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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의 소리] "주민과 예술인들이 함께 마을을 가꾸죠"

  • 지난 1월 제주의소리는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연재했다. 이어 제2부로 광주전남지역의 마을만들기 현장을 앞으로 8회에 거쳐 소개한다. 살기 좋고 가고싶은 마을만들기를
    준비하고 고민하는 지역리더와 관계공무원, 네티즌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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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예술인마을 건설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에도 저지 예술인마을이 있는 것처럼... 최근에는 인천 무의도에 ‘국제 예술인마을’ 조성계획까지 발표될 정도다.


    이 중 전국에서 가장 소문난 예술인마을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헤이리 예술인마을'이다.


    헤이리 예술인마을은 15만평의 부지에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 예술 공간을 짓고 있는 곳이다.


    지역주민과는 상관없이 외부에서 집단적으로 들어와 문화예술인들의 자신들만의 공간을 마련한 경우다. 그런데 지난해 처음 이 곳을 방문한 필자가
    보기로는 웬만한 능력이 없으면 이곳에 입주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부르조아 예술가들의 그들만의 해방구라는 느낌이랄까.


    다른 하나는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승달산 자락 깡촌에 있다. 이른바 '월선리 예술인촌'이 그것이다. 필자는 세련된 헤이리보다 오히려
    이곳이 필(정감)이 간다


    # 전국에서 소문난 예술인촌, ‘헤이리’와 ‘월선리’ 그 차이점


    무안현지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법전사로 가는 길에 한마디 했다. ‘운중수월 선인독서(雲中囚月 仙人讀書:구름 속에 달빛을 가두고 선인이 책을
    읽을 만한 곳이다)’라고. 월선리는 거기서 나온 마을 이름으로, 한국의 6대 명당자리라고 한다. 여기에 묘를 쓰면 황후가 나온단다.
    음택(陰宅)이다. 그래서 여기에 권력 있는 사람들이 묘를 많이 쓰려고 기를 쓴다. 선산이 30개나 되어 거의 공동묘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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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선리 마을 중턱에 있는 무덤들.
     


    국민의 정부 때 유력인사가 묘를 쓰려다가 청년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금도 마을 입구에는 '장의차 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이곳이
    이제는 예술인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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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선리마을입구 사진, 청년회명의의 장의차 출입금지 팻말이 눈에
    띤다.
     


    월선리 마을만들기는 지금으로부터 17년전인 1990년 당시 34살의 도예가 김문호씨(현 예술인촌장)가 입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김문호씨의 소개로 윤숙정(도예가), 박인수(서예가), 김석전(서양화가)씨 등이 입주했으나 대부분 자족적인 예술활동에 전념했을 뿐 마을의 주요
    이슈에는 소홀했으며 마을공동체와도 소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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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선리 예술인촌의 예술가들의 작업실 :
    윤도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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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선리예술인촌의 예술가들의 작업실 : 김대호 대표의 복사꽃
    피인집.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김문호씨가 마을에 들어 온 후 신선이 사는 마을인 무릉도원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어야 한다고 복숭아나무와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상징하는 회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쫒는다고 하면서 베어버리고 불을 질러버렸다. 처음 심은 것이
    600주인데 150주가 남았다고. 4년 전부터는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어 주민들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를 스스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월선리
    예술인촌 김대호대표는 초기 지식인적 발상이 빚어낸 오류였다고 반성한다.


    그러다 마을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온다고 하자 김문호 촌장은 군청 앞에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공동대책위원장으로 삭발까지 하며 싸웠다. 이후
    동네일원으로 인정을 받았다.


    월선리 예술촌에는 20여명이 예술인들이 살고 있다. 분야는 다양하다. 도자기 서예 조각 문학 국학 천연염색 등이다. 사는 분도 있고
    작업장만 있는 분들도 있다.


    초가지붕을 얹은 황토흙집 김문호의 ‘승광요’와 정문일의 ‘달소리’, 김대호의 ‘복사꽃피인집’, 신동호의 ‘요선방’, 기와모양의 함석을 얹은
    윤숙정의 ‘윤도예방’, 돌을 쌓아 올린 양공육의 ‘외야골아뜨리엷, 외관에 황토를 덧칠한 박인수의 ‘월선서당’, 개량형 한옥인
    ‘정일행·박성우공방’, 개량형 황토흙집 ‘이인관갗  등 예술가들의 가옥은 본인의 개성을 살려 지어져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쳐 선호하는 주택양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여기서는 가장 인상깊은 월선서당과 박인수훈장님의 사진만 몇장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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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선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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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수 훈장님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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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구(서당개) 백구. 처음보는 사람이 와도 짓지 않는다. 서당개로서의
    연륜이 보이는 넘이다. 반면 계속 짖어대는 검둥이 한마리도 있었는데, 훈장님 왈, "저놈은 당구되기 포기한
    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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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구(서당개)
     


    그러나 이들은 헤이리처럼 그들만의 거주지를 이루어 살거나 일반적인 문화마을처럼 인공적이거나 계획적으로 택지를 개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기존의 마을에 들어와, 예술인들이 마을의 빈집에 들어와 사는 형태다. 그래서 얼핏 보면 마을 전체적 분위기는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다.


