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같은 동아리끼리 서로 오가며 사귄다는 뜻입니다. 요즘말로하면 “끼리끼리”라는, 패거리를 연상케 하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패거리”라면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있어왔던 것이겠지요. 최초의 부족국가 형성도 이것에서부터 출발되어지고, 외침에 대비한다거나 대동계처럼 특정한 목적을 갖고 좋은 일을 하는 아주 긍정적인 형태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패거리가 진짜 끼리끼리라는 쪽으로 흘러 분열과 갈등조장, 적대감 조성 등으로 발전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른바 노 정권의 위업(?)이 바로 이것이지요. 좌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남과 비강남 등 수없는 치적이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끼리끼리’가 세계를 바라보며 전체를 하나로 엮는 통합을 전제로 한 끼리끼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끼리끼리를 다시 세분하여 피아를 구분 짓는 기술, 나는 이 기술을 노 정권의 가장 싸가지 없는 위업이라 이름 짓습니다.
지연, 혈연, 학연은 한국사회에서 행세를 하기 위한 제일 조건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종교연과 군연(軍緣)까지 가세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緣)이라고 하는 것이 동질의 가치를 공유하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배타와 이기의 역기능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다못해 사돈의 팔촌이 면사무소 급사로 있어서 호적초본 떼기가 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연(緣)의 역기능이겠지요.
호남향우회, 고려대학교동문, 해병전우들의 모임이 결속력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표적 집합체라고 합니다. 고향의 산천에 대해서, 학창시절의 애환, 그리고 고락을 같이한 전우들의 모임이라 동질성이 어느 누구보다 강한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는 특정의 연을 갖고 서로 배려하며 도와준다는 순기능적 측면에서 보아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순기능이 오해를 받는다면 오해를 받는 당사자는 참외 밭에서 신발 끈을 맨다던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조선, 동아, 중앙, 연합통신, ytn, SBS, 경향신문 등 내 노라 하는 이 나라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어느 대선주자와 같은 대학 동문이라는 말을 듣고 대선을 맞이하여 혹여 유유상종을 넘어 끼리끼리로 일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