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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4월의 휴먼라이브러리] 기억공간 re:born 운영자 황용운









  • 2016년 4월의 휴먼라이브러리] 기억공간 re:born 운영자 황용운

     

          


    다시 태어나, re: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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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공간 re:born'

    : 아픔이 희망으로, 기억이 의미로,

     다시(re) 태어났으면(born)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사유의 장



    "사람들의 마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기억'을 딛고 더 나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행동하는 사람.

    re:born의 운영자 황용운님을 만나볼까요!? :)




    - 일          시 : 2016년 4일 28(목) 오후 2

    - 장          소 : 기억공간 re:born

    - 함께한     이 : 이문자 할머니

    - 기          획 : 김미정 시민사업국장

    - 인터뷰 정리 : 박유라 팀장, 김예환 인턴

    - 사          진 : 박유라 팀장, 김예환 인턴

      





    - 2015년 4월 16일, 1주기에 맞춰 이 공간을 오픈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픈할 때, 어떤 생각으로, 그것도 여기 제주에다가 re:born을 열어야겠다라고 작심하셨나요?


    - 사실 저는 아름다운 가게의 활동가였고,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나고, 5월 18일 연행됐다가 사실 성동경찰서에 있으면서 생각한 거에요. 우리가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라고는 하는데 '어떻게'라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저는 공간이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 모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름다운 가게가 지역마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한데, 그런 것처럼 공간이 있으면 사람이 모일거다..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안산도 있고 팽목항도 있고, 광화문도 있지만, 세월호가 향한 곳이 제주도였으니까 여기에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거죠. 현실적으로 봐도 안산이나 이런 곳에는 공간을 만들기엔 비용이나 이런 부분들에서 부담이 없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만들게 되었습니다.



    - 아름다운 가게에서 6년 여간 일한 퇴직금을 이 공간 만드는데 다 사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공간을 리모델링하는데 퇴직금을 다 사용했어요. 여기는 원래 할머니가 소를 키우던 우사였다가, 8-9년 전부터 창고로 쓰셨다고 해요. 그걸 도서관으로 사용하려던 걸, 제가 바람도서관의 범준이 형을 만나게 됐고, 공존공간으로 사용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인연이 맞아서 여기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 용운씨 개인의 거주나 생활공간으로도 제주도를 생각하고 오신 건가요?


    - 아니요. 그건 아니었어요. 저는 사실 45살 정도 되었을 때 시골에 가서 살 생각은 있었어요. 제가 산을 좋아하거든요. 퇴근하고 매일 등산을 할 만큼 산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쉴 때 마다 강원도에 가서 나중에 귀촌할 곳을 눈여겨 보기도 했죠. 제주도에 오게 될 줄은 몰랐던거죠. 근데 내려가면 바다가 있고, 조금 올라도면 오름도 있고 한라산도 있고 해서 제주도도 참 괜찮은 것 같아요.



    - 기억공간 re:born이라는 이름이 참 뜻깊습니다. 용운씨가 직접 지은 건가요?


    - 남쪽에서 바람부는 마을이라고, 월정에 수제버거 가게가 있어요. 거기 컨테이너로 게스트하우스를 지었던 이나연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제주에 내려와서 이런 것들을 할거다.. 이야기를 하니 그 친구가 문득 리본을 이런식으로 하는 게 어떠냐 제안을 했어요. 영어로 풀어도 re:born이 된다며.. 그걸 듣고 좋다고 생각해서 이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 이문자 할머니 :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한거쥬. 여기 이런 게 생기카부덴 생각도 안했쥬. 이런 일을 만들엉 할 줄 꿈에도 몰랐쥬. 이런 공간이 생기니까 나도 좋아. 어떤 날을 손님도 막 많이 오쥬게. 나도 나 혼자 사는데 사람들 많이 오고 하니까 의지되여. 심심허민 자주 오쥬게.


    - 할머니가 메인 단골인 셈이죠. 할머니는 믹스커피에다가 설탕을 타 드시는 걸 정말 좋아하세요. 달달하게 드시는 걸 즐기죠. 그래서 언제는 제가 믹스커피에 설탕을 넣었는데, 알고보니 소금이었어요. (하하하하)


    - 이문자 할머니 : 나 주지 말앙 너 먹으랜 했쥬게.



