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통

"여럿이 함께 숲이되자"
함께해 주세요. 당신이 바로 길입니다.

회원게시판

  • [고유기 칼럼] 제주는 진짜 살기 좋은 곳일까?

    2011-03-21 14:18:08
  • 작성자참여환경연대 (admin) 조회수4571
  • +파일첨부

  • 제주는 진짜 살기 좋은 곳일까?




    제주, 가장 살기좋은 곳 전국 1위



    지난 1월 경향신문은 도내 16개 지자체별 ‘지속가능지수’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경제, 사회, 환경, 명성 등 4개 부문 21개 영역별로 71개 지표를 적용해 국내 지자체들의 지속가능성에 점수를 매겼다. 경향신문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와 대학 연구기관, 시민단체, 국제기구, 리서치 기관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꽤 오랜 기간의 조사와 연구, 토론을 거치고 나름대로 정교한 지표를 토대로 나온 결과라 신빙성이 커 보인다.



    이 결과에서 제주는 종합 6위에 올랐다. 16개 시․도 중 중․상위권이다. 종합 1위는 대전이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 평가에서는 ‘명성’지수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지자체 지속가능지수 기획위원회’는 한 지역사회가 경제적 성과나 민주적 발전을 추구할 때 ‘신뢰’ 등과 같은 사회적 자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명성지수 평가에는 지자체별로 500명씩 8000명의 국민이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제주는 7위에 올라 중상위권을 유지했지만, 단체장 리더십은 55.6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지역경영(61.2점 13위), 효율적 운영(59.4점,13위), 투명한 운영(56.8점 14위)에서도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특별자치도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지자체에 대한 인상(77점), 국제역량(81.1점), 향후 성과와 경쟁력(75.7점), 살기좋은 곳(84.9점)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살기좋은 곳’ 항목은 종합 1위를 한 대전 외에는 80점이 넘는 지자체가 없을 정도로 제주가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제주가 1위를 한 항목들은 ‘인상’, ‘국제역량’, ‘향후 성과와 경쟁력’이라는 지표의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 처럼 추상수준 개념의 지표들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주로 제주에 대한 이미지를 측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제주의 ‘가능성’을 나타낸 것으로도 보인다.



    건강, 교육․문화, 주거, 안전 등의 종합점수는 꼴찌



    어쨌든 제주는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살기좋은 곳’ 1위를 기록한 지역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지수는 꼴찌를 기록하고 말았다. 건강, 교육․문화, 주거, 생명․안전 등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삶의 질 요소를 평가하는 ‘사회’부문 항목에서 전국 광역시․도 지자체 중 16위를 기록한 것이다.


    얼마 전 제주발전연구원에서 평가한 제주도민의 삶의 질(행복지수)이 전국 3위를 기록했다는 연구 결과물이 나왔는데 이것과도 대조적이다. (여기서도 대전이 1위) 물론, 평가지표는 좀 다르다. 발전연구원이 발표한 삶의 질 평가에는 사회부문 만이 아니라, 인구,경제,환경 등이 포괄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결과는 제주가 꼴찌를 기록한 사회부문의 지속가능성 평가에 적용된 지표만 34개에 이른다는 점에서 구체성을 더한다.



    제주는 진짜 살기 좋은 곳일까?



    그럼 진짜 제주는 살기 좋은 곳일까? 몇몇 통계를 보자. 빈곤층 분포실태를 보여지는 지표라 할 수 있는 기초수급자 비율면에서 제주는 2010년 6월 현재 약 4%로 전국 평균(3.2%)보다 여전히 높다. 1만 3천가구, 3인 가족 기준으로 따지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제주 인구의 10%에 가까운 4만명에서 5만명 정도가 빈곤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산업구조가 취약하고 영세자영업 비중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 제주만의 특수한 여건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원인이 어떠하든 비정규직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그만큼 제주가 삶에 대한 불안과 빈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밥 굶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도 제주이다. 2007년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 결과, 제주는 아동 결식률이 3.7%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돼 있다. 한참 지난 통계여서 좀 더 뒤져봤지만, 2년전 통계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방학 중 결식아동수 비율이 전체 학생수 51만 7056명의 9.2%로 전북, 경북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국․공립 보육시설이나 국․공립 보육아동 비중도 제주가 3.6%로 전국 평균(5.5%)보다 아주 낮은 하위권이다. 빈곤화의 흐름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여성가구의 비중도 가장 높은 곳이 제주라고 한다. 그 마저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실정이란다.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은 어떨까? 평균 수명에서는 서울 다음으로 제주가 높지만,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뒷받침하는 보건자원 수준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큰 병만 나면 서울로 향해야 하는 지역 의료현실만 봐도 공감이 가는 얘기다.



