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뉴스에서는 2년째 휴학한 상태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에 나선 서울의 어느 대학생이 소개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신약의 임상실험 대상을 자처해 자신의 피를 뽑는 일까지 마다치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돈 때문에 제 몸까지 동원한 일을 두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이고 있었다. 이미 그에게는 학자금 대출로 2천여 만원의 빚이 있다고 한다.
또 어느 여학생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하루 11시간 동안 서서 일을 한다. 취업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에 몰입해도 모자라랄 판에 오로지 ‘돈’ 때문에 하루를 꼬박 바쳐야하는 그녀 역시 이 시대의 대학생이다. 그녀에게 학과공부나 취직공부는 참 요원한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차라리 부모를 탓할 것이지, 죄송하다니. 이 마음착한 대학생이 본격적인 생에 대한 기대와 준비로 설렘의 시기가 되어야 시기에 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지, 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80년대 후반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른바 ‘386 세대’다. 시대는 군사독재 정권기가 마침내 막을 내리던 시기였지만, 여전히 당시 우리사회의 화두는 ‘민주주의’였고, ‘학생운동’은 민주화를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민중가요가 일상화되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지극히 원초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강의실 일상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때였다. 가끔은 술에 취해 시대를 핑계로 싸구려 감정을 토로하며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의 맨 앞줄에 서 있다는 일종의 자긍심과 ‘새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진지하게 품고 밤새 밑줄을 그어가며 책과 씨름하기도 했다.
그 때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민주주의는 꽃이 피고, 세상은 풍요로워질때로 풍요로워졌다. 어두운 시대, 탄압에 맞서 헌신으로 나섰던 386들은 이제 우리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정치권이나 기업의 요직에 있기도 하고, 학자가 되거나 혹은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나처럼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목숨걸고 저항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풍토에 있다. 민주정부라고 불려지는 두 번의 정권을 통해 나라를 경영해본 경험까지 가져본 것이 소위 386들이다.
그러나 ‘사람사는 세상’을 외치며 권위와 맞섰던 386이 세상의 주역이 되었건만, 세상은 별로 좋아진것 같지 않다. ‘사람사는 세상’,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은 대통령이 직선으로 뽑히고,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좀 더 넓어지고, 그 때의 운동권이 정치인이 되었다고 오지 않았다. 매일 30명 이상이 사는게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밥굶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고, 16만명 이상이 1년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것이 지금 세상의 모습이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중학생이 되자마자 입시전선에 내몰리는 그야말로 극한 경쟁만이 숨막히게 전개되고 있는 현실, 이것이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앞서 TV뉴스에 비친 서울 어느 대학생의 삶은 이 현실 한 가운데에 놓여진 지금시대 우리사회 대학생의 현실을 증언할 따름이다.
자신이 처했던 시대에 비추어 지금의 대학생을 놓고 대체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취업준비에만 몰입한다고 단정하고 비난했던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나아가, 독재와 싸웠던 기억을 훈장처럼 매만지며 한 시대를 이끌고 나왔다는 자긍심에 만족하기 보다는 지금 시대의 고통곁에서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다시 386들에게 남겨진 몫이리라. ‘영주’로서 만족하지 말고 ‘왕’이 되는 꿈을 꿔야 한다는 조국 교수의 말은 어두운 시대의 보상처럼 현실과 개인에 안주하는 386들의 세태를 지적한 것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386들이야말로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영예와 더불어 한편에서는, 그 부모세대가 이룩한 산업화의 열매를 한껏 누린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녀세대들은 산업화의 또다른 산물인 경쟁과 차별, 신분질서가 전면화되는 사회에서 숨막히는 생을 보내야할 처지에 있다. 그런면에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논하기 이전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자녀세대의 고통에 대해 예의 그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으로 나서야 한다. 각자 개인의 신화로 끌어안은 ‘386’을 다시 사회화 해야 한다.
정말로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상황이 어려울수록 지금의 대학생들이 인간적인 삶을 더욱 굳게 붙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현실논리보다 ‘가치’를 쫓는 삶이야말로 일견 현실에서 소외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자신과 사회의 진짜 행복과 자유를 끌어내는 첩경임을 매 고비마다 새겨 볼 것을, 힘들지만 손잡고 어려운 시대를 함께 건널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꼭 하고 싶은 말, 현재로선 이것 밖엔 없지만 말이다.
“힘내라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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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주대신문>에 실린 칼럼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