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의 이미지로 안면이 넓어진 전여옥의원이 있습니다. 흐물거리기가 무골(無骨)의 국수가닥이고, 눈 굴리기가 찬란하게 발달한 같은 남자 국회의원보다, 그래서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의 화관(花冠)을 쓸 것이라는 희망이, 여름날 먹구름에 햇빛 가리듯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투사가 아니라 여걸(女傑)로의 승화된 모습, 결핍과 갈증을 풀어내 줄 것이라는 시대의 총아가 황사에 벚꽃 날리듯 그대로 스러져 버리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본인이야 많은 잔돌 가운데의 하나이기 보다 군계일학으로 우뚝 서고 싶은 욕심이었겠으나, 새들도 둥지를 버릴 때는 날개가 튼튼해 진 다음에야 비상을 도모하는 법인데 그 미숙함이 도대체 안타깝다는 얘기 입니다.
굳이 박근혜와의 인간관계니, 의리니 하는 따위의 속절없는 얘기를 대입해 보고 싶지 않습니다. 튀고자 하는 명분을 아무리 무지개 빛깔로 채색을 해도 굳이 대의(大義)를 모셔다 놓고 따지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문제는 세상의 이치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입니다. 5월의 나뭇잎이 푸른 것이 어디 나뭇잎만의 뜻이겠습니까? 뿌리와 줄기와 온도 등 만유섭리(萬有攝理)에 의해서 잎이 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박수와 환호와 열광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여옥 의원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자중(自重)이 전 의원에게 부여된 덕목입니다. 잔기침에 재채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총이 코끼리나 고래를 잡는 총이라고 믿는다면 그 총으로 모기나 파리떼나 잡는 어리석음을 털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시야를 좀더 넓히다 보면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헤어진다는 것은 더 많은 준비를 가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