    김대호 대표에 따르면 이 마을에 들어오고 싶다는 예술인이 많아도(2~30여명 된다) 땅이 없다. 대부분 마을주민들의 문중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외지인 토지소유비율이 적다. 마을이 활성화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다. 그런데 들어오고 싶어하는 분들 중에는 땅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경우가 많다고.


    # 파란(?) 초가지붕에 얽힌 에피소드


    월선리 예술촌에 도착, 마을 주민에게 촌장님 댁이 어디냐 물었다. “저 위 쪽에 가면 초가집 하나가 있는데, 거기”란다. 가르쳐준 방향대로
    가보니 초가집 지붕 형태긴 한데 초록색 그물과 비닐 시트로 덮여있는 집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쳤다. 계속 걸어가도 초가집이 보이지 않아
    다시 돌아와 혹시나 하여 들어가 보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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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촌장의 승광요.
     


    김 촌장의 초가지붕에 왜 저런 어울리지 않는 비닐시트가 덮여 있는가 궁금해 했더니, 사연이 있단다.


    2년 전 중국 길림시 조선족 예술단원들이 초청 공연차 국내에 들어왔다가 밤무대 출연 등을 강요받는 등 사기를 당해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김 촌장이 이들을 월선리로 초청하여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게 하였다. 단원 수만 20여명이 되었으니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당시 김촌장은 초가 얹을 비용으로 2백만원을 모아 두었었는데 이를 이들을 접대하는데 썼다고. 그 이후로 초가지붕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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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광요 내부 초입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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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광요 김촌장의 개인 전시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교류가 확대되었다. 길림시 조선족 중에서 초청된 인원이 국내에 들어와 가야금 명창 등을 한달 정도 교육 받고
    돌아간다. 중국 단오절에는 목포 무안국악원과 월선리 예술인촌 멤버 30여명이 함께 연변에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 길림시 예술단이 무안주민을 위한
    공연도 하기도 했다.


    # ‘자생성’과 ‘지속성’, 주민주도의 핵심


    96년 쓰레기매립장 사건 때 예술인대표인 김문호 촌장과 주민대표가 공동대표를 맡아 투쟁했다. 그 이후 행정에 미운털 박혔다. 그래서
    군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게 약이 됐다. 스스로 할 수 밖에 없었으니...새로운 군수가 오면서 “뭘 지원하면 좋겠나?
    예산인가?” 물었다. “아니오. 사람과 조직만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예산은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도로를 넓히던지 건물을 짓던지 그런데 이런 사업은 종종 지역토호들의 배를 불리는데 기여하곤 했다. 예를
    들어 마을의 공동 냉동창고 사업이라고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역토호의 사유물로 전환되곤 하지 않았는가. 지역주민과는
    관계없이... 그래서 이들은 2년 전 70억짜리 농촌개발종합사업 프로젝트를 신청하면서도 도로나 상하수도 시설 등 이른바 SOC시설은 하나도
    신청하지 않았다. 황토공장,퇴비공장,농산물가공공장,도농교류를 위한 예술센터 등의 필요한 시설들만 하자고 제안했다.


    농촌에서 조급증을 내세우면 실패한다. 돈 많이 처발라서 성공한 마을 없다. 김촌장의 지론이 “느리게 가자”는 것이다. 좀 된다 싶으면
    단체장 앞세워서 이벤트성 행사를 하거나 돈을 처바르는 행사를 하는 마을들이 있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실패한다. ‘자생성’과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생성과 지속성, 이것이 주민주도의 핵심”이라고 김대표는 강조한다.


    사회가 양극화되며 귀향과 귀농이 늘어나고 있다. 교육 문제와 경제적 문제만 해결되면 청년층도 내려온다는 것에 착안해 이들은 ‘방과후
    학교’를 책임졌다. 교수급 3명이 강의를 한다. 학교 벽화작업도 했다. 그래서 30여명이었던 핵생들이 60명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100명까지
    늘 것이라 예상한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도 많다(“농촌에 아기울음소리 그친 적 오런라는 얘기는 이 마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유치원생만
    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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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인들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만든 마을 정자. 가운데 나무를 살려
    정자를 지었다.
     