    - 주로 어디서 많이 오세요? 들어오면서 방명록을 보니,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 한 6:4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외지에서 오시는 분 6. 제주도 분 4. 거의 비등비등해요.


    - 이문자 할머니 :  버스가 사람 태웡도 오고.. 사람이 될 수 이시면 많이 오는게 좋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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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공간 re:born에서 함께하는 휴먼 라이브러리




    - 저희가 알기로는 공간 운영 뿐만 아니라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이헬로하와유, 나쁜나라 상영회, 전시회, 1박2일 프로젝트, 포닥, 펀딩도 받고 있고..


    - 제가 일했었던, 아름다운 가게는 활동천사라는 자원활동가들로 운영됩니다. 마을 분들도 오고, 사회 봉사점수가 필요한 대학생들도 오고,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셔요. 그리고 왔다가 가게의 철학이나 정신을 알게 된 분들은 졸업을 해서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기부를 하거나 이런 식으로 이어지거든요.


     이런 것들을 봐도 결국은 장소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중요한거잖아요.

    그런 정신이나 생각들을 어떻게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이냐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생각을 한 게, 공간을 만들었으니 공간에 와서 자원활동을 하고, 여기에서 기억의 폭들을 넓혀 나가는 작업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기억공간을 지키는 사람인 기억지기라는 자원활동가를 모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오자마자 한 게 '어멍카페',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 등록을 해서 기억지기를 모집하는 일이었어요. 저도 생업이라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고, 또 공간도 저만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가려면 사람들을 모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맨 처음에 온 친구가 경북대학교를 다니다 휴학을 해서 온 친구였어요. 수연씨라고..

    그 친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2명의 기억지기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모인 선생님들과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뭘 해 볼 수 있을까?'라는 얘기가 나온 거에요. 그럼 매달 1번씩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함께 다큐멘터리를 보는 포닥 모임을 하자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모임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5.18에 대해서도 보고, 여성에 대해서도 보고, 이런저런 영상들을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일반인들도 함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하이헬로하와유 준비를 하다보니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 이번 4월 9일의 2주기 추모문화제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선흘에서 함께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 올해 2주기에도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정치잖아요. 김어준이 말한 것 같이 결국 '닥치고 정치'고, 기승전'교육'이잖아요. 결국 가고, 가고, 가면 정치의 중요성과 교육의 중요성으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러다 416세대 친구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서울에서 토크콘서트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도 제가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416연대에 연락을 해서 제가 이런 걸 하려 한다, 라고 말을 드려서 4월 2일에 토크콘서트가 진행되게 된 것이고요. 9일에는 2주기 행사를 했던 거죠.


     하이헬로하와유로 했던 건 2년 전 나에게 '안녕, 너 잘 지내'라는 하늘에 있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미래의 나와 '잘 지내니'라는 이야기를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하이헬로하와유라는 컨셉을 잡게 되었습니다.


    - 이문자 할머니 : 노래부르고, 북 치고, 마이크도 한 다섯게 걸엉. 마을이 그냥..


    - 황용운 : 9일 행사에는 한 300여 분이 오셨던 것 같아요.



    - 카카오 펀딩도 순식간에 목표를 달성한 걸로 들었습니다.


    - 네. 저도 놀랐어요. 제 생각보다 순식간에 빠르게 되어서.



    - 자기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순간'이 언제라 생각하시나요?


    - 저는 원래 공연기획자가 꿈이었어요. 제가 사실 역사에 대해서 인지하게 된 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부터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경상도 분이시고, 예전부터 친척들이 모이면 '전라도 며느리 안된다'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러던 중 20살 군대 입대를 앞두고 공연기획 관련 일을 하는 선배가 공연기획 쪽에서 알바를 하러 오라는 거에요.


