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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 뉴스] 우리 시대의 '낭만 고양이'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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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8px; PADDING-BOTTOM: 8px; PADDING-TOP: 8px"
    bgColor=#ffffff>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 진보세력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시민운동단체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갑갑함을 토로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 해법을 지역에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오마이뉴스>가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함께 7월
    1일부터 16일까지 전국을 돌며 '세상을 바꿔가는 현장보고서 - 희망버스의 16일간 전국일주'란 제목의 공동기획 기사를 연재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11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느릿느릿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그리는
    '대한민국 희망지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target=blank>[세상을 바꿔가는 현장보고서-16일간 전국일주] 공식블로그
    바로가기


    시민운동을 시작한 지도 만 9년이 넘었다. 이제 난 지역에서 '꽤 잘나가는
    시민운동가'가 되었다. 제주 지역에서 시민운동의 '맏형' 격으로 불리는 단체(제주참여환경연대)의 사무처장을 맡은 지도 만 7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시민운동이 커온 걸 생각하면 단체 일'만' 열심히 해도 '잘 나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동네에서는 꽤 잘나가는
    시민운동가를 넘어 '잘나가는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출마'를 권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꺼렸기에 그냥 인사치레 정도로만 받아들이곤 했다. 그런데 그 '권유'가 좀 더
    정돈된 수준에서 이뤄지면서부터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우리 단체 안에서도 이를 공식적인 논의로 다루게 되자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고민이 됐다. 그럼에도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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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666666>▲ 전북 고창군 명사십리 해안을 걷는 '묵언의 순례'. 그곳에서 나는 시민운동가로 살아온
    10여년의 세월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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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666666>
    ⓒ 제주참여환경연대
    갑작스레 찾아온 병 "변화가
    필요해"


    작년 겨울 이후, 나에겐 뭔지 모를 '병'이 생겼다. 나의 삶과 사고의 리듬이 뭔가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면에서 꿈틀대는 뭔가와 씨름해야 했는데, 그 과정은 점점 더 깊은 병이 되어 스스로 휘둘리게 됐다.
    그리고 나는 일단의 소결을 내렸다. 나는 소위 내 삶이 '터닝 포인트'에 직면했음을 감지한 것이다.

    일단 그것은 나이와
    깊게 관계된 것 같았다. 같이 운동을 한 내 친구는 서른을 앞두고 큰 홍역을 치렀다고 하던데, 나는 마흔을 두 해 앞두고서야 그
    홍역을 시작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마음을 친 한마디.

    '기회는 도적처럼
    찾아온다'


    아주 깊이 따르는 선배 운동가가 성경 말씀을 인용해 내게 던진 말이었다. 치명적인 도그마처럼
    다가온 그 말은 터닝 포인트에 직면한 나에게 '출마는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고민이
    됐다. 도대체 뭘까? 내가 갈망하는 '변화'는 어떤 걸까?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 나의 큰 화두는 '어떻게
    자유로워질까'라는 것이었다. 한 10년쯤 된 것 같은데, 어느 날 난 예비군 훈련에 소집됐다. 예비군 훈련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무료한 시간때우기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예비군 훈련장은 깊은 사색의 장으로 훌륭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서성대며 어떻게 살까에 대해 서툴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어렴풋이 든 생각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유는 무엇일까? 그냥 일상에서 일탈하는 것일까? 그래, 역시 진짜 자유는 우리의 일상을 깨는 거다. 그걸
    깨려면 그 일상을 둘러싸고 규정하는 '구조'에 저항해야 하고 그 안에서 진짜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 그날의 결론이었다. 그날 이후
    그것은 내가 시민운동을 하는 진짜 이유가 됐다.

