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가 내립니다. 아침부터 내린 비에 집 앞마당이 질퍽거립니다.
오늘 아침, 궂은 날씨에도 아랑 곳 없이 우리 부부는 담장을 에워싼 나무들을 솎아내는 일로 부산스러웠습니다. 신구간 안에 해치우려 진작부터 작정했던 터였습니다. 신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신구간인데도 아내는 혹시라도 동티날까 저어되는 지, 팥을 흩뿌리곤 나무의 정령들에게 비는 걸 잊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를 우리 부부가 함께 - 비록 따로따로 앉아 있긴 했지만 - 들었습니다. 그 날 교수님은 ‘길’을 묻는 우리들에게 “더불어 숲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목수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는 나와는 달리 주춧돌부터 그리더라”며 자신이 지녀왔던 관념성 - 머리로 생각하는 버릇 - 을 질타하시는 어쩌면 소박한 이야기가 울림처럼 제 가슴에 다가옵니다. 이처럼 감옥으로부터의 작은 깨달음 하나하나가 내겐 ‘화두(話頭)-생각꺼리’로 새겨져서 긴 여운으로 길라잡이가 되곤 합니다.
강의가 다 끝나고 길거리에서 해후한 아내의 눈자위가 좀 충혈돼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집으로 오는 길에 나지막히 물었더니, 왠지 안쓰러웠답니다. 교수님 강연 내내 감옥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더랍니다. 이번엔 제가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몇 번 들은 선생님의 강의에 익숙(?)한 탓인지, ‘머리로만’ 이해했을 따름이지 ‘가슴으로’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닌가 돌이켜봅니다.
혹시 ‘아름답다’의 반대말을 아시나요?
조금 어리둥절하신가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작년 겨울 사회적기업가 비전 워크샵에서 신영복 교수님이 강연 중에 불쑥 사람들에게 물으셨어요. 혹시 ‘아름답다’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다들 ‘밉다’, ‘추하다’ 등등, 의견이 분분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죠.
결국 신영복 선생님이 알려주셨어요. ‘모름답다’라고...
모두 의아한 채로 있는데, 어원을 따져보면 ‘아름답다’는 ‘안다’, ‘앎’에서, ‘모름답다’는 ‘모른다’, ‘모름’에서 온 형용사래요. 지금은 본 말뜻이 잊혀진 채, 그저 ‘예쁘다’는 표현 정도로 사용하고 있지만요.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겁니다. 광고에서 화장으로 ‘예쁘게’ 도배한 여성들을 ‘아름답다’고 하는 게 생뚱맞은 게 아니냐고요. 정작 ‘생얼’을 화려하게 치장한 ‘모름다운’ 모습을 ‘예쁘다=아름답다’고 오도(誤導)하고 있는 게 아니냐구요.(지난 번 선생님 강의에 같이 했던 김제동씨가 “안 처발라도 될 사람들이 더 바르고 나온다.”며 농반진반 건넸을 때 혼자서 헛웃음이 나더라고요.) 심하게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이렇게 ‘모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라고 말입니다.
서로 알은 채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고, 모자란 것이 있으면 돈으로 사면 그만이고 남는 건 그냥 내다버리면 그뿐인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요. 어느새 우리는 ‘모르는 게 미덕(美德) 혹은 약(藥)’이란 말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듯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개개인이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 잘 몰라도’ 아는 체 하며 지내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런 의식의 전복(顚覆) 자체가 신영복 교수님 말 맞다나 우리의 사고를 가두고 있는 ‘근대문맥(近代文脈)’의 하나는 아닐까요? 자본의 힘은 우리를 모래알처럼 흐트러뜨려 고립된 섬으로 갈라놓고 나선, 시장이란 정글의 법칙에 따라 따로따로 살아남기를 부추기면서 ‘아름다운(?)’ - 실제로는 ‘모름다운’ - 월계관으로 우리를 현혹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서로서로 모르는 게 장땡이겠죠. 오죽하면 ‘모름답다’를 ‘아름답다’로 둔갑시켜 정작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라 상징조작할까요. 그래야 자연이든 사람이든 가릴 것 없이 모든 걸 상품화하여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게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모두가 ‘정글의 낙오자-루저(loser)’로 남겨지겠지만요.
정말 ‘모름답게’ 살아가지 맙시다!
신영복 교수님이 강조하셨던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발까지의 먼 여행’도 아마 서로 아는데서 -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경계를 허물고 관계를 맺는’데서 - 출발하지 않나 싶습니다. 서로 알고 있어야 진정 ‘가슴으로 생각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아름답게’ 사는 거겠죠. 그 다음 ‘가슴에서 발까지’의 머나먼 여행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여럿이함께’ 하면 좋겠죠.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여럿이함께’ 하면 길은 등 뒤에 보입니다. ‘더불어 숲’도 생겨나고요. ‘아름다운’ 세상도 만들어질 겁니다.
이제 우리끼리 서로서로 알으려고, ‘아름다워지려고’ 애써봅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러면 더더욱 좋지 않을까요. 우선 우리 단체의 회원들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혹시 참여환경연대 초창기 회원들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같이 활동하다 오랫동안 얼굴 한번보지 못한 회원은 없으세요? 자신이 가진 생각을 여러 회원들과 나누고 싶은 분은 안계신가요? 이렇게 저렇게 보고 싶거나 이바구를 트고 싶은 회원을 추천해 주세요. 올 3월부터 격주마다 ‘어떵 살암수꽈! - 조근조근 나누는 회원아름터’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최소 20여분 정도는 깊게 아는 기회가 되겠지요. 저한테나 참여환경연대로 언제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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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이번에 조직위원장 - 웹1.0세대의 구닥다리 표현같지만 -으로 선임된 강종우입니다. 10년 차 자활사업 - 제가 자활이라는 ‘죽은 밭’에 빠지게 된 사연은 따로 말씀드리죠 -에 몸담고 있고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비지니스 같은 사회적 경제에 몰두하면서 로컬푸드와 지역통화, 그리고 지역재단을 통한 ‘서로 나누고 함께 보살피는’ 지역공동체의 재조직화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조직위원장을 맡고 나서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망설이다 우선 다짐한 게 ‘내 담장을 허물고 남들에게 다가서는 일에서 시작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짐으로 매주 일요일 회원들에게 내 생각의 속자락을 내보이는 편지를 띄어보내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 2010년 1월 31일 늦은 밤에, 연동집에서
강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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