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지진이 일어난 3월 11일 오후 관서공항에 내렸다. 8.8의 대지진(나중에 9.0)이 있었다고 했고, 이어 큰 쓰나미가 덮쳤다고 했다.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한국에서도 크게 보도되었고, 위험하니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16년 전 대지진으로 5,000여 명이 희생된 고베에 안착한 나는, 폭탄이 한 번 떨어진 곳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오기로 버텼다.
3월 24일 현재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하여 25,000을 넘는다고 한다. 30만 정도가 집을 잃고 학교나 체육관 등지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쓰나미의 피해 지역이 워낙 넓어서 복구에 어려움이 크다. 앞으로 3년이 걸릴 것이라 전망한다. 이재민들은 식품과 의류와 연료, 의약품이 시급하다고 호소하는데, 길이 끊겨 보급이 어려운 형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족끼리 생이별하여 서로의 안부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NHK는 연일 이산가족 방송을 했다. 30년 전 우리나라에서 6.25 때 잃어버린 가족을 찾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널판지를 들고 나와 자신의 소재지를 적고 잃어버린 가족의 이름을 써서 안부를 묻는 형식과, 각 피난지 별로 수용된 사람들의 명단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소개하는 형식이 병행되었다.
60년 전 전쟁과 30년 전 이산가족 찾기가 역사적 재앙이었다면, 보름 전 지진과 지금 전개되는 이산가족 찾기는 자연 재앙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자연 재앙을 두고 남을 탓할 수 없듯이 역사적 재앙을 두고도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 미국과 소련 어디를 탓할 것인가. 혹은 분단의 근원을 일제 식민지 침탈이라 보고 일본을 탓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결국 상처는 우리 스스로가 풀어나갈 문제였다.
지금 일본은 자연 재앙 앞에서 지리와 지형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후쿠시마의 원전 붕괴 문제에 봉착하여 향후 원자로를 모두 폐기할 방침이라고 하면서 ‘핵’을 반성한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핵폭탄의 피해를 본 국가인데, 그러고도 강대국처럼 핵폭탄을 보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아직 핵을 보유하고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당량의 플로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핵 기술력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플로토늄 보유를 위해 지반이 약한 일본이 원자력에 집착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 일본은 세계에 묻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 연료가 결국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에너지 과소비에 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대체할 마땅한 것이 없는 현재 핵연료에 집착하고 있는 현실이 온당한가 묻고 있다. 후쿠시마 핵 원자로는 동경을 비롯한 관동지방의 전력 수요를 위한 것이어서, 지금 동경에서는 구역별로 ‘계획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가정 전기를 시간대 별로 제한하고, 전철 운행을 부분적으로 축소하고 있는데, 갑작스런 변화에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제 전기는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TV, 냉장고, 세탁기에서 개인 휴대폰까지 전기에 의존하는 일상을 반성하고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현대문명은 자연을 훼손하면서 무한정 자원을 끌어다 쓸 줄만 알았지, 그것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핵이 위험하다는 것을
▲ 허남춘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
이제 느껴야 한다. 에너지를 아껴 써야 하고, 핵을 폐기해야 옳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이지스 함과 굉장한 핵 잠수함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괜찮은 것인가? 제주도민이여! 일본을 봐라. 일본침몰의 전초전을 보고 느끼기 바란다. / 허남춘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일본 고베 대학 교환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