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998년, 그리고 2011년 : 세기를 넘는 닮은꼴의 자화상
- 우근민 지사의 정치학이 풀어야할 숙제
1988년 탑동매립과 2011년 탑동매립
1988년, 탑동 해안매립 문제가 제주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제주도 개발의 전후맥락을 가르는 큰 사건으로 회자되었다. 남은 것은 을씨년스런 공간의 구획을 넘는 사나운 파도와 개발 후 10년이 넘게 골칫거리가 되었던 개발이익의 사회환원 문제였다. 여기에 올레길이 각광받자 부쩍 잦아진 먹돌해안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의 목소리들. 더 무엇이 남았을까?
2011년, 탑동바다를 또다시 매립한다고 한다. 이 계획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20여년 전 탑동해안 매립논란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면적도 20년적 매립면적에 버금간다. 탑동매립의 결과는 ‘실패’였다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또다시 추진되는 매립계획은 그 실패를 보완하려는 것인지, 그것과 무관한 새로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설령, 실패를 보완하려는 것일지라도 매립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재해 가능성, 경관변화의 문제 등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탑동 일대의 공동화를 염두에 둔 발상이라 할지라도, 지금 계획이 그것을 만회해 줄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 계획이 작년 11월 제주도정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계획입안 과정에서 공론화는 없었던듯 한데 ‘뜬금 없는’ 계획의 배경마저 궁금해진다. 여기에 탑동 해안개발에도 불구하고 침체일로에 처해 있는 이 일대 - 탑동을 배경으로 한 산지천~무근성 일대를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자는 논의에 비춰, 이번 계획은 그 논의가 무르익고 가시화되는 것 자체를 희석시킬 가능성이 크다. 굳이 원도심 재생이란 관점이 아니더라도 이 일대가 옛 제주의 관문으로서 그 흔적과 정신을 복원해 제주에 명실상부한 ‘역사의 장소’를 생성해내는 데 있어 또다시 매립이라는 개발 아이콘의 적용은 과연 타당할까?
한편, 논란을 일으키며 성사된 이호 매립지는 지금 또 어떻게 되고 있나? 여기에도 요트장시설이 포함된 투자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불과 10km 정도 떨어진 이 곳, 탑동에 또 다시 요트계류시설을 포함한 항구를 만든다? (8만톤급 크루즈 입항이 가능한 항구를 만들어 놓고, 다시 그 곳에서 불과 7~8km 떨어진 강정에 크루즈 접안시설 만든다고 하는 이른바 국책사업의 비효율과 꼭 닮았다. 물론, 현재로선 크루즈항 건설도 허명으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1998년, 이른바 ‘메가리조트’와 2011년 ‘복합리조트’
199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말레이시아 겐팅하일랜드를 모델로 한 개발계획이 느닷없이 제주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른바 ‘메가 리조트’라 명명된 이 계획은 5백만평 이상의 토지에 50억불, 당시 한화 7조원의 투자를 목표로 한 거대개발 계획이었다. 8천실~1만실 규모의 호텔군과 쇼핑아울렛, 전자디즈니랜드, 연예인타운 등 그야말로 상상 가능한 모든 ‘즐길 거리’를 다 갖다붙인 이 계획의 핵심은 무엇보다 ‘카지노’였다. 제주를 일약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흥시킬 이 거대 개발장치의 핵심부품인 셈이었다. 사업으로 들어오는 제주도의 연간 총수익 목표를 대략 1조 1천억으로 제시했던 이 환상적인 계획은 그러나 투자자본의 투명성문제, 비현실적인 내국인 카지노계획과 그로 인한 논란 등으로 도민사회에 혼란만 일으킨 채 유야무야 사라져 버렸다.
2011년, 이번에는 ‘복합 리조트’가 등장했다.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2차 중간보고에 등장한 개념이다. ‘중간보고’는 기존 국제자유도시 개발정책을 사실상 부정하며 새롭게 8가지 전략사업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새로운 것인지, 변형된 연장인지는 좀 더 봐야겠지만 8가지 전략사업의 으뜸 순위가 이른바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인 것이다. 이 복합리조트에는 매출 1조 3,000억을 목표로 한 카지노, 3,000억 목표의 쇼핑몰, 3,000억 목표의 숙박시설이 핵심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서도 말레이시아 겐팅하이랜드가 싱가폴, 마카오 등과 더불어 벤취마킹 대상으로 떠올려지고 있다. 12년전 ‘메가리조트’에서 보여졌던 패러다임이 똑같이 녹아들어가 있다.
