주면 국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꿈의 국가를 이룰 수 있다 해도 백, 이백년 후의 후손들을 위해서는 폐기처분해야 마땅하다.
앞으로 이 운하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인 수치로 국민들을 설득할 모양이지만 들어보나 마나 괜한 논쟁거리의 확대로 소모전만을 키울 것이다.
문득 이 운하를 주장하는 축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앞에서 말한 남을 돕는데 3등, 즉 “되지도 않을 일을 도와주고 생색내는 부류들”이 아닌가 생각할 때 당사자는 이를 분명히 인식하여 ‘대운하 폐기’의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