    굳이 이런 통계들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제주사회도 예외 없이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빈부격차와 임금격차, 노동차별 등과 같은 양극화의 폐해가 여과 없이 투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두고도 굳이 제주가 ‘살기좋은 곳’으로 누구나에게 떠올려질 수 있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 깨끗한 공기와 산과 바다, 숲이 어우러진 제주의 자연환경 덕이 크다 할 것이다. 여기에 조밀한 연고망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공동체성이 그래도 건강하게 발휘되는 면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제주의 그나마 남아 있는 제주의 건강한 자연과 공동체성이 훼손되거나 변질될 위기에 있는 것이 또한 제주사회이고 보면, 제주가 진짜 살기좋은 곳으로 나아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상적 자유시장 모델? 한 번쯤 자문해 볼때



    최근 복지국가 담론이 유행처럼 회자되면서 부쩍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현존하는 복지국가의 사례가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 사례들을 접하면서 “천국이야 말로 따로 있는게 아니구나, 이런 사회야말로 천국이나 다를 바 없구나!”하고 자꾸 놀라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곧 제주를 떠올리면서 가슴 뛰는 희망도 품어본다.



    14년을 스웨덴에서 살았다는 어떤 학자에 따르면, 첫 아이를 가진 자신의 부인이 출산일을 2주쯤 앞둔 어느 날 우편으로 100만원 정도의 거액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곧 태어날 신생아를 위한 출산준비금이 정부로부터 도착한 것이다. 자녀가 태어난 그 달부터 자녀수당이라는 육아보조비가 매달 지급되었으며 식구가 늘었으니 방도 한 칸 더 있어야 된다며 다달이 방세 지원도 나왔다고 한다. 그것이 1970년대의 경험이다. 1975년에 두 번째 자녀가 태어나 네식구가 되었는데, 침실2개, 응접실, 욕실, 부엌이 갖춰진 부부학생 아파트에서 10년간 보통사람들의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고 그 학자는 회고하고 있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출산률 3위의 국가다. 퇴직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는 우리사회와는 달리 스웨덴의 퇴직연령은 고령화를 이유로 67세까지 높아졌다. 월급의 90%를 보장해주는 13개월의 출산보육휴가, 국가가 개개인의 취업을 보장해주는 완전고용제, 거의 무상에 가까운 보건의료제도, 대학원까지 등록금이 없고 심지어 박사논문까지 국비로 출판해주는 완벽한 무상교육, 전국 노인의 노후를 보장하는 연로연금제등 복지국가 사례로 인용된 스웨덴의 현실은 ‘설마’할 정도로 놀라울 뿐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도 부럽다. 서울의 인사동처럼 붐비는 거리에 위치한 스웨덴 국회의사당 입구에는 단 한 명의 경찰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국회와 국민과의 거리가 1미터에 불과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미 1970년대 초에 의회의 결의로 신분사회의 잔재인 박사님, 교수님, 장관님 같은 직함을 폐기하기로 하고 오로지 성씨와 이름만 부르기로 확정해 호칭에서조차 평등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러다보니 반칙이 통하지 않고 정의가 제대로 서는 사회토양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2008년도 국가청렴지수에서 스웨덴은 덴마크, 뉴질랜드와 더불어 공동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은 40위. 경제면에서도 금융위기가 일었던 1990년대 초에 스웨덴은 남녀(16~64세) 통틀어 84%의 취업률을 보여 OECD 11개국 최고를 차지했다고 한다.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이 어떻게 경제상황과 연동돼 표출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야말로 민주주의와 경제의 기반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례라 할 수있다.



