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반대는 평화라기 보다
평화의 반대가 천주교(종교)라는 말이 더 정답이다!
평화란 이름을 앞세우고, 평화란 깃발을 내걸고
자행하는 테러, 폭력, 살인, 방화, 식민사관의 짝퉁 문화침투,
천주교(가톨릭)의 영원한 왕국을 꿈꾸며 행해지는 게릴라전.
신라통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히 왕권과 신권, 중앙집권과 지방분권도 싸움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고, 왕권이 독재고 신권이 민주는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투표권리 한장 받았지만 의무가 벗어난 것은 아니다. 중앙집권에도 민주주의가 있고 지방분권에도 풀뿌리 민주주의, 투표권이 있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의무가 급격히 해소된 것을 없다. 차라리, 오히려 박정희 시대가 김대중이 시대보다 덜 계급적이었고 민주주의, 지방자치를 입에 달고 살았던 김대중이 박정희보다도 더 풀뿌리들에게는 독재자였다. 아니 민주주의 신봉자였다. 일년에 수백 명씩 죽어간 노숙자들을 박정희라면 군을 동원해서라도 살려서 먹이고, 입히고 재교육(삼청교육대가 아닌 새마을지도자 방식의)을 시켜 보냈지 민이 주인이니 죽고사는 것도 너희들 알아서 하라고 방관하거나 고도적 정치술로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지역 혁신, 특성화 도시, 공기업 지방이전 등과 조선 1위, 자동차, 석유화학, 나아가 반도체. 이것을 개별적으로 보면 지방분권이고, 종합적으로 보면 중앙집권이다. 그렇게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것을 개별적으로 보면 형이상학이고 종합적으로 보면 형이하학이다. 이것을 개별적으로 보면 객관이고 종합적으로 보면 주관이다. 이것을 개별적으로 보면 유물이고 종합적으로 보면 유심이다. 조선 세계 일위 대국이지만 거기에서 먹고 사는 사람은 전국민에 비해서는 소수다. 그러나 철강, 자동차, 화학 등 중화학 공업이 되었을 때는 산업의 엉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 운하도 상징성이 더 강하다. 환경도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게 과연 경제성이 있을까 이지만. 지금은 신지식기반 시대로 나아가고 대규모토목공사는 과거의 무식한 발상이다! 그래, 우리는 무식해서 아직 땅파먹고 산다. 농민들이 그렇고, 광부들이 그렇고, 막노동꾼들이 그렇고 기층 민중이 그렇다. 심마니도 땅파서 심봤다를 외친다. 지식기반 산업은 아직은 그 하나의 개별성처럼, 반도체가 우리나라를 먹여살린다, 영화 한 편이 자동차 몇 십, 몇 백만 대 만드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것처럼 그말은 아직 기층민중들에게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다. 각종 분열로부터 국민을 통합시키고, 국력을 통일시키고, 국론을 한 곳으로 모을 필요가 있을 때, 또 기층민중의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데에 여전히 대규모 토목사업은 유효하다. 지식기반사업으로 가는 시대에 땅파기를 하는 무식한 발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땅파먹고 사는 무식한 기층민중들인데 소위 민중을 위한다는 자들은 유식 형이상학자들이시다. 지식기반 산업의 정점은 지금보기에 문화다. 영화가 자동차 수백 만대 만드는 것만큼 이윤을 창출하지만 거기에 배분되는 것은 자동차 수백 만대를 만드는 데 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분되는 이윤보다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대박을 안겨줄 뿐이다.
평등을 말하고 평화를 앞세우지만 누구보다 교활한 일제 식민사관의 사이비 종교 천주교가 어느 누구보다도 전방위적으로 문화침투를 한다. 티비, 책, 연극, 미술, 음악. 나는 새로운 십만원 권 화폐에 들어가는 인물도 천주교의 문화지배를 위한 교활한 수작으로 보고 있다. 십만원 권에는 김구 선생, 오만원 권에는 신사임당. 조선시대 실제로 그런 학파가 존재했는지 몰라도 영남학파라고 경상도는 고립시키고, 기호학파라고 호남과 경기의 연합을 이룩하고 강원도 강릉 오죽헌까지 연결시키는 언어, 완전 봉쇄작전. 그 기호학파 영수인 율곡 선생의 어머니이자 홀어머니로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고 천주나 예수를 연상시키는 김구 선생이 오만원 권과 십만원 권 인물로 선정되었다. 가장 압도적인 추천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박정희나 두 번째인 이승만은 분란의 요지가 있어 아예 선정대상에서 빼고 했다고 한다.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천주교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런 식이다. 영화를 보자. 언제나 성당 안은 축복과 사랑과 기다림의 장소이다. 깡패가 살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천주님께 결혼을 서약하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죄사함을 받는 성소이자 늘 은혜가 넘치는 곳이다. 그런 영화가 자동차 수만 대 생산한 것만큼 이득을 낸다. 지식기반산업 문화다. 수십만대 자동차를 생산할 때 배분되는 사람보다 몇몇 사람은 대박이고 나머지는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박봉으로 평등하다. 밖에서는 깡패로 사람을 죽여도 안에만 들어오면 평화다.
깡패의 연합체, 깡패의 연대체보다는 국가의 단일체가 강하다. 삼국연맹보다 미국 주도의 연합, 연형책보다 합종책이 이겼다. 그러나 이기고도 독립성을 유지받지 못했던 전국시대 각나라보다는 여,제,왜 삼국 연맹책을 깨뜨리고 나당 합종책을 구사하고도 독립국을 지금까지 이어온 신라의 전략은 아직도 쓸만 하고 이명박은 이 전략을 구사하려 하는 것같다. 그러나 미국과 일방적인 합종책을 쓰기에는 지금이 그때와는 너무 바뀌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연횡과 합종으로 본다면 공맹과 노장도 바꿀 수 있다. 공장은 연형책으로 노맹은 합종책으로.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게릴라전이 있고 전쟁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도 있듯이 아무리 지식기반 산업으로 변한다고 해도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그곳이 달이든, 화성이든 여전히 대규모토목공사가 과거의 부산물만은 아니고 기층민중들의 자신감과 흩어지 국론과 분열된 지역을 한곳으로 모우는 데 중요한 하나의 정책인 것이다. 운하를 파지 않고도, 국토를 건드리지 않고도 정치가, 언론이, 지식기반산업의 정점인 문화가 대신 그 역활을 했었으면,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