     그 알바를 간 공연이 안치환씨 공연이었어요. 안치환씨가 '615 선언'관련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공연을 할 때였어요. 근데 안치환씨가 위안부 할머니와 장기수 분들에게 공연을 보여드린다고 초대를 했었어요. 그때 정대협에 윤미향 사무국장이랑 활동가들이 할머니들 휠체어를 끌고 오셨어요. 할머니들 공연볼 수 있게 모셔드리고, 바깥에 앉아 있는데, 한국말을 더듬더듬하는 일본 분이 저에게 와서 '한국 역사에 대해서 아세요?' 물어보더라고요. 그게 오늘의 저를 있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사실 되게 충격이었거든요. 일본 사람이 그런 질문을 저에게 하는 것도 충격이었는데, 알고보니 한국의 대학에서 석사를 하는 누나였어요. 제가 군대에 갔을 때 면회도 오고 하셨었는데, 그 누나가 저에게 물었던 한마디가 책을 보게 한거죠. 그리고 다른 쪽에 눈을 뜨게 한 거죠.



    - 이 사건을 잡고 여기 내려오셨을 때, 결심을 쉽게 하셨어요?


    - 네, 쉽게 했어요. 별로 크게 고민이 없었어요.

      2014년 11월 31일에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2월 23일에 내려와서 4월 16일에 이 공간을 오픈했어요.



    - 다른 많은 사회적 사건과 달리 세월호 참사가 본인에게 가장 크게 와닿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사실 그 이유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생중계를 봤던거..

      그 안에 생명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괴로움이 느껴지잖아요. 불쌍하다 그러면서 타자화시키기보다는 내가 살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내가 산게 개념적으로 산게 아니라, 세월호에서 진짜 살았다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 공간이 가진 슬픔 때문에, 여기 있는게 힘들거나 그러진 않으세요?


    -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뭐 그렇진 않더라고요.



    - 리본을 보거나 영상을 보는게 너무 가슴이 아파, 가끔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때가 있더라고요.


    - 근데 그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죠, 사실은. 저는 기억의 방식이 조금 유연해야 된다고 생각은 해요. 생각하면 괴로운 기억이 아니라, 이걸 딛고 무엇을 이야기를 해야 되기 위한 기억이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기억을 딛고 무언가를 이야기 해야 하는데, 이 기억이 그냥 묻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계속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한 기억을 하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고.. 


      저는 좀 미래 지향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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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진훤 작가의 '기다리다' 사진전




    - 오시는 분들의 반응은?


    - '여기 있으면 무겁지 않냐'라고 많이 물어보는 편이고요. 개인적으로 친구들에게 들었던 말은 '오바하지 마라' , '뭐먹고 살래' 이 두 질문이었는데... 제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근데 가면 갈수록 청문회도 국회에서 안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바라봤던 친구들도 달라지는 면들은 있어요. 저는 사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요. '이민가라, 이민 안 갈거면 움직여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게 현실적일 거라고.. 너 이 땅에 숨 쉬고 살거면 움직이라고.. 


     결국 저는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아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5분 다큐를 만들었던 김진혁 PD가 당신에게 방송이 뭐냐라고 물었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대방이 듣고싶은 방식으로 들려주는 게 PD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우리는 항상 내가 옳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듣고싶은 방식과 항상 통했던 방식으로 이야기 해 주는 걸 소위 '꼰대'라고 하죠. 그리고 그걸 강요하죠. 나의 옳음은 그들의 옳음과 왜 다른가 우리는 고민해야 되는데, 근데 그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냥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잘해야 돼요. 듣고싶은 방식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일반적으로 단 한번의 행사가 아니라, 한번의 스팟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걸 통해서 어떤걸 이어갈 수 있을지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공연기획을 하는 게 꿈이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공연 하면서 두가지를 봐요. '이 사람들을 울릴 것이냐, 웃길 것이냐..' 저는 이렇게 되면 많은 부분들이 생각보다 심플하다.. 제가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내려오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맞으면 하는거죠, 그냥. 맞으면 해야 되는데, 맞는데 이걸 안해.. 그럼 가슴과 머리에 괴리가 생기잖아요. 저는 그래서 사실 이 사회가 이렇다고 생각하거든요.



