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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위대 반대! 일본 지자체의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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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야코지마·다치가와·홋카이도=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아시아 최고의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 그러나 군사기지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가장 높은 나라도 일본이다. 이 저항은 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되었다. 군국주의 전쟁은 아시아 민중뿐만 아니라 일본 민중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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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21699c>△ 지난 10월11일 시모지공항에서 미 해병대의 군용기와 전투헬기가 중간급유를 받는 훈련에 대한
    시민단체의 항의시위. 지역주민들은 이런 훈련이 미일 군사일체화의 흐름 속에 자위대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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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만이 부각돼 있지만, 고통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키나와 대학살과 도쿄 대공습 등으로 일본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갔다. 전쟁 피해자가 그만큼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이든 시민들일수록 전쟁과 군대에 대한 거부 정서가 더 강하다.


    30억엔 적자를 메꿀 기지 건설


    자위대를 감시하며 군대와 전쟁을 반대하는 풀뿌리 운동은 일본 전역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징적 의미가 남다른 현안이
    있다. 바로 미래 일본의 안보에서 가장 주요한 변수로 설정된 중국을 겨냥한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운동이다. 운동이 벌어지는 곳은
    미야코지마시 이라부지마의 시모지 공항 자위대 기지다. 미야코지마시는 오키나와현의 남쪽에 위치한 섬지역이다. 미야코섬과 이라부섬으로 구성된 이곳은
    한국이나 중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다. 특히 이라부섬은 풍광이 아름다워 스킨스쿠버 다이빙 코스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1973년에 건설된 민항기 전용공항이 있다. 아름다운 태평양과 연결되는 남서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시모지 공항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2000년 전후부터 일본 정부가 자위대 기지를 추진하고 있다.

    민간기 전용 공항의 운용 횟수가 줄어들면서 30억엔이 넘는 적자가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2001년 4월 이라부초의회(‘초’는
    일본의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가 시모지 공항에 자위대 훈련기지 유치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방위청은 이런 요청을 받아 검토하는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 내막은 정반대였다. 지역 정치인들이 먼저 나서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실제로는 방위청의 큰 구도 속에서 나왔다.

    그해 5월15일 미국 국방성의 싱크탱크 집단인 랜드연구소는 보고서 ‘미국과 아시아’에서 “시모지 등 오키나와의 공항시설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5월22일 오키나와 미국 총영사가 시모지 공항을 시찰하기도 했다. 그해
    4월과 5월에는 두 번에 걸쳐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헬기부대가 필리핀에서 벌어진 군사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두 번이나 비행기 급유를 받았다.
    미야코지마시의 시민단체들은 이런 일련의 정황에 대해 ‘자위대 기지를 넘어 미군기지를 조성하려는 장기적인 포석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

    그 뒤 3년 동안 이 문제는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방위청은 나름대로 계속 검토를 했고 지역 주민들은 교원노조,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토론회와 반대 서명 등을 조직해나갔다. 그러다 2005년 3월16일 이라부초의회에서 시모지 공항의 자위대 유치를 ‘찬성 9, 반대
    8’로 결의했다. 주민 3천여 명은 3월25일 자위대 기지 설명회에서 기지 유치 결의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드러내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자위대 기지를 유치하는 것에 찬성했던 의원들은 대규모로 벌어진 반발 사태에 당황했다. 급기야 미군기지와 자위대의 공동 사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미군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위대가 들어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해 주민들의 실소를 자아내기까지 했다. 3시간이 넘는 주민설명회의
    막판에 결국 의원들은 주민들의 강한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주민 동의 없으면 중앙정부 계획은 무효


    다음날인 3월26일 최종적으로 이라부초 임시의회에서 16일의 자위대 기지 유치 결의와 2001년 자위대 훈련기지 유치 결의의 백지 철회를
    ‘찬성 16, 반대 1’로 결정하며 자위대 유치 기도를 무산시켰다. 당시 운동을 이끌었던 시모지공항자위대기지건설반대위원회의 후쿠시마 마사하루
    위원장은 “자위대 기지가 들어오면 지역이 개발돼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지역 번영과는 거리가 멀다”며
    “이제는 일본 정부가 추진하더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1일 이라부초는 주변에 흩어져 있던 기초지자체 등과 합병해 미야코지마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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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21699c>△ 도쿄 육상자위대 기지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는 다치가와 감시텐트 회원들의 거리 캠페인 모습.
    다치가와 기지는 일본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스나가와 미군기지 투쟁이 전개된 곳이기도
    하다.



    공항 때문에 생겨난 적자를 자위대 유치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과의 합병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라부초의회의 자위대
    기지 유치 기도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현재 미야코지마시는 아키라 이시미네 시장을 중심으로 시청 전체가 자위대 기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아키라 이시미네 시장은 “평화로운 이곳에 군 시설이 들어올 이유가 없다”며 “오키나와는 이미 군사시설로 고통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조금 등 돈다발을 들고 회유하거나 유혹을 해도 소용없다”며 “평화는 더욱 소중한 가캇라고 덧붙였다. 일본 지자체의 내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전쟁을 겪은 뒤 헌법에 따라 자위대의 교전권이 금지된 상황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앙정부가 강력히 추진해도 지자체와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군사기지 건설은 꿈도 못 꾼다.

