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자 하려거든 먼저 섬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금언(金言)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사례가 이번 이명박씨의 지만원씨 고소사건입니다.
더욱이 이명박씨는 크기위해 지만원씨를 짓밟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커버린 사람에 대한 도전이 기분 나빴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까불지마라는 엄포로서 오만과 독선이 하늘을 찌릅니다.
지만원씨가 이명박씨에게 얼마나 잘못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만 아마도 지만원씨는 이명박씨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 비판했던 것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던가, 아마 이런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씨는 그러려니 하고 웃어 넘겨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명박씨가 누구입니까? 적어도 현재까지는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분 아닙니까? 한강물에는 온갖 오물이 섞여 흐릅니다. 그곳에 연탄재 버리고 분뇨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강물은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정력으로 오늘도 맑게 흐르고 있습니다.
문득 물이 깊고 넓으면 큰 고기가 산다는 논어의 이야기가 생각난 김에 옛 선비의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를 꺼내 봅니다.
조선조 선조 때의 이원익이란 명상이 있었습니다. 그의 옛날 집이 지금의 여의도 서쪽 구석 외딴집이었는데 하루는 이웃의 새로 들어온 산지기가 소나무를 베는 아이를 잡아왔습니다. 해가 저물어 금송(禁松)을 범한 아이를 고발하기 위해 하루 맡겨놓으며 산지기 하는 말이 이 아이가 도망치는 날에는 큰 일 날줄 알라 며 호통을 치며 돌아갔습니다.
산지기가 돌아가자 집주인 이원익은 아이를 돌려보냈고 이튿날 산지기가 와서 다시 호통을 쳐도 아무렇지도 않는 듯 그냥 웃기만 했답니다. 물론 산지기는 그가 영의정 대감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테지만, 감히 영의정인 자신에게 삿대질 하는 산지기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 이것이 관용이라면 큰 지도자가 될 사람의 발끈하는 성미는 보는 이에게 불안감을 줄 뿐입니다.
대체로 남의 지난 허물을 묻지 않으면 사람으로부터 원망을 받지 않는다(不念舊惡 怨是用希)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옛 글귀가 문득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