    - 한편으로 참 얄밉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결정들을 쉽게 내리고,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게...


    - 사람은 죽잖아요. 사람이 죽는데, 되게 복잡한 사람도 죽고 되게 심플한 사람도 죽어요. 복잡하게 살 이유가 없더라고요. 근데 이것도 제 성향이기도 하고, 제 스타일이기도 해요. 뭐 강요하여 이야기할 수 없지만...


    - 이문자 할머니 : 학생들 초자오는거 보며는 이.. 옛날에는 이런거 몰라시난 막 멍청하게 살아신디, 다 알아그네...



    -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뭐에요?


    -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사람이 노무현이에요. 인간 노무현. 인간 노무현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대통령 노무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긴 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좋아해요. 생각을 하면 행동하는 사람. 좋아하면 닮아가잖아요. 책을 통해서 만나기도 하니까...



    - 가족들은 이렇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안하세요?


    - 저희 부모님은 저랑 누나를 자유방임적으로 키우셨어요. 늦게 들어와도 전화도 한통 안하고.. 이런식으로 키우셨어요. 엄마에게 왜 그랬냐 여쭈면, '너희를 믿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TV조선과 조선일보를 보시는 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세요. 근데 말은 안해요. 너네가 어떻게 살든 너네 인생은 너네꺼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저는 아빠를 되게 존경하거든요. 그냥 진짜 TV조선과 조선일보를 보세요. 근데 저에게 단 한번도 관련해서 얘기를 안하세요. 저희 아버지가 되게 과묵하세요.


     사실 제가 아버지께 여기에 전시장을 하러 간다고 말씀은 드렸는데, 세월호 관련 공간을 운영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 못드렸거든요. 그날 와서 처음 보시고, 저녁 드시고는 '열심히 해라'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저희 부모님의 스타일이 그러세요.


     저희 어머니는 진짜 친구같은 분이세요. 엄마가 저에게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게.. 저희 엄마가 아들 하나 있는거 8학군에서 공부를 시켜야 된다며 성수대교를 건너서 신사동으로 이사를 간거에요. 그때가 제가 1학년 떄, 현대고 앞에 미성아파트가 막 지어질 때 쯤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생일 초대를 받아서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띵동 누르면 사람이 나오는 비디오폰이 그 집에 있는거에요. 저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 자체가..


     그 집에는 차도 두대였고, 파출부도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집에와서 엄마한테 이야기 했어요. '걔네집 진짜 잘 산다고..'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께서 '잘 사는 게 부자로 사는 거하고, 돈이 많은 거하고 동의어가 아니라'걸 말씀해 주셨어요. 잘하는 게 꼭 경제적인 부자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해 주시면서 잘 살면서도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고, 부자이지만 잘 못사는 사람도 있다.. 엄마가 저에게 설명을 해 주셨어요.


     저희 어머니도 전형적인 주부세요. 찍으라니까 한나라당 찍고, 신한국당 찍는 분이셨어요. 지금도 제가 찍으라는 사람 찍고 그러세요. 이번에는 녹색당 가입하라고 권해 드리니까, 이번에 녹생당에도 가입하셨거든요. 참여연대 후원하라 권유해서 후원하시고 하시는데..


     제가 5월 18일날 연행이 되고, 이틀 있다가 나왔잖아요. 근데 엄마한테는 연행됐다는 이야기를 안했어요. 대신 누나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딸과 엄마는 모든걸 내통한다는 걸 알아버렸죠. 경찰서를 나와 집에 갔더니 엄마가 막 때리면서 '좋다,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좋는데, 앞에 나서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돌아오는 토요일에 나랑 시청에 가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화를 내시면서 '그래 이자식아, 가자! 가!' 그래서 엄마랑 같이 시청 광화문을 갔어요. 그때 막 광화문에 깃발이 있고 그러잖아요. 엄마는 그런거 처음이시니까... 그때 근데 뭘 했냐하면 미 수습자들이 있었을 당시 유가족들이 '누구야, 나와라!' 이러면 밑에서 '누구야, 나와라!'를 같이 외쳤어요. 근데 엄마가 거기서 눈물이 빵 터지신 거에요. 엄마가 눈물이 빵 터졌고, 그 다음에 행진을 하는데, 엄마가 '시청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왜 TV에는 나오지 않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시나요?


