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해상복합 미군기지 건설 추진에 주민들 10년째 반대운동… 패배주의 잊고 지자체와 연대해 미국의 세계 재편전략에 맞선다
▣ 오키나와·이와쿠니=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한국에서 미군기지의 쟁점이 평택이라면 일본은 헤노코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앞바다에 대규모 해상복합 기지를 건설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상징인 후텐마 기지를 동쪽 바다인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는 계획이다. 형식적으로는 ‘이전’이지만, 내용을 보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식 기지를 좀더 효율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새로운 복합기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속셈이 있다. 그리고 벌써 10년째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 반환안에 슬쩍 끼워져
오키나와의 중심도시인 나하시에서 차를 타고 북으로 2시간쯤 달리면 캠프 슈와브 정문에 도착한다. 나고시에 속한 이곳은 미국 본토 밖에 배치된 본격적인 해병대 기지로서 전차부대를 포함한 종합 연습기지이자 전차양륙함(LST)의 상륙작전 연습장이다.
△ 해상 복합기지 건설 예정 지역에서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는 헤노코 주민들. 해상시위는 3년째 계속 되고 있다. (AFP/ TOSHIFUMURA)
이 해병대 전력은 유사시 한반도에 적용되는 작전계획에 우선 투입되는 증원군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미 이라크전과 걸프전에도 참전한 전력이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이 유사시 전개하는 가장 공격적인 전력이 바로 캠프 슈와브에 있는 것이다. 헤노코의 미래와 진로가 한국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를 정리하고 캠프 슈와브를 확대 발전시켜 동아시아의 전략적 군사력의 핵심인 오키나와 해병대를 새롭게 탈바꿈시키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고, 이 계획의 물리적 토대가 바로 해상복합 기지 건설인 셈이다. 2개의 활주로를 가진 항공기지에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의 정박이 가능한 군항을 결합한 해상복합 군사기지 건설이 계획의 뼈대다.
1995년 10월21일 후텐마 기지의 미군이 12살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고, 사건 발생 한 달 뒤 8만5천 명의 오키나와인이 분노로 물결쳤다. 그동안 쌓여왔던 미군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직접 나서 공식적인 사과까지 했다. 미선이·효순이가 죽었을 때 꿈쩍도 안 했던 미국이 무척 긴장했던 것이다. 사건 발생 1년 뒤 미-일 양국 정부는 오키나와인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기지의 근대화를 꾀하는 ‘후텐마 기지 전면 반환안’을 발표한다. 이 계획안에 헤노코 앞바다를 매립하는 안이 포함됐다. 이때가 96년 12월2일이다. 기노완시의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에 반환하는 대신 캠프 슈와브 앞 헤노코 바다를 메워 그리로 비행장을 이전하자는 계획이다.
문제가 많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사람들의 반미 분위기에 슬쩍 바뀌치기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당시에 나온 것이 아니라 1966년 오키나와에 주둔했던 미 해군에 의해 아주 구체적인 플랜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은 이미 40여 년 전 헤노코 연안의 조류기상적 조건과 지질까지 조사해 해상복합 기지를 건설하기에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 다이라 나쓰메 목사는 해상기지 저지를 위해 수영과 다이빙을 익혀 직접 현장을 누비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서재철 )
특히 기지 한쪽에는 핵무기 저장고를 건설하는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문서는 오키나와 현청의 공문서관에서 기본자료가 확인됐으며, 당시 계획을 진행했던 예비역 해군장성인 에드윈 매클래클랜(70)도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었다. 그는 26년 전 퇴역했지만 지금도 그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매주 촛불시위, 3년째 바다 시위
오키나와에서 헤노코 계획이 발표된 뒤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97년 1월27일 헤노코 주민들은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한다. 모임 소속 주민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캠프 슈와브 정문 앞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기지 이전 반대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필자가 이곳에 찾았을 때도 일흔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NO NEW BASE, PLEASE SAVE DUGONG’이라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청소년과 갓 돌을 넘긴 아기를 안은 어머니는 페트병을 씌운 촛불을 들고 있었다.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지속적으로 헤노코를 지키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위가 어두워져 팻말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꾸준히 촛불을 흔든다.
이들은 해상시위도 벌이고 있다. 헤노코 투쟁을 이끄는 다이라 나쓰메 목사는 “바다에서 이뤄지는 공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바다에서는 약한 사람을 의무적으로 구조해야 한다는 조항을 찾았다”면서 “그래서 손으로 노를 젓는 카누로 해상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3년 동안 매일 아침 6시30분에 바다에 나가 저녁까지 바다에서 생활하고 있다. 해상 투쟁을 시작할 당시엔 수영도 하지 못했지만 시위를 하면서 수영과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카누 젓는 법도 배우게 됐다는 그는 이라크 전쟁 때문에 이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라크에 갔는데 병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어요. 나중에 이곳 슈와브 기지에서 투입된 해병대가 그 공격 작전에 참가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기지 이전을 막아야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노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수염은 깎지 않을 생각입니다.”
