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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기행(3)] 낮추라, 비워라…지리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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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은 정말 컸다. 지리산 자체가 새로운 세계 같았다. 차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고 또 올라가 휴게소를 만났다. 고도가 높아 구름이 눈 앞에 깔렸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롭게 된다는 地異山, 많이 배웠나? 콘도에 짐을 풀고 이원규 시인을 만나기로 한 곳에서 기다리며 무궁화 꽃을 피웠다. 평균 연령 26세인 우리는 뭐든 즐거웠다. 덧붙이자면 우린 참 잘 만났다.




















       
     
     

    이원규 시인이 타고 온 오토바이는 모두의 관심대상이었다. 뒤에 한번 타고 싶은 마음을 은근히들 숨기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나도 한번 탔다. 이원규 시인을 선두로 조성봉 감독 댁을 향했다. 전날 만남을 한 대학생들과의 과음으로 전화를 받지 않으시고 잠수를 타셨으나 우리가 떡 찾아가 버린 것이다. 우린 무서운 아이들이었다. 조성봉 감독이 사는 동네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푸른 고향 같았다. 구불구불한 골목 안으로 닭 벼슬 만들며 놀던 꽃이며 손톱 붉게 물들이던 봉숭아꽃이며 눈을 돌리는 곳마다 반가운 친구들 천지였다.




















       
     
     


    오빠들이랑 효주는 개를 참 좋아했다. 개만 찾고 개만 보면 좋아서 죽는다. 나는 왜 못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개를 참 좋아했다. 만나자 마자 신호가 왔다. 밥 달라는 신호다. 다슬기 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국물이 끝- 내줬다. 전날 밤 마신 술이 쑤우욱 내려갔다. 이 맛이다! 한 그릇 떡 비우고 나니 살맛났다. 수제비를 먹었는데 수박까지 내어주시는 아주머니는 인심 최고셨다.




















       
     
     

    지리산에 왔으니 물에 발이라도 담가야제 하며 계곡으로 갔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보자 젊은 혈기들은 환장을 했다. 나도 따라간답시고 졸졸 따라가다가 미끄러운 돌에 미끄러져 홀랑 젖어버렸다. 그래도 지리산속에 지리산 계곡에 하나되어 흐른다는 게 기분 좋았다. 어떤 날은 정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한다고 해도 믿길 만했다. 자연은 이토록 맑고 아름다웠다.




















       
     
     

    내려오다 지리산 산간 학교를 갔다. 이원규 시인과 조성봉 감독, 두 분의 인연이신 지리산 산간학교 김종복 원장님은 지리산에서 구조 활동을 하시고 지리산을 지키시는 분이다. 여순사건, 빨치산 등 반공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주무대였던 지리산이라 했다. 지리산, 지리산, 이데올로기, 반공, 여순사건, 학살, 은둔, 우리나라는 어쩌면 어느 곳이든 사연이 없는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내 뜻을 바로 전하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피를 흘렸을 대한민국이었다. 은둔생활을 하며 사격연습을 하기 안성맞춤이었던 지리산은 그들이 오가던 자취를 고대로 산행로가 되었다. 그렇게 예전에 산은 마음을 비우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닌 어두운 무대였던가 보다.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산을 통하여 배운다고 한다. 낮추라 비워라, 걷잡을 수 없는 사람의 욕심을 소리 없이 곁에 있을 뿐이다. 산속에서 사람 속에서 사람은 자란다. 우리는 무슨 잘못을 짓는지 모르면서 또 죄를 짓고 있다. 내 곁을 돌보지 않은 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죄,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지만 마음가득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봅시다. 모든 의미를. 바로 알고 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이 시대의 젊은이가 할 일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