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主君)에 대한 과잉충성이 일을 망치거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물론 이 경우, 당사자인 주군의 성격, 능력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폄하, 훼손되기도 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전락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충성분자들을 주군이 교사(敎唆), 활용했는지, 충성을 빌미로 일을 저질렀는지의 구분은, 잘못된 결과에 대한 규명작업을 통해서만 알 수 있지만 대체로 충성분자의 과잉행동에서 사단은 발생된다.
이들 과잉충성분자들은 보통사람들보다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언설(言說)과 필력(筆力)에 있어, 혹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논리에 있어 남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주군의 잔기침을 재채기를 지나 해수기침으로 확대하기 일쑤요, 눈치의 수치가 특히 발달하여 맹목의 충견(忠犬)에 비견된다.
문제는 주군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이런 자들에 의해 비극이 발생된다는 점이다. 총애와 신임을 배경으로 한 호가호위(狐假虎威)가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시대와 고금(古今)을 넘어 역사의 어두운 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금 李, 朴 양진영 인사들의 충성경쟁으로 소란의 도가 넘어선 느낌이다. 같은 말을 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줘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울근불근하는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곁들여 자신도 튀고 싶다는 저의가 엿보인다.
대표적으로 진수희 라는 의원의 행태가 그렇거니와, 장외(場外)에서는 조갑제씨의 연필 끝이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진 의원이야 진영 내의 인물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조갑제씨의 장외(場外)에서의 필봉은 도대체 그가 무엇을 하고자하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이쪽저쪽에 기웃대다가 한쪽으로 정착했으면 우선은 조용히 소란을 잠재울 일에 관심을 가져야지, 노골적인 한쪽 편들기의 과잉충성은 그의 논리가 아무리 천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하더라도 대중의 귀는 그를 외면할 것이다.
한 때, 토사구팽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 경우 의리를 배반한 사람을 비판하는 말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과잉 충성분자들 또한 ‘설거지대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