    이와 같이, 우리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 같은 얘기들을 접하면서도 제주를 떠올리며 가슴뛰는 것은, 그 만큼 제주가 갖고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여전히 변방으로 취급받지만 그것은 곧 상대적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들로부터 제주는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자치체제는 그런 면에서 기회가 된다. 앞서 지속가능성 지수와 관련해 특별자치도 제주의 일면 일그러진 자화상이 비쳐지기도 했지만, 특별자치도 체제는 어떤 곳을 바라보고 있는냐에 따라 모두의 아름다운 자화상으로 표정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 체제는 제주에 한해서 특별한 제도를 둘 수 있도록 법률이 보장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법률을 제주의 실정과 비전에 맞게 특별법을 통해 유용하게 맞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것이 주로 외부자본의 진입과 투자를 위한 쪽으로만 맞춰졌을 따름이다. 환경 부문에서 각종 오염규제 기준치를 국내보다 강화된 수준에서 적용함으로써 청정제주에 어울리는 제도를 만들었던 긍정적인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의료나 교육, 복지관련 제도에도 제주만의 각별한 기준을 적용해 제주에서는 의료보장율을 높이고,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빈곤을 줄이고, 고용을 보장하고, 주민생활의 최저선을 국가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설정해 발휘하는 일들을 바로 특별법이라는 도구를 통해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배열하는가의 문제이다. 물론, 재정자립도와 재정부족 등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조차도 3조에 달하는 예산운용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 하는 문제일 수 있다. 재정 자립도가 낮다고 하지만, 제주가 기획하는 비전과 그에 맞춰 디자인되는 사업들에 국고가 따라붙는 방식을 창출할 수 있다. 지방세수원를 골프장이나 대규모리조트시설 같은데서만 찾지말고, 제주에 어울리는 세금을 창안해 도민들이 스스로 조금만 세금을 더 내면, 보다 질높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비전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복지국가를 꿈꾸는 대한민국에서 앞선 전범(典範)으로, 모델로 서는 것이야말로 제주민 스스로의 행복지수를 높임과 더불어 한국사회에도 희망을 주는 진정한 제주의 역할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제주가 정말 ‘이상적인 자유시장의 모델’이길 원하는지, 아니면 복지국가를 향한 논의의 길목에서 그것을 앞서 보여주는 전범사례로서의 ‘보편적 복지의 모델’이 되길 원하는지 한번쯤 냉정하게 자문하고 깊이 숙고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복지국가를 향한 흐름 앞에서, 제주는?



    한겨레신문이 조사한 자료는 흥미롭다. ‘경제성장과 복지강화(소득분배) 중 무엇을 우선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2004년 우리나라 국민의 64%는 성장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작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똑같은 질문에 우리 국민 48%가 복지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복지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답변이 6년새 2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2010년 조사에서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답변은 63%에 이른다. 국민의 24%는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을 올릴 수 있다는 답변도 하고 있다. 이 또한 6년 전에 비해 5% 늘어난 수치다.



    최근 복지국가 논의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무게 있는 쟁점으로 떠올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이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발끈하고 있지만, 무상급식을 아이콘으로 하는 복지국가 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비단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슈플레이나 의제선점 경쟁의 정치현상으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이미 국민은 경제(성장) 보다는 복지(분배)를 더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저성장체제에 접어든 한국경제 상황하에서 개개인의 삶의 질은 물론, 사회발전이나 국가경쟁력이란 더 이상 경제성장 논리로서 등치될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결과이다. ‘고용없는 성장’은 한국경제의 양상을 보여주는 명제가 되고 있다. 국민 삶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성장이란 거꾸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만 불러올 뿐이다. 경제발전도 경제논리가 아닌 국민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찾아야 할때가 된 것이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수출 1조원’ 정책도 좋지만, 진짜 살기좋은 곳, 제주를 위해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끝>


    - 고유기 (정책위원장)


     


    * 본 칼럼은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