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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 평화

  • 삶은 평화


    사진/글   양동규 (참여환경연대 상근활동가)


     


    <사진1> 2006 완도가는 길


    평화를 찾아 떠나는 길.
    파란 하늘.
    옅은 안개.
    그 뒤로 보이는 섬.
    오묘한 조화 속에서 풍겨져 오는
    설렘.


    그 설렘으로 기행은 시작됐다.


     



    <사진2> 2006 완도가는 배


     


    <사진3> 2006 완도가는 배


     


    <사진4> 2006 소록도
    검시실               


    설렘으로 시작한 기행은 첫 번째 기행지인 이 곳, 소록도에서 슬픔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영혼이 차가운 저 시멘트 구조물 위에서
    갈기갈기 찢겨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예전 한센인들은 두 번 죽었다고 한다. 이곳 검시실에서 육신이 찢겨지면서 한 번, 찢겨진
    육신이 불태워 지면서 또 한 번.
    과거 한센인들이 받았던 억압. 설움. 고통 등. 평화롭지 못한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무겁다.
    그들이 느꼈던 삶의 무게를 아주 조금 느꼈을 뿐인데, 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소록동 중앙박물관에서 안내자로 있는 한센인 할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을 관람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젊을 때
    뭐든지 해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당신은 건강하다면 뭐든지 해먹고 살 자신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부끄럽다. 젊고 건강한 내가
    부끄럽다. 무엇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차이 짓지 않는 것. 함께 하는 것.’ 소록도중앙병원의 허옥희
    간호사가 말하는 평화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하기를 두려워했다. 차이를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나와 다름을,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고,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들과의 소통을 원한다.
    앞으로 그들과 소통할 것이다. 차이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할
    것이다.
    함께 할 것이다. 소록도를 떠나며 다짐한다. 그들과 함께 평화에 이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5> 2006 지리산 실상사


     


    <사진6> 2006 지리산 실상사


    실상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풍경. 그곳은 평화로웠다.
    소록도를 지나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만났다. 수많은 시민들의 피로
    물들었던 그날의 광주를 돌아보며 무거워 졌던 몸과 마음이 이 곳 지리산에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촉촉한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온 대지가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는 이 곳, 지리산도 뼛속 깊은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더해가는 아름다움 속에 간직한 아픔이어서 그런지 그
    아픔이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픔을 딛고 선 산이기에, 모든 아픔을 감싸 안은 아름다움이기에 실상사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나에게
    슬픔보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잠시잠깐 평화에 이르는 길을 생각하며 서있다.



    <사진7> 2006 사성암 고양이


    사성암에서 만난 고양이에게서 평화를……
    창고로 쓰이는 건물의 지붕. 초여름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
    그 아래에서 낮잠을 청한
    고양이. 사람의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잠을 잔다.
    미소 짓고 있다. 웃음이 난다. 행복하다. 평화롭다.
    나무그늘을 찾아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누워있고 싶은 욕구가 밀려온다.
    평화로움에 대한 욕구일까 권태로움에서 오는 욕망일까? 미소 지으며 생각한다.



    <사진8> 2006 고흥군


    도법스님이 이끌고 있는 생명탁발순례에 참가했다.
    고흥군 해안을 걸었다.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죽어있는
    고래를 봤다.
    왜? 모르겠다. 죽음의 이유가 무엇이든 죽어 있음이 나를 아프게 한다.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죽음이
    아닌지…
    지은 죄가 많은 인간이어서 일까.
    죽어있는 고래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평화기행 참가자중 한명이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생명이 아프면 나도 아파야 되는데 인간 자신은 아프지 않게 모든 준비를 다한 다음에 생명을 짓밟고 있지 않나 라고,
    오늘하루 탁발순례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진9> 2006
    로드킬                    
    <사진10> 2006 도법


    <사진11> 2006 새만금1


    새만금 갯벌은 죽어가고 있었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 새만금.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새만금 갯벌로 향했다. 내륙과 가까이에
    있는 갯벌은 이미 죽어있었다. 비가 내린 갯벌에는 소금끼가 사라졌다.
    죽은 갯지렁이가 벌 위로 올라왔다. 죽은 게가 뒤집어져 있다.

    내륙과 먼 곳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몇 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살아있는 생명을 만났다.
    기쁘다. 아직까지 버텨주고 있어서
    반갑다.
    그러나 이내 이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다. 아프다.
    왜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는 것일까?
    죽어있는 조개에 기행
    참가자 한명이 발을 배었다.
    죽음으로 내몰린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깊게 배인 상처였다.


    <사진12> 2006 새만금2


    <사진13> 2006 대추리1


    전투경찰들이 지키고 서있는 이곳에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이 서 있었다.
    “이 곳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므로 군용물 훼손 또는 침입시 법에
    의거 처벌을 받으며……”


    <사진14> 2006 대추리2


    대추 초등학교는 포탄을 맞은 듯했다. 국가에 의해 그들의 삶의 추억은 짓밟혔다.
    불모지의 땅을 개간해서 옥토로 만든 사람은 이곳
    주민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일군 땅에서 농사지으며 남은여생을 마무리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소중했던 추억들, 너무나
    평범한 희망이 국가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
    과거 독재정부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사진15> 2006 대추리3


    대추리에서 갓난아이의 미소를 만났다.
    아이의 미소는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평화다!
    미소 지음이 미소 짓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평화다.


    이 아이의 평화는 누가 지켜 줄 것인가?


     


     


     


    <사진16> 2006 대추리4      


    <사진17> 2006 전쟁기념관1


    <사진18> 2006 전쟁기념관2


    웅장하다. 앞에 서있는 사람이 너무 작아 보인다.
    화려하다. 안에 들어간 사람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전쟁을 기념하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한국 정부는 그런 총리를 비난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쟁사를 기념하는 기념관을 만들었다.
    주로 기념하는 전쟁은 6∙25전쟁이다.
    그들은 누구로부터 비난 받으려 하는
    것인가?


     
                 
    <사진19> 2006
    전쟁기념과3                                                                      

                                               
    <사진20> 2006 전쟁기념관4
    기념관에는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많다.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커서 뭐가 되고싶니?
    군인.
    전쟁 기념관은 어린이들에게 전쟁의 고통 보다 멋있고 웅장한 환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사진21> 2006 교동도1 



    <사진22> 2006 교동도2


    ‘바다를 잃어버린 섬 교동도
     남한보다 북한이 더 가까운 섬 교동도’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정감있고 아름답다.


    그러나 교동은 '민통선'안에 갇혀 수용소 아닌
    수용소가 되어 있다.
    바다가 있어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너와 나를 나누고 있는 것. 무엇일까?
    날씨가 맑으면 북녘땅이 훤하게 보인다는 섬.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섬.
    그 섬에서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한다.                                     
    <사진23> 2006 교동도3


    <사진24> 2006 교동도4


    모든 기행이 끝났다. 제주에서 교동도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것들을 보았다.
    많이 느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공항에서 기행 참가자들과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혼자서 비오는 서울 강변북로를 달렸다.
    눈물이 흐른다. 흐느낌이
    아닌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다.
    이내, 웃음이 난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다 다시 눈물이 났다. 다시 웃었다.


    내가 미쳤나? 그렇게 생각했다.
    평화를 찾아 나선 기행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미칠 수 있게. 삶에 그리고 평화에 미칠 수
    있게.


    수없이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다시 그때의 감정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려고 한다.


    나의 삶이 아닌 너와 나의 삶을 위해.
    나의 평화가 아닌 너와 나의 평화를 위해.