헤노코 투쟁은 일본의 미군기지 운동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10년 가까이 계속된 농성에도 사람들은 피로한 표정 없이 꿋꿋하다.
△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건설 예정지 해변에서 농성하는 장면.
나고시 헤노코의 배가 정박하는 항구 바로 뒤에는 흰 천막이 하나 세워져 있다. 천막 옆에는 바다 속에서 소년과 같이 웃고 있는 분홍색 ‘듀공’(dugong)이 그려져 있으며 천막의 입구엔 ‘2639+734’라는 숫자가 씌어 있다. 시위가 시작된 지 2639일, 그리고 해상 시위가 시작된 지 734일이라는 뜻이다. 허리를 숙여 천막 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에서 찍은 헤노코 앞바다 사진 위에 붉은 선으로 기지 건설 예정지가 표시돼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캠프 슈와브 연안안’ 모식도다. 헤노코 기지 건설이 강행된다면, 그 선 안쪽의 바다는 모두 육지의 흙으로 메워지고 단단한 콘크리트가 깔릴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엔 북한과 중국을 겨눈 미사일과 비행기들이 배치될 것이다.
“멸종위기종 ‘듀공’을 살려내자”
천막 농성장 앞에는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있고 그 앞으로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물은 맑고 바닥은 밝아 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푸른빛으로 일렁였다. 모래사장의 한가운데를 사람 키만 한 높이의 철조망이 가로지르고 있다. 헤노코 항구 바로 옆까지 주둔하고 있는 캠프 슈와브의 철조망이다. 철책 곳곳에 색색의 리본이 수천 개 매달려 바닷바람에 흔들린다. 헤노코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그 염원을 담아 묶어놓은 것이다. 기지 건설이 시작되면 길이 2500m, 폭 730m의 이 넓고 아름다운 바다가 매립되고 헤노코 어민들이 수천 년 동안 삶을 일구었던 터전이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배를 타고 약 300m만 나가면 헤노코 앞바다가 얼마나 밝고 푸른지 단박에 느낄 있다. 바닷속 10m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래서인지 헤노코 앞바다에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듀공이 살고 있다. 세계생물종다양성센터의 피터 갤빈 수석연구원은 “헤노코 앞바다는 20~100마리 정도만이 살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듀공 서식지의 북방한계선이며 만약 기지 건설이 강행될 경우 먹이가 되는 산호초가 파괴될 뿐 아니라 해류가 변화됨으로써 듀공 생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말했다.
헤노코 투쟁은 일본 시민사회 전체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실제로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역이나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역 곳곳에 헤노코 투쟁을 지원하는 각종 모임과 연대조직이 활동한다. 지난 5월15일 오키나와에서 열린 평화대행진에는 일본 전역에서 3천여 명의 평화순례단이 참가했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오키나와까지 3천여 명이 모인 것은 쉽지 않은 열기다.
‘캠프 슈와브 연안안’으로 투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헤노코 앞바다를 매립하는 대신 캠프 슈와브의 연안을 매립해 기지를 확장하는 이 안에 헤노코가 속해 있는 나고시 시장이 찬성 의사를 밝힌 것이다. 지난 5월11일에는 오키나와 지사도 그동안의 반대 의사를 거두고 이 ‘연안안’에 찬성하고 나섰다.
△ 대규모 집회를 여는 장면.
반면 기지 이전을 약속받은 기노완 시장은 오히려 일관되게 헤노코 이전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일본 내에서의 기지 이전은 그곳이 어디든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조만간 육지에서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주민들은 공사 저지를 위한 새로운 시위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바다에서의 공사는 비교적 쉽게 막을 수 있었지만, 육지에서 기지 입구를 원천봉쇄한 뒤 공사를 강행할 경우 공사 저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헤노코 투쟁은 6월 말 미-일 간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대한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걸린 문제
헤노코 신기지 건설은 GRP(global defence posture review)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주일미군과 주한미군 재편의 일환이다. GRP는 테러와 같은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으로 미군을 재배치하려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 전략이다. 평택과 헤노코는 모두 이 GRP의 핵심 대상 지역이다.
중앙아시아~벵골만~동남아시아~동해에 이르는 ‘불안정한 지역’을 담당하는 신속 기동군 근거지를 재창출해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공격전을 수행한다는 게 미국의 계획이다.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이 생긴다면 이를 담당할 가장 핵심 전력이 헤노코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해노코 투쟁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가 걸린 문제라고 보는 이유다.
비폭력의 방식으로 9년째 계속되는 헤노코 투쟁의 사례는 미국의 정책에 저항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우리 정부와 시민들의 패배적인 인식에 자극을 줄 만하다. 헤노코는 지자체와 시민이 하나가 된다면 미국의 압력에도 충분히 저항할 수 있고 미국의 세계 재편 전략에도 맞설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