    지난 2월 항공자위대 나하 기지 사령관이 “일본의 방위상 자위대가 시모지를 이용해야 한다”고 공언해 다시 파문이 일었다. 일본 방위전략의
    무게중심이 급격히 중국을 견제하는 쪽으로 옮아가면서 중국을 향한 전진기지의 필요성이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방위청과 항공자위대는 기지 건설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본 중앙정부의 의도나 계획과는 상관없이 미야코지마시와 시민들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중국과 관계를
    풀어가기를 원하고 있다.

    도쿄에서도 자위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울려퍼지고 있다. 다치가와 감시텐트의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다치가와 기지는 도쿄 서쪽 다치가와시에
    자리잡고 있다. 육상자위대가 중심인데 기지의 역할은 수도 도쿄와 그 주변의 보호다. 또 요코타 미군기지의 보호도 맡고 있다. 국가 비상시에
    대비해 ‘가스미가세키’(일본 국회의사당·외무성 등 국가 주요기관이 모인 지역)의 비상대피 건물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30년 주민운동, 10월에는 ‘무죄 판결 대행진’


    다치가와 자위대 기지는 구 일본군 때부터 군사기지가 있던 곳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다치가와 비행장 주변에서는 전투기 등 많은 비행기가
    생산됐다. 그 뒤 한국전쟁 때에는 미군의 전초기지로도 쓰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기지를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스나가와 일대가 기지로 편입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나가와 투쟁이 시작됐다. 스나가와 투쟁은 일본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주민운동이자 반기지 투쟁이다. 비행장 활주로 연장지역에
    농사를 짓던 농민들과 미군기지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이 투쟁에 뛰어들었다. 투쟁은 55년부터 57년까지 계속됐다. 결국 68년 일본
    정부는 스나가와 지역에 활주로를 연장하는 사업을 포기했다. 77년 이곳 미군기지는 근처의 요코타 미 공군기지로 옮겨졌다. 기지가 옮겨가기 전인
    72년부터 77년까지 5년 동안 자위대와 미군은 이곳에서 공동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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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21699c>△ 기타후지 연습장 확장 강행에 맞서 시작된 시보쿠사 어머니회의 투쟁은 40년에 이른다. 어머니회
    사무실에 자취가 담긴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기지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다치가와 감시 텐트촌’ 대표 가토 가쓰코(70)는 72년부터 자위대 주둔 반대 투쟁에 참여해왔다.
    2003년 감시 텐트촌 활동이 30주년을 맞을 때까지 그는 한 달에 한 번 다치가와 기지 앞에서 반전시위를 벌였다. 가토 가쓰코는 “헬기의 경우
    소음과 추락 위험이 문제이고 자위대 수송기의 경우에는 착륙 거리가 매우 짧아 위험하다”며 “다른 기지에서는 대부분 1600m 정도 되는데 이곳
    활주로는 1천m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육상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시작한 이후 정부 쪽의 탄압이 더 거세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4년 2월 다치가와 자위대 관사에 이라크 파병 반대의 내용을 담은 전단을 나눠줬다는 이유로 경찰의 가택수색을 받았다. 회원
    3명의 집도 똑같은 수색을 당했다. 그는 이 일로 기소돼 2004년 12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지난해 12월 도쿄고등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오는 11월22일 최고재판소에서 마지막 판결 결과가 나온다. 지난 10월15일 경찰의 불법 가택수색과 고등재판소의 유죄 판결에
    반대하는 ‘재판 무죄 판결 대행진’이 다치가와 에키키구에서 열렸다.

    일본 지역 가운데서도 자위대 기지와 훈련에 대해 가장 깊고 넓게 대응하는 곳은 홋카이도였다. 지역주민, 목회자, 평화단체 등이 자연스런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활동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단체로는 홋카이도평화위원회를 꼽을 수 있다. 이 단체에서는 기지의 이동·이전·배치 등 기본 상황과
    흐름을 시기별로 꼼꼼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새 무기체계나 장비의 도입 여부도 감시한다. 이런 점에서 홋카이도의 자위대 감시운동은 일본 전체의
    평화운동에서도 모범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외에도 아쓰기의 기지 감시운동이나 요코스카 평화선단 운동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모두가 자위대 합법화를
    막고 평화의 주춧돌을 놓는 활동들이다.


    홋카이도·아쓰기·요코스카에서도…


    일본 각지에서 전개되는 자위대에 대한 감시와 저항운동은 일본을 넘어선 동북아의 평화운동이다. 이러한 흐름에 연대하고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군비경쟁을 넘어 자위대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씨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