    - 업사이클링 영업을 해주시기도 하고, 제가 원래 에코파티 메아리라고 아름다운 가게의 업사이클링 파티에 있다 왔어요, 6년 동안. 그러다보니, 매장들도 알고 있어서 연결을 해 줍니다. 제가 아는 아름다운 가게 간사님이 계신데, 그 분 부모님이 제주도에서 귤농장 하세요. 직거래 판매를 돕기도 하고...



    - 1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 시작하고 얼마 안 됐는데, 어떤 친구가 와서 '차 한잔 하자고 했더니' 막 울더라고요. 이야기 들어보니 중학교 때 은사님이 돌아가신 거에요. 그 은사님의 아이가 아직 어린데 돌아가셨다면서 막 울더라고요. 그 친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한참 얘기 많이 하고 갔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참 304명의 희생자도 잃었지만, 많은 추억과 많은 관계의 고리를 잃었구나'하는 생각이 이 공간에서 만나니까 더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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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공간 re:born의 입구 모습




    - 명함에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쓰셨습니다. 꼭 기억해야 하는 것, 기억해야 하는 사람..


    - 저는 결국 '역사'인데... 역사라고 하면 너무 고리타분하다 이야기도 하지만,,,

      옛날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는 이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이어져 있는 걸 잘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름다운 가게에 있을 때 공정무역이나 재사용, 재활용을 이야기 할 때 옷 이야기를 꼭 하거든요. 인도의 한 농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 그물코가 연결되어 있다. 인도의 한 목화재배 이야기를 하면서, 이 농부와 이걸 입고 있는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풀어주고 설명하면 사람들은 이해를 하고, 그거에 대해서 되게 많은 고민을 하는 거에요. 우리는 이렇게 역사와 지금의 내가, 인도의 한 농부와 지금의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한 번도 풀어본 적이 없는 거에요. 그냥 굉장히 단절된.. 옆집 이웃과 내가 단절되어 있는 것과 같이 사는 거죠. 이걸 풀어내는 과정들,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꺼리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꺼리들을 우리가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내 보폭에서 해 나가는 것. 그런 것들이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거든요.



    - 기억지기 더 필요해요?


    - 필요합니다. 월,수는 계시고 화요일은 휴관이고 목요일인 오늘은 없고요.

    저희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가 기억공간이 여는 시간이고요. 10시부터 2시까지는 오픈조, 2시부터 6시까지는 마감조 입니다. 하는 일은 일단 오면 청소 및 정리를 하고, 바깥에 필요한 물품 구비하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거죠. 기억공간을 찾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거죠. 기억지기 많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힘빠지거나, 힘들진 않으시죠?


    -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고요. 우선 힘든것 보다 다음에 무엇을 이야기할까를 고민할 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고요. 그리고 저는 고립된 형태가 아닌 공감하는 형태로 가야 하는 데, 사람들이 듣고싶어하는 방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 공간 감사 전하고 싶은 사람


    -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문자 할머니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이문자 할머니 : 나 여기 틀어져이신 영상에도 나완게..



    -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문자 할머니 : 88세!


    - 할머니 정말 팔팔 하시죠? 할머니가 이런 일들에 공감을 하실 수 있는 건 할머니 20살 때 4.3을 겪으셨대요.



    - 여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 거 같아 보입니다. 개인적인 시간은 있으세요?


    - 1년 버티면 다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많이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원활동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개인 시간이 납니다.


    이문자 할머니 : 우린 세월호 경 오는 줄은 모르고 도서관 오는줄만 알고이선 게. 책 놓고 아이들 오난 공부만 시켜줘난쥬 생각했는데, 지금같이 막 크게 되난.



    - 지금하고 있는 전시는 언제까지 계속되나요?