카지노에 대한 집착도 예전 그대로다. 1998년의 메가리조트 개발계획을 통해 본격 제기된 내국인카지노 문제는 그 이후에도 ‘관광객 카지노’로 이름만 바꾸었지, 잊을만 하면 나오곤 하더니, 최근 1~2년새에는 관제동원식 여론몰이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불가’한다는 대통령의 언급도 아랑곳 없다. 여기에 이번에는 국내 최대재벌의 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가 가세하고 나섰다.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을 통해 카지노는 제주관광을 위한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제시되고 있다. 13년전에는 ‘핵심엔진’이라 명명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제주경제, 제주관광이라는 기관차를 굴리는데 있어서 내국인 카지노는 가장 중요한 ‘엔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메가급 리조트
카지노는 빠졌지만, 1998년 메가리조트 급에 버금가는 또다른 개발사업이 화제다. 150여만평의 부지에 1조 6,000억의 사업비를 투자하겠다는 이른바 ‘판타스틱 아트시티’ 사업이 그것이다. 여기에도 대형 숙박시설, 쇼핑시설,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계획되고 있다. 사업자의 사업제안 이후 불과 한 달만에 도 당국은 전격적으로 사업을 위한 MOU까지 체결해 놓았다. 물론, 올해말까지 예정대로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MOU는 없던 것으로 한다는 단서까지 달았지만, 이를 위해 벌써부터 도가 나서서 사업토지까지 비축하며 사실상 특혜를 제공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도박법률의 변천, 1998년 제주도종합발전지원법 구상, 2011년 경빙법
1998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이후 구상으로 ‘제주도종합발전지원법’이란 이름의 새로운 법안이 제출된 적이 있었다. 최근 부활논란이 제기 되었지만, 당시 법안에는 특별법 근 10년 동안 자리잡았던 ‘인근지역주민 우선고용’ 같은 도민주체개발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것도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국공유지 무상임대로 인한 특혜논란도 이 법안을 통해 처음 일었다. 더욱 문제였던 것은 당시 법안 제25조~30조에 이르는 조항이 경견, 투견, 마작장업, 투전기업, 카지노업에서 관광상품권, 복권에 이르기까지 사행산업의 육성이 종합셋트로 구성되었던 점이다.
2011년, 국제자유도시 사업수행기관인 JDC는 경빙사업 도입을 위한 법률을 추진하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거의 이것의 성사를 위해 올인하는 분위기란다. 비교적 선수연한이 짧은 선수들을 위한 빙상계의 요구와 뭔가 단기간에 돈되는 사업을 원하는 개발기업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제2의 경마장’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경빙사업은 적어도 내국인 카지노처럼 도민출입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니 경빙장 출입의 대부분은 도민들일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럼, 도민출입제한 조치를 하면될까? 그러면 장사가 안될 것이다. 누가 경빙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제주까지 오겠는가? 목적관광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우근민 지사의 정치학이 풀어야할 숙제
앞서 열거한 제주사회를 흔드는 개발사안들 중 탑동매립을 제외하고는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교롭게도 그 중심에 우근민 지사가 서있다. 지난 1998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의 개정을 추진하던 당시 우근민 도정은 어느 순간 이를 ‘제주도종합발전지원법’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법안을 추진했고, 여기에서 내국인 카지노 도입을 비롯한 도박산업이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었다. 더불어 제출된 ‘메가리조트’ 구상에도 내국인카지노 등이 핵심사업으로 들어가면서 이와 맞물려 큰 논란이 되었었다. 그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당시 우근민 도정인 것이다.
그런데, 매우 공교롭게도 지금 제2차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용역 중간보고에는 그가 13년전 몰입했던 바로 그 ‘메가리조트 계획’과 꼭 닮은 ‘복합리조트 계획’이 ‘전략사업’으로 재차 배치돼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근민 지사의 ‘작품’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용역의 과업기간이 우근민 지사가 취임하기 이전인 2010년 5월을 시작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업기간에 어떤 주문이 있을수 있다는 여지는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근민지사가 13년전 제주도종합발전지원법상에서 추진했던 카지노 등 도박산업 구상이 이번에는 현재의 특별법을 매개로 한 제2차자유도시종합계획에 반영이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종합발전지원법 논란을 연상하는 법개정 논란이 또다시 향후 특별법을 통해 일어날 전망이다.