    시민운동가로서의 나의 삶은 그 정리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실제로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일에 치이고 생활도 각박해졌지만 그 '저항하는 자유'는 나를 위안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제일 미안했던 것은 역시 아내였다. 명색이 맞벌이 부부이긴 하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내는
    그렇지 못하니 어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정치 진출을 깊게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도 아내에게 좀 더 나은 생활 여건을
    제공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정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정치 진출에 대한
    고민은 객관적 요인에 의해 종료됐다. 아직 정치는 '꽤 잘나가는 시민운동가'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회의 박탈'이 감사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년 겨울 이후 시작된 내
    삶의 터닝 포인트는 바로 내면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면의 변화는 삶의 태도와 방식의 새로움까지 요구하고 있었고
    그것은 시민운동이 처한 현실을 푸는 열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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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666666> ▲ 올해 6월 13일 동안 떠난 평화기행에서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20%"
    color=#666666>
    ⓒ 제주참여환경연대
    돌아보니 가슴을 열어보이는 데 너무 인색했다


    지난 6월 나는 대학생 9명과 단체의 사무처 식구들과 함께 '평화 기행'을 다녀왔다. 생각해 보면 시민운동을
    시작한 이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떠나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결코 짧지만은 않았던 그 13일의 여정은 나에게 그 '내면의
    변화'를 촉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소록도에서 시작해 광주, 새만금, 지리산, 대추리, 매향리, 나눔의 집,
    교동도에 이르기까지 만난 많은 사람과 그들과의 대화는 나에게 소통하는 즐거움과 함께 벅찬 여정과는 상관없이 큰 여유를 선사했다.
    그리고 나는 "아, 이것이구나"하는 그 변화의 실체를 내 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더 이상의 내가 아니다"라고 한 체 게바라의 남미 여행 후기에 나타난 마음을 절실히 이해하게 됐다. 돌아와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새롭게 음미 됐고, 이제는 흔해져 버린 '성찰'의 화두를 비로소 끌어안으며 그것을 위한 공간과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는 '점점 더 드러내기'에 용기를 가지게 됐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는
    내면을 드러내는 데 참 인색했다. 그것은 어떤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두려움이 소통과 관계를 방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소통하지 못하는 관계 때문에 나 스스로 쫓겼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그 '드러내기'의 소통이 관계를
    재창조할 수 있을 거라는 깊은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시민운동은 소통하는 자유, 관계하는 자유를 어떻게 잘
    누릴까 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종래의 삶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새로운 실천 코드, '설렁설렁'
    살기


    돌이켜 보면 일을 만들고 대처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뒤를 보면 그냥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복잡한 세상만큼이나 나의 정체성도 여러 갈래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정체성이 뭐냐고만 묻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의 정체성으로, 하나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신영복 선생의 고전강의를 풀어놓은 책을 봤는데, 그 중 <초사>를 이야기한 대목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분의 해석에 따르면, 당대 민중들의 노래를 집대성한 중국 고전인 <초사>에서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억압에
    처한 오늘날 우리들의 대처법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낭만적 드러내기'다.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다. 여기에 시민운동의 위기 담론이 등장한 지도 굳이 따지면 2년이 넘었다. 하지만 <초사>에서 얻은 지혜를
    적용한다면, 이 위기의 시대에 진짜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낭만과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정서와 가슴을 드러내고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역으로 '가슴'이 차단당한 이 구조적 억압 시대에 인문학은 더 빛을 낼지도 모른다.














    src="http://image.ohmynews.com/img2005/article/00.gif" width=10> src="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betrayed_304404_1[487022].jpg"
    border=0>
    color=#666666>▲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20%"
    color=#666666>
    ⓒ 제주참여환경연대
    시민운동의 위기에
    인문학의 위기를 끌어들인 것은 시민운동의 논리와 태도를 인문학적인 낭만과 감수성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성과
    사회과학의 논리로 무장한 시민운동에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바로 소통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여기에 인문학적인 낭만은 현실 참여의 좋은
    소통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요즘 나의 화두는 '인문학적인 감수성과 상상력을 어떻게 하면 현실 참여의 코드로
    호환시킬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당분간 좀 '설렁설렁' 해지고 싶다. 시도 좀 읽고 당면한 일에 급급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음악도 듣고 백 배의 절을 올리며 성찰 의식도 가지고 훌쩍 떠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내면이 좀 더
    치열해지지 않을까? 그 치열함이 '겸허함'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겸허해지면 소통도 더 잘될 것이다. 소통은 참된 신뢰를 낳아 나와
    우리의 실체를 더욱 굳건히 세워 줄 것이다. 나는 이제 세상을 설렁설렁 배회하는 '낭만 고양이'가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