    - 5월 14일까지 진행되구요. 세 분의 작가가 안산 기억저장소와 광화문과 제주에 순회 전시를 하고 있는 거에요. 지금 광화문에 전시되어 있는 게 다음에 여기로 올 예정입니다. 여기에 있던 건 안산으로 가고, 안산에 있던 건 광화문으로 갑니다.



    - 저는 전시된 사진만 봤을 때는 무슨 전시인지 헷갈렸어요. 숙소 내부 사진도 보이고 해서..


    - 홍진훤 작가는 '기다리다'를 테마로 하고 있어요. 숙소는 단원고 친구들의 수학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던 숙소였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무사히 제주에 도착했다면 갔을 장소를 전시한거지요.



    - 예환씨는 하고 싶은 말?


    - 김예환 : 되게 공감이 많이 됐어요. 저도 원래 2주 전까지만 해도 서울 살다가 내려와서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다니고 있는데, 저는 좀 더 복잡하긴 한데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아서 공감이 많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 황용운 : 뭐 재미있는 거 해봐요!



    - 예환씨한테 하고 싶은 말. 참여환경연대에 하고 싶은 말.


    - 저는 상상력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사는 세상, 더 좋은 세상.... 근데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저는 예전에 정치인들의 구호는 되게 수사적이라 생각했어요. 정의와 상식.. 좋은 이야기는 다 쓰잖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상상을 할 수 있어야 힘이 나는 거죠. 생각해보면 그런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거에요, 상상을 해야! 상상력과 내가 하고 있는 어떠한 행위와 활동이 계속 연계를 잘 시켜 나가서 공감을 시키면 이 세상이 잘 될 수 있다는 함께꾸는 꿈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탁현민이 쓴 '상상력에게 권력을'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걸 읽어보면 상상력이 부재하니 현실이 왜곡되는 것 같아요.


    - 끊임없이 만나지 않으면 안돼요. 안 만나면 마치 이게 없었던 것처럼 또 일상으로 돌아가게 돼요. 점점 멀어지며 공감이 줄어들게 되는거죠.



    - 참여환경연대와 어떤 형태로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 저는 그래서.. 우리 진짜 자주 만나요!

    저는 꼰대들의 말은 안들어도 될 것 같아요. 이미 판은 바뀌었고, 이 친구들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형태든! 이 친구들이 이야기를 잘 담아내면, 어른들은 자동적으로 함께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게는 약간 이래야되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일주일에 여기 4시간 와요. 이 사람들이 뭘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겠어요. 근데 저는 이런 나이브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되게 느슨한.. 연대는 되게 느슨해야 되는 것 같아요. 이걸 잡아매는 순간 다 빠져 나가요. 느슨해야 돼요.


     - 그냥 하고 끝내는게 아니라는 게 아니라 잘 하는게 중요해요.

    근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듣고 싶은 방식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절대 잘 할 수 없어요. 듣고 싶은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막 가야해요.



    - 여기 계약기간이 3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의 생각은?


     - 어떤 형태로든 독립공간을 준비야해되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어쩃든 뭔가 공간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무언가를 해 볼 수 있기 때문에....

     

     - 4월 9일부터 지금 '두 해, 스물네 달'의 전시가 시작됐습니다. 416기억저장소의 문화기획팀장논의를 해서 전시를 시작했구요. 다음 발걸음도 같이 논의해보고 실행할 것 같아요. 음 세월호 피해자 유품전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문자 할머니 : 잘들 어떵 도와줘사쥬. 혼자만은 어떵 못하는 일이라 모두들 모다들엉 도와줘사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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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re:born과 서울 광화문광장 전시관, 안산 416기억전시관에서

    '두 해, 스무네 달'의 대제목으로 4/16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사회적 관심을 위한 순회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re:born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홍진훤 작가의 '기다리다'는 5월 말까지 전시가 진행됩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14일까지에서 월말로 변경이 되었네요!

    그 이후에 다음 전시회인 김봉규 작가의 '아버지 마음으로'가 열리고

    마지막 전시회로 노순택 작가의 '사람들'이 열립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도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황용운님이었습니다.

    이 에너지를 제주참여환경연대와 함께, 오랫동안! 나누고 더해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