‘제주아트시티’사업은 어떤가? 언론보도상에서 이 사업제안이 이뤄진 것이 올해 1월이고 보면, 이는 명백히 우근민 지사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보아야 한다. 탑동매립문제도 23년 전에는 관여된 바 없었다고 하지만, 바로 최근의 탑동추가매립 사업은 우근민 도정의 요청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논란이 되는 롯데리조트개발 문제도 우근민 지사가 작년 12월 16일 도의회 도정질의과정에 밝힌 것처럼 이전 도정의 일로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하지만, 결국 지금 도정의 숙제가 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계획상의 ‘복합리조트’, 그리고 ‘제주아트시티’와 최근 국공유지 특혜제공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롯데 리조트개발까지, 이 계획들의 대부분은 고가 혹은 대규모의 숙박시설, 쇼핑몰, 위락시설 등이 계획으로 녹아있다. 관광단지, 관광지구개념을 포함한 투자진흥지구사업까지 총 40여개소에 이르는 현재 진행형의 기존 개발사업에도 대부분 호텔과 콘도를 포함한 숙박시설, 각종 위락시설, 테마파크와 레저시설들이 망라되고 있다.
이미 진행되는 기존의 개발사업들을 통으로 아우르는 대단위 리조트 전략이 얹혀진 형태로병행되는 추세인 것이다. 2011년은 가히 그 동안 제주개발이 보여준 문제의 전형들이 총체적으로 재집합하는 형국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에 따른 피해는 현재의 도민들과 앞으로 제주에서 살아갈 미래세대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988년의 탑동매립의 연장에 선 2011년 탑동추가매립개발, 1998년의 메가리조트와 종합발전지원법안 구상의 내용적 맥락을 잇는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상의 ‘복합리조트’전략, 그리고 제주아트시티사업과 롯데리조트개발까지 우근민 도정은 제주개발을 둘러싼 굵직한 이 사안들 앞에서 이제 도민들에게, 제주의 주민들에게 답을 해야 한다.
롯데리조트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언급했던 당사자로서 토지제공의혹 등 의심을 사고 있는 이른바 ‘아트시티’사업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탑동매립으로 인한 피해와 경관훼손의 문제가 회자되는 현재시점에서 추가적인 매립공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본인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13년전 도박산업을 셋트로 추진하려했던 주체로서 카지노와 경빙과 같은 도박산업이 인수위 시절 내건 프레임처럼 과연 ‘도민중심시대의 첫 설계’인가 하는 의문앞에 지금 다시 답안을 검토해야 한다. 바로 본인재임시절 시작된 국제자유도시의 명과 암에 대한 분명한 평가를 내놓아야 하며, 10년, 20년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었어도 그때 그 모습으로 끊임없이 재탕되는 제주도 개발의 문제 앞에서 우근민지사의 정치학은 그 세월을 여과없이 답습할 것인지 답안을 써야 한다.
굳이 누구의 정책으로서 잘잘못을 따지자는게 아니다. 각각의 정책의 타당성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지리멸렬 재탕의 연속인 제주개발의 선상에 공교롭게 지금 이 시기에 우근민지사의 정치학이 다시 서게 되었다. 자신의 정치학이 지향하는 바가 다시 그것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지금 이 시점에서 세기를 넘어 십수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과연 그것이 타당한가하는 것을 평가하고 점검해야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직면한 정치학적 숙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근민 지사가 풀어야할 숙제인 것인다. 그 때 그 개발정책이, 그 때 그 사업들이 지금 도민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지금의 제주를 어떻게 변모시켰나? 그 변화는 우리를, 제주를 어떻게 이끌고 있나? 또 세월이 흘러 재차 떠오른 이 사안들은 우리를 과거로 이끌것인가? 미래로 이끌것인가? ‘정책’이 아닌, ‘정치’로서 판단해야 한다. 굳이 우근민 지사가 선거때 자임했던 대통합의 정치를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