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부르는 키리졸브 전쟁 훈련
1. 대화가 함께 시작된 대규모 침략전쟁훈련
동북아 정세 변화를 암시하는 여러 인물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관계자들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달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양국을 교차 방문하였다. 그 직후인 2월 23일에는 위성락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와 연쇄회동을 가졌다. 역시 지난 달 26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장관이 워싱턴에서 장관급 전략대화를 가졌으며, 힐러리 클린턴 미국무부 장관은 직후 가진 포토 스프레이에서 ‘현재 우리는 북한이 회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진전의 징후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 달 27일 북한 외무성 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3월 중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방미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3월 10일에는 한 강연회에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가 ‘북한 체제 힘으로 바꾸려 하지 않아’, ‘북미대화, 6자회담 틀 내에서 가능하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북미대화, 다자대화를 앞두고 각국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상당한 속도가 붙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속에서 며칠 전 시작한 한미합동군사훈련 키리졸브는 자못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키리졸브 훈련에는 증원군 8천여 명을 포함한 미군 1만8천여 명과 한국군 2만 여명이 동원된 것으로 공식 확인되고 있다. 또한 20만 명 정도가 참여하는 한국군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까지 합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실전훈련이다.
이런 훈련을 대화가 시작되려는 지금 진행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그리고 대화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다.
한미당국은 키리졸브 훈련을 ‘연례적인 훈련’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다. 지금의 ‘훈련’이 그들이 대북전쟁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연례적’인 것이라면 대화진전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잠시’ 중단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북미 혹은 남북 사이의 대화국면에 맞추어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된 전례는 1992년, 1994년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었던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2. 키리졸브 훈련에 대한 북한의 강경한 입장에 반영된 당면정세
이제까지 키리졸브 훈련을 두고 발표한 북한의 공식입장들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상당히 강경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 만약 미제와 남조선괴뢰호전광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을 감행한다면 우리는 강력한 군사적 대응으로 맞받아나갈 것이며 필요한 경우 핵억제력을 포함한 모든 공격 및 방어수단을 총동원하여 침략의 아성을 무자비하게 죽탕쳐 버릴 것이다. …
- 2월 25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 가운데
… 만약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한다면 우리는 강력한 군사적 대응으로 맞받아 나아가 침략의 무리들에게 정의의 보복성전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단호한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
- 3월 1일 노동신문 개인필명의 논평 ‘북침을 노린 핵전쟁 불장난’ 가운데
… 평화가 소중하고 민족적화해와 협력이 귀중하다고 해도 상대가 우리를 어째보려고 덤벼드는 조건에서 우리 혁명무력은 무자비한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길로 나가게 될 것이다. …
… 우리를 겨냥한 전쟁연습이 계속되는 한 조미사이, 북남사이의 모든 군부대화는 단절될 것이다. …
- 3월 7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성명 가운데
… 조선인민군 륙해공군부대들은 일단 명령만 내리면 침략의 아성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출 것. …
… 침략자들이 우리 공화국의 신성한 하늘과 땅, 바다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할 수 있도록 고도의 격동상태를 견지할 것. …
- 3월 8일 최고사령부 보도 가운데
… 공화국 정부가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중대제안을 내놓은 때에 이러한 대규모 전쟁연습을 강행해 나선 것은 엄중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
(여기서 중대제안이란 조선전쟁발발 60년이 되는 올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는 지난 1.11 외무성 성명을 말한다.)
… 미국에서 행정부는 바뀌었지만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를 힘으로 어째보려는 대조선적대시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것을 보여준다. …
- 3월 9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외무성 대변인 대답 가운데
이처럼 키리졸브 연습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상당히 강경하다. 이는 키리졸브 연습이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최근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에 공감한다면 더 이상 대북적대시정책에 매달려 전쟁연습을 벌이고 전쟁을 타진할 것이 아니라, 빠르게 대화에 나섬으로써 평화 공존을 모색할 데 대한 용단을 내리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이런 강경한 입장이 ‘당장에라도 한판 붙어보자’거나 ‘무조건 실전을 벌이겠다’는 의도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전쟁이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한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강경한 입장에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가 내재되어 있으며 따라서 한국과 미국에게 섣불리 ‘도발’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차원에서 파악해야지 강경한 입장 자체를 무조건 군사적 대응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지난 시기를 돌아보더라도 북한은 실전으로 확대될 빌미가 되는 의도적인 군사적 행위를 한 적이 없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사력을 제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준비된 자신들의 ‘무력’ 대응태세를 보여줌으로써 군사력으로 북한을 붕괴시킬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망신을 피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결국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 할 것이다.
3. 우려되는 키리졸브 연습의 위험성
키리졸브 훈련은 분명히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충돌가능성은 무엇보다도 훈련의 강한 공격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키리졸브 훈련이 작전계획 5027의 절차연습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올해에는 여기에 더해 대북공격성이 더욱 강화된 ‘신 연합작전계획 5012’와 작전계획 5029의 내용이 반영된다. ‘신 연합작전계획 5012’의 기본시나리오는 개전 임박 시점이나 초기에 항공전력이나 특수전 병력을 이용해 북의 핵과 미사일을 제거하고 북 정권 수뇌부를 정밀타격하는 동시에 대규모 지상군을 북진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미국이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동원시켜 전쟁연습을 벌여 놓고 여차하면 전쟁을 일으킬 기세로 북한을 위협해 온 것은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 등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도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으며 전쟁을 벌이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동원한 상태에서 벌이는 전쟁연습은 언제든 실제 한반도 전역을 그 포괄범위로 하는 전면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전면전쟁으로까지 번지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한국군과 북한군 또는 미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인명피해를 동반한 교전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실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북한의 대응태세를 보더라도 군사적 충돌가능성은 꿈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북한은 서해 백령도, 대청도 인근에 1월 25일부터 3월 29일까지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하고,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실제 사전 통보된 해안포 사격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같은 조치들은 이명박 정권이 수립한 비상통치계획-부흥이 수립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북한이 보복성전을 언급하고, 또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선제타격발언을 한데 이어 북한이 ‘선전포고 간주’로 대응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과정에 취해진 것들이다. 남측의 정치적 행보에 대응해 북한은 말과 함께 실제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키리졸브 훈련을 앞두고 북한은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하여 전군에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출 것’, ‘고도의 격동상태를 견지할 것’에 대한 명령을 내린 상태이다. 이런 군사적 긴장 속에서는 잘못 울린 총소리 한방이 교전으로 번질 수 있다. 만약 훈련 도중 사소한 군사적 돌발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국지전 내지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제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각계각층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키리졸브 훈련을 두고 그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나서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훈련을 벌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논의에 한미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본격적인 대화국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쟁훈련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전쟁이 야기된다면 정말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미당국은 북한을 의식해 훈련을 축소했다고는 하지만 침략적 성격이 분명한 전쟁훈련을 벌이는 한 규모가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연습을 당장 중단하고 평화공존을 위한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