    # 문제는 자치단체장의 마인드


    김대표는 “농촌에 희망있다 생각한다”고 당당히 얘기한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의 마인드다. 도로나 SOC 생각하면 실패다. 사람위주로 투자하면 된다. 신안군은 고등학생 1명당 7백만원씩 투자한다고
    한다. 교사에게 수당도 지급하고...자치단체별로 유행처럼 무슨 무슨 박물관 만들고 무슨 무슨 공원 만들고 했지만 거의 실패했다. 유통을 행정이
    책임지고 명품화에 전력해야 한다. 현의송선생(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장)은 백만원짜리 젓갈을 만든다고 했다. 신안은 명품 소금을 만들 수도 있다.
    우리나라 소금의 질은 세계 최고다. 그런데 천일염 한가마니에 7~8천원 밖에 못받는다. 이를 명품화시키면 10만원에도 팔 수 있다. 소비자는
    10만원짜리를 선호한다. 안돼는 이유는 조급해서다. 소금을 3년 정도만 저장해 놓으면 불순물이 다 빠지고 단맛이 난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면
    희망있다. 어느 자치단체의 예산이 1천6백억이라 한다. 특별회계까지 합하면 2천억여원이다. 이를 인구숫자 4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4~5천만원씩 돌아간다. 공무원 다 없애고 이렇게 나눠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이 자치단체는 주민들로부터 360억 정도의 세금을 받는데
    이 중 310억원이 공무원 월급으로 나간단다.”


    김대표의 강의를 듣는 공무원들은 머리털이 쭈빗하게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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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표와 박 훈장. 박 훈장님이 날린 방패연을 함께 보고
    있다.
     


    # 20만원짜리 용역으로 70억짜리 정부지원 따다


    월선리 주민들이 직접 만든 20만원짜리 용역계획서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필자 또한 종종 마을만들기와 관련한 강의나 공모를 주관하고
    있는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에게 인용하는 사례다.


    2004년 4월. 예술가집단과 청년회를 중심으로 ‘월선리 종합발전계획’을 세우고
    월선리마을만들기를 위해 700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년 5월 월선2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주민설명회를 가졌는데 대체적으로
    ‘계획은 좋으나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5월10일에는 무안군청 상황실에서 서삼석군수를 비롯한 실·과·소장이 참여한 가운데
    ‘월선리마스터플랜’ 발표회를 가졌는데 서군수는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자치단체도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월선리마을만들기위원회는 농림부가 추진 중인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사업자공모에 응모하기로
    하고 마을자체적으로 예비사업계획서를 수립, 무안군에 제출했다. 이에 대한 무안군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학교수나 전문연구용역기관도 아닌 주민들의
    계획서에 대한 신뢰성을 가질 수 없고 응모하더라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문가들이 계획서를 작성한 타 자치단체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와 달리 새로 부임한 진상렬 건설교통과장 등은 ‘주민스스로가 만들어낸 계획서가 최고의
    계획서다’라며 적극적인 사업추진에 동참하기로 결의해 수정 없이 ‘월선리예술인촌 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 예비계획서’ 원안대로 전남도 심의위원회에
    제출 좋은 평가를 받았고 2005년 8월 최종심의를 통해 사업이 확정되면 향후 3년간 월선리, 청계리, 달산리 3개리에 70억원의 예산이
    투자되게 된다.<김대호대표 석사학위 논문 중>


    김대호씨가 계획서를 들고 군에 찾아갔더니, 처음에는 ‘투기꾼’이나 ‘장사꾼’ 취급 하더라고. 사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3천만원 정도의
    용역비가 든다. 이 과정을 거쳐 사업으로 확정되면 본 용역비로 다시 2억을 용역회사나 대학에 주어 발주한다.


    마을주민들의 생각과 머리로 기획안을 만든 것이니 20만원도 안들 뻔했는데, 도면작업하느라 어쩔 수없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했다고.
    사업설명회(프리젠테이션)도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 했는데, 담당 공무원이 해야 된단다. 결국 전남도에서 꼴등(10등)으로 턱걸이해서 농림부로
    올라갔는데 전국에서 4등을 차지했다. 실제로 주민들이 만든 계획이라는 것을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해준 탓이다. 관계 부처에서 현장조사왔는데
    주민들의 열기를 느꼈을 것이다. 제주에도 진상렬 과장 같은 공무원이 필요하다.


    지역주민과 외지에서 들어온 예술인들이 하나가 되어 살기 좋고 가고싶은 마을만들기를 실천하고 있는 월선리, 천천히 가지만 '주민주도'의
    원칙이 확고히 서 있기에 월선리의 미래는 더욱 밝다.


    이지훈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